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츠
선하는 오늘도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다.
남들은 그저 선하를 외모에 집착하는 사춘기 철없는 소녀가 못된 거식증에 걸려 스스로를 망가트리고 있다고 보는데,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남들이 보는-
피골이 상접하고, 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인체해부 전시회에서나 볼 법한 그녀의 외모에는 여러 가지 사연이 있다.
짜악!
선하가 아버지의 손바닥에 뺨을 얻어맞고는 풀썩 쓰러졌다. 두 눈 똑바로 뜨고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러니까! 엄마가 집을 나가지!”
엄마가 집을 나갔다. 연락도 되지 않는다.
겉모습은 소박한, 남들에게는 그렇게도 친절한 제약회사 연구원인 아버지의 폭력과 욕설을 견디다 못한 엄마의 선택이 원망스럽지만 한편으론 행복을 빌었다. 그와 동시에 엄마를 대신해 감당해야 할 빈자리와 어린 동생들까지 돌보아야 할 삶의 무게는 어린 선하가 짊어지기에는 너무나도 크고 벅찼다.
대화단절, 소통불능. 피 한 방울 안 섞인 생면부지의 남들이 서로 섞여 살아도 이렇게 살지는 않을 집구석.
선하가 음식을 먹지 않은 것도 이 때부터다.
선하의 아버지는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술에 취하면 항상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반복했다.
“선녀와 나무꾼 알지? 네 엄마는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야. 불로장생의 묘약을 알고 있는 신선이라고. 근데 그걸 지금까지도 알려주지 않더니 결국 도망쳐버렸네. 그거 알아내려고 들인 공이 몇 년인데....”
주정뱅이의 헛소리라지만 반복할 때마다 토시하나 틀리지 않으니 이제는 믿음이 갈 정도였다.
선하는 엄마가 돌아올 날을 기다렸다.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을 거야. 이러다 나 죽으면 엄마만 슬프겠지 뭐.
그러던 어느 날,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약속장소로 달려가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데, 뼈와 가죽만 남은 선하를 엄마는 처음에 알아보지 못했다.
“잠깐만.... 너 선하야? 너 왜 이래?”
그제야 딸을 알아본 엄마가 펑펑 울며 무릎 꿇고 미안하다고 말하는데 선하는 아빠가 했던 말만 떠오를 뿐이었다.
“엄마. 엄마 진짜 선녀야?”
정상적인, 이성과 상식을 가진 사람들의 대화라면 뭔 소리야? 라고 엄마가 바로 대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한동안 흐느낄 뿐 선하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엄마 진짜 선녀야?
선하는 다시 물었다.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엄마... 난 아빠가 그냥 술만 취하면 헛소리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엄마는 진짜 불로장생의 묘약 그런 거 만들 수 있는 거야? 그런 거야?”
“맞아.”
엄마가 울음을 그치고 선하의 뺨을 어루만져준다.
“근데 왜 아빠한테 안 알려주는 거야? 아빠 저러는 것도 아빠 잘못만은 아니었네? 아빠 연구소에서 잠도 못자고 날 밤 새면서 아픈 사람들을 위해 신약 만들려고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데! 왜 알면서도 안 알려주는 건데? 응? 엄마도 잘못이 있는 거네! 도대체 둘이 왜 그러는 건데? 왜 날 이렇게 힘들게 하는 건데! 왜!”
“알았어. 미안해. 엄마가 정말 미안해. 지금 알려줄게. 가서 아빠에게 전해줘.”
엄마가 선하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불로장생의 묘약은.... 무엇이든지 만들어내는 만능주문이 반드시 들어가. 그 만능주문은 사실 알고 보면 별게 아니야. 아주 작은 용기를 필요로 할 뿐이야.
말해줄게. 그 주문을....
선하는 엄마가 숨을 모아 귀에 대고 속삭이는 그 주문을 똑똑히 들었다.
선하가 집에 돌아와 아빠를 기다린다.
오늘도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아빠는 선하를 보자마자 나무랐다.
“오늘도 아무 것도 안 먹은 거야? 너 정말 미쳤어? 너 죽고 나 죽을까? 정말 그걸 원해?”
선하가 삿대질을 하는 아빠의 손을 꼭 붙잡았다.
“아빠. 오늘 나 아빠한테 꼭 할 말이 있어.”
아빠가 선하를 다시 본다. 이 자식 왜 이래? 이거 뭐지? 하는 분위기다.
엄마의 속삭임이 떠올랐다.
그 마법은 단지, 아주 작은 용기를 필요로 할 뿐이야.
“아빠. 사랑해.”
선하는 엄마가 알려준 불로장생의 묘약, 그 마법의 만능주문을 말해주었다.
“아빠! 사랑한다고!”
한동안 멍한 표정으로 말이 없는 선하의 아빠가 헛기침을 터트렸다.
“너 뭐 잘못 먹었냐?”
선하가 아빠를 꼭 안아준다. 아빠는 두 손을 어찌하지 못하고 그저 딸아이의 품에 조용히 안길 뿐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