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소 #23

#23 추출2

by 임경주

위소는 눈을 떴다가 재빨리 감았다. 빛이 너무 강해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었다. 몸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강력한 조명이 눈을 자극했다. 눈을 감았는데도, 빛은 끌개가 되어 눈 속을 박박 긁고 있는 것만 같았다. 위소는 실험대 위에 올려져, 온몸을 미라처럼 제압당한 상태였다. 머리가 시원했다.

“삭발 완료. 두 가닥 더듬이도 제거 완료. 혈압 정상, 뇌파 알파파. ‘게슈탈트’ 추출을 위한 절개 시작합니다.”

위소는 전기톱에 머리가 절개될 위기에 처해있었다. 위소는 고개가 돌아가지 않자, 눈을 돌려 좌우를 살펴보았다. -형체가 흐릿하게 보였지만- 총 다섯 사람이 보였다. 모두 우주복과도 같은 차림이라 누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위소의 머리 위에는 수술실에서나 볼 수 있는 조명이 설치되어 있었다.

윙, 하고 전기톱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날카로운 금속의 회전이 위소의 정수리에 닿는 순간,

꼬마야, 너 정말 약하구나. 이대로 죽을 거냐?

소리 아닌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위소의 눈에 참나무하늘소가 보였다. 위소는 알 수 있었다. 눈에서 빠져나와 손등을 물고 도망친 바로 그 놈이었다. 육체를 잠식해가고 있는, 내 안의 또 다른 나. 악마와도 같은 존재.

너는 나의 숙주. 난 네가 죽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위소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알 수 없는 힘이 솟아나고 있었다.

위소가 비명을 내지르자, 전기톱이 휘어지더니, 작동이 멈추었다.

“긴급 상황, 혈압상승. 뇌파가 알파파에서 감마파로 다시 변환. 실험자 폭주. 바이엘 1상황. 최대출력으로 모르핀 투여.”

위소는 손목의 제압을 풀었다. 괴력이 솟아났다. 목과 가슴 그리고 복부를 제압하고 있는 금속판을 잡아 떼어내 버렸고, 상체를 일으켰다.

“실험자 폭주! 바이엘 4단계를 넘어 체르니 단계로 돌입한다. 100, 30, 40, 50! 더 이상은 불가능하다! 중단해야 한다. 소나타로 넘어가면 모든 것이 끝장이다.”

계속 진행하라!

스피커에서 남자의 호통소리가 들려왔다.

“진행불가! 명령을 거두길 바란다. 소나타! 이미, 소나타로 돌입했다!”

멍청한 자식들!

위소가 상체를 일으킨 순간, 가면이 산소통 위에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다섯 명의 우주인들은 모두 뒤로 물러섰다.

“긴급 상황, 실험자 폭주! 이젠 끝장이다! 요원투입!”

위소는 허벅지와 무릎 그리고 종아리의 제압도 풀었다. 벌떡 일어나보니, 상체는 나체 상태였고 도복바지는 너덜너덜 찢어져 있었다. 문이 열리며 검정색정장을 차려입은 요원들이 들이 닥쳤다. 위소는 침대를 들어, 그들에게 던져버렸다. 재빨리 가면을 착용한 뒤, 소화기를 던져 창문을 깨고 탈출했다. 탈출해서 보니, 실험실이라 생각했던 곳은 응급차 안이었다. 위소는 무작정 달렸다. 머릿속에는 오로지 기무라란코 뿐이었다.

“멍청한 놈! 넌 속았던 거야!”

그녀가 왜?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 년이 수상해! 그 때 그 주사를 맞는 게 아니었어!”

아니야. 그녀가 왜 나를?

“년을 잡아 족채면 다 불게 되어 있어!”

그러지마.

“시끄러워! 넌 이용만 당한 거야! 이거, 비참하군.”

한참을 달리다 보니, 배화재단페노메논웨이브연구소 뒤편 약수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위소는 가면을 벗고, 빡빡 깎인 머리를 자꾸 만졌다. 앞에서 오는 남자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자, 그를 붙잡아 때려눕히고 핸드폰과 상의를 빼앗아 달아났다. 죄송합니다. 라는 말 한마디와 함께.

위소는 먼저 표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위소냐? 너 어디냐? 너 지금 어디야? 위소야! 위소야!”

위소는 주변의 시끄러운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매우 익숙한 소리들이었다. 경찰서였다. 순간, 건물 전광판에 살인용의자의 얼굴이 떴다. 바로 위소의 몽타주였다.

위소는 그냥 전화를 끊고 집을 향해 뛰었다. 뛰는 동안, 계속 기무라란코가 생각났다. 가면 속 위소의 눈은 분노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집에 들어갔을 때는 역시나 아무도 없었다. 기무라란코의 짐도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그녀의 흔적은 더 이상 찾을 수가 없었다.

위소는 피아노의자에 한동안 앉아 있다가, 밖으로 뛰쳐나왔다.

위소는 홍사범 집 앞에서 전화를 걸었다.

“위소니? 위소구나! 위소야! 너 어떻게 된 거야?”

위소는 가면을 벗고 말했다.

“몰라요.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나 지금 사범님 집 앞이에요. 보고 싶어요.”

홍사범은 전화를 들고서, 당장 밖으로 뛰쳐 나왔다.

“위소야, 위소야!”

위소는 나무 그늘 뒤에 숨어 있다가, 홍사범이 소리치자 가로등 밑으로 나왔다.

“위, 위소야!”

홍사범은 머리가 빡빡 깎인 위소를 보고, 깜짝 놀라 손으로 입을 가렸다. 피부가 나무껍질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는 것도 보았다. 그것도 잠시 위소에게 달려와 안겼다. 위소도 홍사범을 꼭 안았다.

“이게 뭐야? 이게 뭐냐고!”

홍사범은 위소의 얼굴을 만지며 엉엉 울었다.

“사범님. 시간이 없어요. 지금부터 제 말 잘 들어요. 기무라란코를 찾아야 해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반드시 찾아야 되요. 기무라란코를 찾아 예산추모공원으로 보내주세요. 아니, 내가 예산추모공원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말만 해주세요.”

바로 그 때였다. 위소는 포위당했음을 알 수 있었다. 위소는 뇌의 고통이 다시 찾아올까봐 두려웠다. 그러나 천만다행이었다.

“탁위소. 우리와 함께 가자. 더 이상 소란피우지 말고.”

위소는 상대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경찰들이었다. 앞에 나선 자는, 경찰서를 들락거릴 때 자신을 인간적으로 대해준 박형사였다.

“박형사님, 전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요.”

“탁위소. 널 강태식 살해용의자로 체포한다.”

박형사가 앞으로 다가와도 위소는 꼼짝하지 않았다. 잠복중인 경찰들의 발자국소리를 들으며 도주로를 확보하고 있었다. 좌측, 가로등을 돌아 아파트정문까지는 포위망이 가장 넓고 허술했다. 위소가 도망칠 수 있음을 확신하는 순간이었다.

“사범님! 기무라란코를 찾아내요! 반드시요!”

위소는 박형사를 밀어버리고, 그대로 도주했다.

인천국제공항.

기무라란코는 등을 꼿꼿이 세우고, 하염없이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전혀 다른 사람처럼, 화장을 했다. 마스카라도 진했고, 입술도 -그녀의 기모노처럼- 붉었다.

그녀는 두서없는 사색이라도 하는 것처럼, 멍한 표정이었다. 그녀의 커다란 여행 가방은, 주인 잃은 애완견처럼 내팽개쳐져 있었다. 시간이 흘러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곁을 스쳐지나갔다.

밤11시 30분.

그녀가 타야할 비행기는 이미 떠났다.

누굴까?

조직원끼리만 연락이 가능한 ‘Scm’을 통해 문자가 도착했다.

-예산추모공원. 위소가 기다리고 있음-

그녀는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녀가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너무도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예산추모공원.

위소는 기무라란코를 기다렸다. 새벽이 가고 아침이 가까워질 무렵, 굳게 잠긴 정문 앞에 택시가 섰다. 여자가 내렸다. 여자는 007가방을 들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담을 넘었다. 007가방을 먼저 던졌고, 붉은색 기모노치마를 허벅지 위까지 찢더니, 도약과 함께 훌쩍 뛰어넘었다. 위소는 무덤 사이에 몸을 숨기고 바닥을 기었다. 여자의 발걸음을 따라 나란히 옆으로 이동했다.

“위짜앙? 위짜앙?”

여자가 무덤사이를 걸어오고 있었다. 기무라란코였다.

위소는 무덤사이에 숨어 있다가 란코가 옆에 오자 손목을 잡아챘다.

“꺄아아악!”

란코는 화들짝 놀라 비명을 내질렀다.

“시끄러워!”

“위, 위짱?”

위소는 아버지의 무덤에 기무라란코를 밀어붙이며 목을 조였다. 위소는 가면을 착용한 상태였다.

“위, 위짱!”

기무라란코는 깜짝 놀랐다. 가면은 너무도 무서웠다.

짝, 하고 뺨을 때리는 소리가 공동묘지에 울려 퍼졌다. 기무라란코는 뺨을 계속 얻어맞았다. 고개가 양쪽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위소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란코의 코에서 코피가 터져 줄줄 흘렀다. 입술도 터져 얼굴에 피범벅 눈물범벅이 되었다.

주먹이 란코의 복부에 꽂혔다. 란코는 숨을 쉴 수가 없어, 007가방을 떨어트리며 무덤 앞에 무릎을 꿇었다.

“솔직히 말해!”

이러지 마, 난 이런 것을 원하는 게 아냐.

위소는 란코의 머리채를 붙잡아 일으켜 세웠다.

“무, 무엇을 말입니까?”

“왜 우리에게 접근한 거야? 정체가 뭐야? 밤마다 작성한 것은 논문이 아니라는 것 다 알아!”

대화로 해, 제발 대화로 해결할 수 있어.

너는 조용히 있어! 내가 다 알아서 해결할 테니까!

“마,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란코의 얼굴은 엉망이었다. 마스카라가 눈물에 흘러내려 진흙처럼 범벅되었고, 입과 코 주변은 피범벅이었다.

“좋아, 위소의 엄마가 당했던 것 그대로 해주지. 위소 놈이 원하고 있거든.”

아니야, 난 원하지 않아!

위소는 손목의 끈을 풀어 란코에게 보여주었다.

“이게 뭔지 알아?”

란코는 고개를 저었다.

“위소의 엄마가 1년 동안 자살을 꿈꾸며 생리대포장 비닐을 늘이고 늘여 여러 겹을 꼬았지.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끊어지지도 않아. 킥킥!”

위소는 그것으로 란코의 목을 뒤에서 조였다.

“사악한 년, 널 교수형에 처하겠다.”

그와 동시에 란코의 치마 속으로 손을 넣어 엉덩이를 힘껏 쥐었다가, 팬티를 잡아 찢었다.

“그 전에 해줄 일이 있지.”

하지 마! 제발 하지 마!

기무라란코는 목을 잡고, 발버둥 쳤다. 손가락에 줄이 걸려, 잘려나가는 것만 같았다.

“말해!”

그만, 제발 그만해!

위소의 광적인 힘에 란코의 발이 묘비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제발, 제발 그만둬!

멍청한 자식! 그렇게 맘이 약해서야.

위소는 일단 힘을 풀었다. 란코는 무덤 앞에 털썩 쓰러졌다.

“마지막 기회다. 말하지 않으면 널 범하고 죽이겠다.”

아니야, 이건 아니야!

란코는 죽은 듯 꼼짝하지 않았다. 기침을 하지 않았다면, 시체와 다를 바 없었다.

“말해! 말하란 말이야! 넌 모든 것을 알고 있어!”

위소의 외침이 묘지에 메아리쳤다. 란코는 꿈틀거리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위소의 가면 앞에서 당당히 서더니, 머리를 만지고 입술을 닦았다.

“좋습니다. 그 전에 두 가지를 묻겠습니다.”

기무라란코의 비장한 태도에, 위소는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하아……. 첫 번째 질문입니다. 비밀을 누설하면 저는 죽습니다. 제가 죽어도 좋습니까?”

“너 따위 죽어도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없어.”

난 아무도 죽지 않길 원해!

위소의 차가운 대답에 기무라란코의 한쪽 눈에서만 눈물이 주르르 새어나왔다. 눈물은 마스카라와 함께 흘러내렸다.

“좋습니다. 두 번째 질문입니다. 먼저 가면을 벗어주십쇼.”

위소는 가면을 벗지 않았다.

“가면을 벗어주십쇼! 저는 위짱과 얘기하고 싶습니다!”

위소는 결국 가면을 벗었다. 란코의 목을 졸랐던 끈도 손목에 다시 묶었다. 가면을 벗자, 기무라란코가 한 발 앞으로 다가왔다. 위소는 뒤로 물러났다. 괴물처럼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기무라란코는 개의치 않았다.

“저를 사랑하십니까?”

기무라란코의 질문은 의외였다. 위소는 잠시 망설였다. 사랑하느냐. 그것은 위소가 묻고 싶은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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