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소 #24

#24 추출3

by 임경주

“저를 사랑하십니까?”

기무라란코는 다시 물었다.

“아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홍가연이야. 그녀도 날 사랑하고.”

위소는 거짓말을 했다. 위소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바로 눈앞의 기무라란코다. 하지만, 그녀를 사랑하지만 -모든 것이 가식이었고, 그녀에게 속고 이용만 당했다는- 비참한 사실을 한 번 더 확인하게 될까 봐 두려웠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위소 역시 그녀를 이용해 진실을 알아야했기에 사랑이라는 감정 따위 중요하지 않았다.

란코는 고개를 돌려 여명이 밝아오는 묘지의 끝자락을 보았다. ‘Scm문자’를 누가 보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좋습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모든 것은 ‘나선력’을 얻기 위한 애브젝트 0도의 음모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애브젝트? 음모?”

“위짱은 실험대상입니다.”

“무슨 말이야? 알기 쉽게 얘기해.”

“무엇을 더 쉽게 설명 드립니까? 못 알아듣겠습니까? 위짱은 애브젝트가 개발한 신종바이러스에 감염된 실험물이란 말입니다!”

위소는 뒤로 물러났다.

“놈들이 아버지를 죽인 것은? 어, 엄마를 그렇게……. 왜? 애브젝트인가 뭔가 하는 놈들이?”

“네, 맞습니다. 모든 것은 다 ‘나선력’을 얻기 위함입니다. 신종바이러스는 외계바이러스. ‘나선력’은 외계바이러스 ‘게슈탈트’ 없이는 무용지물……. 놈들은 위짱의 머리를 갈라, ‘게슈탈트’를 얻어내려 하는 것입니다.”

“‘게슈탈트’라는 것……. 그 때 그 주사인가? 대답해!”

“아닙니다.”

“거짓말 하지 마! 놈들의 눈에서도 그 괴물이 빠져나왔어!”

“놈들도 실험대상입니다.”

위소는 기가 막혔다.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정리가 되지 않았다. 기무라란코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언제 주입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위짱의 뇌에는 외계생명체의 뇌에 존재했던 외계바이러스가 잠복해있습니다. ‘게슈탈트’라고 불리는 그 바이러스는 잠복기간이 따로 없이 위짱의 뇌파에 따라 활동하게 되어있습니다. ‘게슈탈트’는 극도의 공포감에서 완전히 해방되었을 때만 활동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강태식일당이 죽음의 두려움 앞에서 삶을 포기하고 숙주와의 분리현상을 보인 것도 그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란코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제 머릿속에는 조직에서 심어둔 나노폭탄이 있습니다. 나노폭탄은 위짱의 머리에도 심어져 있습니다.”

“믿을 수 없어…….”

위소는 손으로 머리를 만지며, 고개를 저었다.

“나노폭탄은 무선조정이 가능합니다. 제 머릿속의 폭탄은 코드가 형성되어 있어서 비밀을 누설하는 순간 터지게 되어있습니다. 조직은 하농이라는 방식으로 직속상관과 직속부하의 관계가 폭탄과 컨트롤러의 관계로 이어져 있습니다. 일종의 먹이사슬과도 같은 구조이지요.”

“그, 그럴 수가…….”

기무라란코는 떨어트린 007가방을 들어, 위소 앞에 열었다.

“이것은 백신입니다. 백신은 2차 접종에서 ‘게슈탈트’를 완벽하게 제거할 것입니다. 나노폭탄은 제거할 수 없지만 위짱, 우선 이것을…….”

위소는 007가방을 손으로 쳐내버렸다. 권총형주사기와 약병이 떨어지자 그것을 발로 지근지근 밟아버렸다. 깨져버린 약병처럼, 란코는 모든 것이 무너져버린 것만 같았다. 실망스런 눈빛으로 위소를 노려본다.

“널 믿을 수 없어! 또 무슨 흉악한 바이러스를 주입하려는 지 어떻게 알아? 놈들이 누구야? 이렇게 시킨 놈이 누구야? 다른 건 다 필요 없어. 그 놈만 말해! 날 이렇게 만들고, 내 아버지를 죽이라고 시킨 놈이 누구야? 놈들이 그랬어! 시켜서 한 짓이라고. 너야?”

란코는 실망한 눈빛을 거두지 않았다.

“저도 더 이상은 모릅니다.”

“더 이상은 몰라?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네, 모릅니다.”

란코는 입술을 꼭 다물었다. 꼭 다문 입술은 더 이상은 말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위소의 왼쪽 손이 저절로 올라오고 있었다. 왼손은 이마 위로 벗어 올린 가면을 붙잡았다.

“아, 안 돼.”

위소의 오른팔은 왼팔을 붙잡아 내렸다. 가면을 착용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손등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오른팔을 제압한다.

위소는 다시 가면을 착용했다. 그것은 위소의 의지가 아니었다. 악이 선을 몰아내고 있었다. 아예, 수장시키고 있었다. 선의 의지는 점점 힘을 잃고, 수면 아래로 잠겼다.

“네 년이 아니라면, 지시한 자가 있을 거 아냐! 왜 말 못하지?”

위소가 소리치자 란코도 맞받아 소리쳤다.

“몰라요! 모릅니다!”

란코가 사납게 소리치자 위소는 잠시 멈추었다. 란코는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 말했다.

“지시한 자는 모릅니다. 다만, 애브젝트 0도 ‘나선력개발프로젝트’ 실무자는 누구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모든 것을 사주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치 않습니다.”

“그게 누구야? 어서 말해.”

“그걸 말하면, 전 지금 여기서 머리가 터져 죽습니다. 코드가 설정되어 있으니까요……. 우리는 소모품……. 저 역시 위짱처럼 놈들의 계획에 의해 부모님을 잃고 천애고아가 되었습니다. 놈들의 계획에 의해 입양되었고, 살기위해 위짱을 감시했습니다. 저는 죽는 것이 두렵습니다. 하지만 밝게 살려고 노력해왔습니다. 나와 같은 처지의 위짱이 힘들까봐, 이 기무라란코 노력했습니다! 위짱! 예전에 말했잖습니까! 괴롭히는 놈들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만하라고, 혼내준다고 말했잖습니까!”

란코는 더 이상 말하지 못하고 울고 말았다.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서럽게 울었다. 한참을 울다가, 겨우 울음을 그치고 말했다.

“다시 묻겠습니다. 정말 제가 죽어도 상관없습니까? 지금까지 제가 말한 모든 것은 진실입니다. 위짱은 왜 진실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입니까? 전 여기를 떠날 수도 있었습니다. 임무를 완수했기에, 제 머릿속의 폭탄도 제거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위짱을 위해 지금 여기에 남아있습니다! 목숨을 걸고 여기에 있습니다. 가면을 벗으세요!”

란코는 말하다말고 다시 울었다.

“진실? 호, 진실이라. 이봐, 잘 들어. 진실이란 길가에 설치된 외줄과도 같은 것이지. 그것은 올라타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걸려 넘어지라고 있는 것이야. 넌 지금 우릴 걸려 넘어뜨리고 있어!”

“아닙니다. 아닙니다! 이 기무라란코! 위짱을 사랑합니다! 진심입니다. 위짱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백신을 구해왔습니다! 저 백신을 맞지 못하면, 바이러스가 숙주를 점령할 것이고 위짱은 결국 괴물로 변해 죽고 말 것입니다. 위짱, 저를 보세요. 가면을 벗고 저를 보세요. 조직 내에서도 분열이 일어나 우리에겐 희망이 있습니다. 신성 7도가 우리를 도울 것입니다.”

“난 도대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

란코, 더 이상 말하지 마. 제발 그만! 사악한 놈! 너는 지금 란코를 이용하고 있는 거야!

시끄러워! 나약한 놈, 넌 잠자코 있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놈 같으니라고. 어쨌든 저 년도 살기 위해 널 이용한 건 마찬가지잖아.

“말했잖습니까! ‘게슈탈트’는 놈들이 만들어낸 신종외계바이러스이며, ‘나선력’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위짱의 머리를 갈라 얻어 내려하는 것입니다!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습니까? 보세요, 제발 보세요! 몸이 변하고 있잖습니까. ‘게슈탈트’는 위짱의 무의식에 남아있는 그 모습으로 성장해 위짱의 몸과 영혼을 완전히 빼앗을 것입니다!”

“시끄럽군!”

위소는 란코의 뺨을 때려버렸다. 란코는 더 이상 말하지 못했다. 그녀는 이미 죽음을 각오했다. 더 이상의 대화는 불가능했다. 위소의 한과 증오를 알기 때문이었다.

“다 필요 없어! 말해! 말하란 말이야! 그 실무잔가 뭔가 하는 놈! 그놈이 누구인지 말해! 위소는 그놈만 원해!”

그만 해, 나를 위해서인 척 하지 마!

너를 위한 척? 이런 젠장! 알았어. 그만 두겠어. 다 그만 두겠어. 혼자서 잘해봐.

…….

왜 아무 말 못하지? 이봐, 분명히 하고 넘어가자고. 넌 나 없인 아무 것도 못해. 네 한을 풀어줄 수 있는 건 바로 나라고. 지금 저 년을 이용하지 않고서는 해결할 수가 없단 말이야. 좋아, 진정으로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나 이대로 사라지겠어. 영원히. 말해봐. 내가 사라질까? 저 년의 입을 열까?

위소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넌 지금 가면을 벗을 수 있어. 어서, 벗어.

위소는 꼼짝하지 못했다. 오른손이 달달달 떨리고 있었다.

봐, 네가 원하고 있잖아. 다 끝났어. 다 끝났으니까 넌 가만히 있어. 그냥 생각만 해, 그러면 돼.

“좋습니다. 말하겠습니다.”

눈과 눈이 마주쳤다. 기무라란코의 눈은 이미 안녕을 말하고 있었다.

“어서, 말해!”

말하지 마, 제발 말하지 마. 난 알고 싶지 않아. 나도 널 사랑해! 네가 죽는 것을 원하지 않아!

“애브젝트 0도 ‘나선력개발프로젝트’ 실무자는 표…….”

성이 언급되는 순간이었다. 위소는 자신의 귀를 믿을 수가 없었다. 눈이 동그래지는 그 때, 란코는 그 자리에서 눈이 풀려 쓰러지고 말았다. 머리가 터져버린 것이었다. 머리가 터질 때 위소의 가면 위로 피가 튀었다. 위소는 쓰러지는 란코의 몸을 붙잡았다. 란코와 함께 무덤으로 같이 무너졌다.

“란코! 란코!”

위소는 강제로 가면을 벗고, 란코의 이름을 불렀다. 란코의 죽음을 믿을 수가 없었다. 심장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었다. 죽지 않았다, 죽지 않았어. 위소는 란코를 안은 채로 보이지 않는 적을 향해 소리를 내질렀다. 그것은 세상을 향한 절규였다. 잔혹한 운명, 견딜 수 없는 시련.

기무라란코는 천천히 숨을 거두었다. 이제는 심장이 멈추었다. 더 이상 뛰지 않았다. 위소는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죽는 순간까지도 자신을 걱정하는 사람과 그 사랑을 잘 안다. 위소는 란코를 안고 후회로 눈물을 흘렸다.

어둠 속, 묘 사이에서 표관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위소가 사준 양복을 입고서.

위소는 인기척에 가면을 착용하고 몸을 일으켰다.

표관장은 위소를 향해 금속을 겨누고 있었다. ‘나선력’이었다.

“복수에 눈이 먼 거냐? 아니면 원래 멍청한 거냐? 그런 가면 따위를 쓰고 있으니…….”

“킥, 이제야 등장 하셨나?”

다, 당신이 어떻게…….

“놀래지도 않네?”

“킥, 킥킥! 그래도 위소 놈은 당신이 스승이라고. 킥킥! 아, 하하하하하! 정말 웃기는 군. 정말 재밌어.”

다, 당신이 어떻게……. 당신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날 밖으로 내 보내줘. 내가 직접 얘기해야 해!

킥, 좋아. 그렇게 해주지.

위소는 가면을 이마 위로 올렸다. 전면으로 나서야만 했다.

“난 그래도 당신을 진짜 스승이라 생각했어!”

“미친놈. 요즘 세상에 스승이 어디 있고, 제자가 어디 있나? 선생과 학생이고, 강사와 수련생일 뿐이지.”

“왜 나야? 왜 하필 나야?”

표관장은 웃음으로 대답했다.

“말해! 왜 나야?”

“네 놈이, 아니 네 아버지가 만만했거든.”

“뭐?”

위소는 분노했다. 위소의 분노에 표관장이 들고 있는 금속의 형태가 이중나선으로 변형되고 있었다. ‘나선력’은 접촉 없이도, 위소의 의지에 따라 변형되고 있었다. 표관장은 자신의 손에 들린 ‘나선력’이 변형되자 얼굴색이 환해졌다. 그가 그토록 원하던 것을 손아귀에 쥐고 있기 때문이었다.

“호! 이거야. 바로 이거야. 별 지랄을 다 했지.”

“‘나선력’이란 게 겨우 그거였어? 겨우 그런 것을 얻기 위해, 사람을 죽였어?”

“이 철부지야, 이것은 ‘나선력’의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다. ‘나선력’은 미지의 힘. 그 어떤 일을 해낼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시간까지도 되돌릴 수 있지.”

위소는 귀가 번쩍 떠졌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니…….

표관장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해가 떠오르며 산 어귀가 붉게 물들었다. 묘지 위, 풀잎 위의 이슬이 반짝거렸다.

“잘 들어라. 탁위소. 나만 네 아버지를 죽인 게 아냐. 네 아버지도 내 아버지를 죽였다.”

“뭐?”

“믿기 어렵겠지. 아니, 믿고 싶지 않겠지. 하지만 네 아버지는 분명 내 아버지를 죽였어.”

“무슨 개수작이야…….”

“개수작이라니. 네 아버지 본드불고 부탄가스 마실 때, 우리 집에 칼을 들고 들어와, 돈을 훔치고 불을 질렀다. 그 때 난 공룡을 무척 좋아하던, 어느 아이와 다를 것 없는 그저 평범한 어린 아이일 뿐이었어. 내 아버지는 날 살리고, 전신이 새카맣게 타서 죽었지. 내 코와 입을 가슴으로 막고, 온몸으로 감싼 뒤, 불길을 뚫고 탈출했어. 하지만 나만 살아남았지. 숨이 끊어진 아버지는 숯검정 같았어. 네 아버지가 다리만 묶지 않았어도, 불에 타죽진 않았을 거야. 뛰기 편했을 테니까. 그래도 내 아버지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어. 꽁꽁 묶인 손목의 테이프를 어떻게 풀었는지, 날 어떻게 안고 두 발로 뛰었는지……. 지금도 신기해.”

위소는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앉고 말았다. 모든 것을 허용해주었지만, 유난히 불에 대해서만큼은 엄했던 아버지.

불은 엄청 무서운 거야! 다시는 만지지 마라! 한 번만 더 만지면 손가락을 분질러 버릴 테니까!

위소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손등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연기는 아빠의 무덤을 파고들었고, 관을 파헤치고 들어가, 구더기와 함께 시신을 점령했다.

장면이 보였다. 두 소년이 문을 두드린다. 문이 열리자, 강도로 돌변했다. 두 소년은 집주인과 그의 아들로 보이는 아이를 칼로 위협했고, 돈을 요구했다.

“돈만 내놓으면 아무도 죽지 않아.”

위소는 울컥했다. 틀림없는 아빠의 목소리였다. 생김새는 위소를 꼭 닮았다. 그래서 더욱 가슴이 무너졌다. 지갑과 통장을 건네받은 아빠는 뒤돌아섰다.

“그냥 가면 어떻게 해! 신고한단 말이야!”

아빠의 동료로 보이는 소년은 집주인과 그의 아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보고만 있지 말고, 와서 묶어!”

아빠는 멍한 상태로 서있을 뿐이었다.

“뭐해?”

“돈만 뺏기로 했잖아. 어서 나가자!”

“멍청한 놈! 다시는 데리고 오나 봐라. 빨리 와서 다리라도 묶어!”

아빠는 멍하니 서 있다가, 움직였다. 눈과 눈이 마주쳤다. 위소는 피해자의 눈을 통해 아빠의 눈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아빠의 눈은 이미 초점이 흐트러진 상태였다.

아빠의 동료는 집주인과 그의 아들의 손을 -미리 준비한 테이프로- 꽁꽁 묶은 후, 위소의 아빠에게 테이프를 건네주었다.

“어서 다리라도 묶어! 난 완전범죄를 준비할 테니까.”

아빠는 집주인의 다리를 테이프로 묶었다. 그의 아들의 발도 묶었다.

“다 됐어.”

라고 말하며 뒤돌아선 순간, 아빠의 동료는 가스레인지의 중간밸브 아랫부분을 칼로 잘라 절단했다. 그리고 악마의 웃음을 지으며, 중간밸브를 열더니,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 빨고는 길게 내뿜는 연기와 함께 담배를 가스레인지에 내뱉었다.

중간밸브를 통해 가스가 계속 새어나온다. 가스레인지 위의 담배는 빨간 불똥과 함께 하얀 연기를 피어 올린다.

“뭐하고 있어, 튀어!”

위소는 아이의 눈이 되어, 아빠와 눈을 마주쳤다. 아주 잠시의 망설임. 아빠의 눈은 중간밸브로 향했다. 저것을 돌려 잠가야 한다. 가스를 막아야 한다. 아빠의 눈은 말하고 있었다. 위소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아이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빠, 어서.”

위소가 말했다. 위소의 말은 아이의 입을 통해 아빠에게 전달되었다. 그러나 아빠는 뒤돌아 도망쳤다.

“아빠!”

위소가 소리쳤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동료를 따라 도망쳤다. 그리고 불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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