위소 #9

#9 기록하자

by 임경주

차는 어디론가 이동했고, 비가 퍼부었다. 보닛과 앞 유리창이 터져버릴 정도로 굵은 빗방울이(포도송이 같은 빗방울이었다) 쏟아져 내렸다. 피해자는 절반 넋이 나간 상태로 유리창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빠르게 움직이는 와이퍼사이로 어두운 산속이 보였다. 차는 비포장 길을 달리는 탓에 덜컹거렸다.

그녀는 살고 싶어 했다. 그녀의 감정이 위소에게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위소는 놈들의 목소리에 집중해보았다. 집중하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위소가 피해여성이 되어, 놈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었다.

“씨벌, 조지나 건빵이나 뭔 놈의 비가 요케 내려 부냐.”

목소리의 톤은 매우 굵었다. 전라도 사투리가 섞여 있었다. 위소는 놈의 얼굴을 보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순간, 위소의 눈은 피해여성의 눈이 되었고, 놈의 얼굴을 보았다.

눈과 눈이 마주쳤다.

“뭘 봐, 씨벌년아!”

놈의 주먹이 날아온 순간, 위소는 코에 통증을 느끼며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끈끈한 액체가 흘러내렸다. 코피였다. 실제로 얻어맞은 것이었다.

위소의 심장은 다시 폭죽이 터지듯 빠르게 뛰었고, 두려움은 한계치를 넘어서고 있었다. 바로 그 때 뒤통수에서부터 자동차굉음과 이레트릭전기기타사운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위소는 갑자기 현기증이 일어났다. 놈들을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제 발로 찾아오고 있었다.

순간 망치가 보였다. 망치가 보인 순간, 속이 울렁거렸다. 위소는 속의 것을 다 쏟아내고 말았다. 토사물과 함께 온몸의 힘도 빠져나갔다. 위소는 꼼짝할 수가 없었다. 살인마들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데,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회색승용차가 불법 유턴해 위소 옆에 섰을 때,

“미친 새끼, 토하고 지랄이야. 뭐야? 그 가면은?”

하며 욕을 내뱉고 있었다.

“밤의 대통령이네?”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공포가 밀려왔다. 놈들에게 당하던 엄마의 얼굴, 망치에 머리를 얻어맞고 발발 떨던 아빠의 몸.

놈들 중 한 놈이 차에서 내려 가면을 벗겼다.

“뭐야? 코피까지 질질 흘리고. 에이, 재수 없어. 퉤!”

놈은 위소의 얼굴에 침을 뱉고는 차에 올라탔다. 위소는 그 때까지도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차가 떠났을 때, 위소는 인도에 벌러덩 드러눕고 말았다.

어떻게 집에 들어왔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위소는 어떻게 침대 위에 누워있는지도 기억할 수가 없었다. 가면이 옆에 있었다. 위소는 벌떡 일어나 냉장고에서 냉수를 꺼내어 벌컥벌컥 마신 후,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원인을 알면 풀리지 않는 문제란 없다. 하지만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눈에서 빠져나온 하늘소는 진짜 하늘소였을까? 아니면 그저 상상이었을까?

손등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눈에서 빠져나온 하늘소와 연관이 있다. 그렇다면 하늘소는 무엇인가? 왜 눈에서 빠져나왔단 말인가?

연기는 분명 나에게 무엇인가를 알려주고 있다. 내 의지와 연결되어 있다.

헌데, 도대체 왜?

위소는 머리가 너무 복잡해 터질 것만 같았다. -원인을 찾을 수 없다면- 일단은, 이 일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할지를 먼저 생각해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이 사태를 현명하게 파악해야만 했다.

위소는 머릿속의 생각을 오선지위에 정리해보았다.

기록하자, 탁위소.

1,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2, 가면을 쓰면 내 자아는 선과 악으로 분열된다.

3, 손등의 상처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내 정신작용에 의지해 살인범과 연결을 원한다. 피해자와는 연결되지 않는다.

4, 공포와 분노, 슬픔과 원한이 깊을수록 연기는 힘차게 움직인다.

5, 그것은 가해자가 있는 위치와 거리와도 상관이 있다. 가해자가 나와 가까이 있을수록 연기는 더욱 힘차고 빠르게 요동친다.

6, 연기가 가해자와 연결되는 순간, 난 피해자와 동일시된다. 그것은 내 정신의지에 좌우된다. 내가 원하는 장면을 볼 수 있고, 과거에 일어난 일은 현실의 나에게도 물질적인 피해를 준다.

7, 확실치는 않지만, 연기는 나를 보호한다.

8, 연기가 가해자와 직접 연결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연기를 만지면 피해자들의 공포를 무작위로 볼 수 있다. 그것은 절대로 내가 만들어낸 상상이 아니다.


9, 연기를 통해, 사건을 예방하거나 살해당한 피해자를 살려낼 수는 없다. 연기는 피해자와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연기는 가해자와만 연결된다. 연기가 가해자와 연결된 상태일 때는 피해자는 이미 죽었다. 살해당한 정확한 시간은 확인할 수가 없다.

10, 다시 한 번 더 확신한다. 이것은 결코 상상이 아니다. 현실이다.

위소는 여기까지 정리하다가, 피곤에 지쳐 그만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위소가 수원의 한 나이트클럽에 들렀을 때는 영업을 위해 청소 중이었다.

위소는 가면을 뒤에 숨겼다. 한쪽에서는 웨이터들이 원상폭격상태로 다리를 달달 떨고 있었고, 그들의 형님으로 보이는(왼쪽 눈에서 턱까지 칼자국이 있는) 한 남자는 야구방망이로 허벅지를 구타하고 있었다.

위소가 들어갔을 때, 청소하던 뚱뚱한 웨이터가 나가라고 눈짓했지만 위소는 개의치 않았다.

“저기, 말씀 좀 묻겠습니다.”

위소는 알루미늄야구방망이를 들고 씩씩거리고 있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남자는 숨을 몰아쉬다가 인상을 팍 썼고, 청소를 하던 뚱뚱한 웨이터를 불러다가 조인트를 연속적으로 깠다.

뚱뚱이웨이터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위소의 등을 밀어냈다.

“아, 가라고 새끼야. 너 땜에…….”

“잠깐이면 되요. 저기요, 말씀 좀 물을게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위소는 등을 떠밀리면서도 소리쳤다.

“아, 나…… 진짜 사람 혈압 오르게 하네. 전부 일어서.”

원상폭격 중이던 웨이터들은 재빨리 일어났다. 그들에게 위소는 구원자였다.

“너 이리와 새끼야. 그 새끼 이리 데려와.”

위소는 야구방망이를 든 남자 앞에 서서,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호, 이 새끼 째려보는 거 봐라? 야이 새끼야. 겨드랑이 털도 안 난 새끼가, 죽고 싶냐?”

남자는 담배를 물며 협박했다.

“사람을 찾습니다. 제 아버지를 죽인 범인입니다.”

위소는 또박또박 말했다.

“나는 니 아부지 안 죽였어. 그러니까, 꺼져.”

위소는 고개를 푹 숙이고 뒤돌아섰다. 순간, 고개를 들어 올렸을 때는 잘생긴 미소년이 아닌, 코가 무척 큰 대통력캐릭터가면을 쓴 미치광이가 서 있었다.

“내가 지금 장난하는 걸로 보여?”

위소의 목소리가 굵게 변해 있었다. 가면을 착용한 위소는 주먹을 꼭 쥐었다.

“어라? 이 새끼 봐라? 이거 완전 미친놈 아냐?”

남자의 얼굴에 새겨진 칼자국이 꿈틀거렸다. 순간 보였다. 위소의 손등에서 피어오른 연기는 놈과 연결되었고,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산 속에서 구타로 살해당한 남자 두 명이 땅에 묻히고 있었다.

“너 같은 쓰레기는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져야 돼. 너 같은 놈들이, 너 같은 놈들이 위소의 아버지를 죽인 거야.”

“뭐가 어쩌고 어째 새끼야?”

놈의 손이 위소의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순간, 위소는 정수리로 남자의 안면을 받아버렸다.

“켁!”

남자는 쌍코피를 흘리며 뒤로 나가떨어졌고, 웨이터들은 멍한 상태로 위소를 바라만 보았다. 뚱뚱이웨이터가 달려들자, 위소는 그의 얼굴에 주먹을 먹여버렸다. 뚱뚱이웨이터의 앞니가 빠지면서, 위소의 주먹도 찢어져 피가 흘렀고, 그제야 웨이터들 모두가 달려들었다. 위소는 뚱뚱이웨이터가 사용하던 밀걸레자루를 집어 들고, 놈들의 머리와 목을 차례대로 가격했다.

“킥, 나 진짜 장난하는 거 아닌데?”

위소는 비웃었다. 테이블위에 올려두었던 의자들이 무너졌고, 빈병이 날아다녔다. 머리가 터진 놈, 코가 깨진 놈, 갈비뼈가 부러진 놈들은 바닥을 뻘뻘 기었다.

“이, 이 새끼 뭐야?”

야구방망이로 안 되자, 칼을 빼들었다. 그러나 동시에 위소의 밀걸레에 목이 찔려 컥! 하며 뒤로 날아가 구석에 처박히더니, 라면줄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그 때 심부름 갔던 한 녀석이 계단을 내려오다가 큰 싸움이라도 일어난 줄 알고 동료들을 불러 모았다. 위소는 룸에 포위되어 20대 1로 싸웠다. 무슨 일인지, 힘이 하나도 빠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놈들의 숫자가 더욱 많아지자, 위소는 탁자를 밟고 뛰어올라 샹들리에를 붙잡고 건너편 계단으로 착지했다. 위소는 계단을 박차고 도망쳐 도로로 빠져나왔다.

도로로 나와서도 싸움은 계속 되었고, 결국 경찰이 떴다.

표관장이 전화를 받았을 때는 저녁 9시였다.

표관장은 위소를 데려오는 동안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도장에 들어와,

“너는 자격미달이다. 다시는 이곳에 나타나지 마라.”

하며 손에 들고 있던 가면을 바닥에 내쳤다. 위소는 돌부처처럼 서서 꼼짝하지 않았다. 홍사범을 비롯해, 강일중과 박태일 그리고 수련생들 모두 동작을 멈추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네 놈 속셈은, 처음부터 무도에는 관심도 없었지. 어떻게든 힘을 길러내, 범인들을 잡는 것이 네 목적이었겠지. 그 운명의 구렁텅이에서 스스로 발을 빼지 못하면 평생을 전과자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위소는 운명이라는 말에 공감했다. 언제부턴가 자신이 주인공이었던 삶이, 이제는 그 삶에 질질 끌려 다니고 있었다.

“잘못했습니다.”

위소는 반성했다. 그러나 진심이 아닌 가식이었다. ‘나선탄’을 완성해야만 했다.

표관장은 속지 않았다.

“가라, 다시는 꼴도 보기 싫다. 짐 챙겨서 나가라. 그 가면도 꼴 보기 싫으니까 들고 썩 나가라!”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부모에게 이쁨 받고 주위사람들에게 인정만 받고 살아왔으니, 모든 것을 네 중심적으로 생각하겠지. 지금 이 순간에도…….”

표관장은 천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너에게 다시 기회를 줄 것 같으냐?”

“네.”

“왜?”

“저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나선문의 재건. 관장님 역시 불손한 목적으로 저를 키우고 있으면서…….”

위소가 여기까지 말했을 때 표관장은 관물대로 가더니, 위소의 보호구를 와르르 빼서 앞에 던져버렸다. 위소는 갑상에 박힌,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명패를 보았다.

탁위소.

위소는 명패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아주 높은 곳에 위치한 새집. 그의 이름처럼 불안한 삶.

“너와 나의 인연은 이것으로 끝이다. 가거라.”

위소는 꼼짝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무릎을 꿇어서라도 ‘나선검’을 완성해야만 했다. 위소는 무릎을 꿇었다.

“처음으로 남 앞에서 무릎을 꿇습니다. 다시는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내가 우습게 보이냐?”

표관장의 화는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았다. 위소도 화가 났다.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아무 것도 하지 못했어요! 아빠는 지금도 지하에서 눈을 못 감고 있을 겁니다! 왜 저를 이해해주지 않으세요? 놈들을 잡고 싶어요! 경찰들이 무능력하지만 않았다면 제가 이렇게 나설 일도 없었을 거라고요!”

“웃기지마라. 너는 그런 식으로 발뺌하고, 네 자신을 합리화하지만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 넌 스스로를 망가뜨려 놈들의 세계에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거야. 그것이 넌 옳다고 믿고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부질없는 짓이지. 널 망가뜨릴 뿐이야. 난 더 이상 널 양지로 이끌 수가 없다. 내가 사람을 잘 못 본 것 같구나.”

“그런 게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란 말이에요!”

“시끄럽다! 가라, 내 눈앞에서 사라져라!”

표관장은 위소의 뒷덜미를 잡아채 질질 끌고 문 앞까지 갔다. 홍사범이 말렸지만 표관장의 노기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비켜!”

표관장은 홍사범을 밀어버렸다. 홍사범은 다리를 절며 옆으로 나가떨어졌다가, 바닥을 뻘뻘 기어 즉시 엎드려 표관장의 발목을 잡았다.

“제가, 제가 잘 타일러 볼게요!”

“이거 놔라! 너도 함께 내 쫓아줄까?”

“무작정 내 쫓는 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애 인생이 어떻게 되겠어요?”

“내가 알바 아니다!”

표관장의 무책임한 말에 홍사범은 화가 났다.

“처음부터 잘 못 되었어요! 얘는 아니에요!”

“무슨 말이냐?”

표관장이 물었다. 홍사범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얘는 공부를 해야 해요! 이러고 있을 얘가 아니란 말이에요!”

“저놈이 퍽도 공부하겠다! 그래, 가서 공부나 해라!”

표관장은 획 뒤돌아 위소의 장비를 걷어와 앞에 던져버렸다.

“저 녀석은 틀린 녀석이야! 놈들을 사로잡으면 어떻게 할 건데? 네 놈이 어떻게 할 건데? 놈들을 죽이고 너도 죽을 거냐? 그게 네가 원하는 것이냐? 네 아부지가 퍽도 좋아하겠다!”

위소는 비참했다.

“네! 놈들을 죽이고 나도 죽을 겁니다!”

“위소야!”

홍사범이 나무랐지만 위소는 계속 소리를 내질렀다.

“내가 못 죽일 것 같아요? 내가 왜 이러고 다니는데요!”

“웃기지마 자식아. 넌 놈들을 죽이지도, 죽지도 못할 놈이야. 실력 좀 늘어서 양아치 몇 놈 패고 다니니까 세상이 우습게 보이냐? 건방진 놈의 자식!”

표관장이 위소의 명패를 들고 소리치는 그 때였다. 똑똑똑, 누군가가 현관문을 노크하고 있었다. 표관장이 문을 열어주니, 중국인노부부가 그 앞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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