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핫배지 #11

인연이란

by 임경주

아무리 불러봐야 소용없는 아빠.

끝이구나, 안녕…….이라고 풀려버린 눈동자.

그 눈에 갑자기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번뜩이는 눈빛! 여기서 죽고 싶지 않아!라고 순간 어디서 이런 힘이 생겨났는지 정신이 번쩍 든다.


─핫배지!


핫배지의 진동소리가 휘나의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기적처럼, 발 디딜 곳을 찾던 발이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난간 아래 시멘트 공간에 힘겹게 내딛는 왼쪽 무릎. 사실, 가벼운 몸을 가진 사람이라면 쉽게 찾아 디딜 수 있는 상황이었다. 무릎이 버텨지자 하얗게 질려있던 휘나의 얼굴에 혈색이 돈다. 쥐가 나버린 두 손을 난간에 손목으로 걸고 이를 악물며 무릎에 힘을 주어 몸을 일으킨다. 이를테면,

살 수 있다!라는 희망.

무릎에 이어 발끝도 디딜 곳을 찾았다. 난간에 걸친 손목과 발에 온 힘을 다해 몸을 필사적으로 끌어올렸다.

됐다! 이제 됐어!라는 안도감.


휘나는 겨우 올라서 구렁이처럼 난간을 타고 힘겹게 넘어왔다. 신기하게도 아랫배가 전혀 걸리지 않았다. 아까는 왜 걸렸을까?

삶과 죽음의 경계, 밑을 내려다보니 어둠 속에서 여학생이 자신을 올려다보는가 싶더니 황급히 사라졌다.

핫배지의 진동도 멈췄다.

휘나는 진동이 멈춰버린 핫배지를 들고 즉시 1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하지만 여학생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아파트 단지를 샅샅이 헤집고 달려 다니지만 핫배지는 다시 울리지 않는다. 파란색 불빛만 은은하게 뿜어낼 뿐. 휘나는 다시 집으로 뛰어 들어왔다. 곧장 “핫 모이”에 접속해 블루 37.2도 카페를 찾아보았다. 그러나 코드 블루 37.2도는 극히 소수라 개설된 카페가 없었다. 순간,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음, 다행히 열이 높지 않네. 괜찮아. 37.2도. 사랑이 극에 달할 때 사람의 체온인데? 호호.

감기에 앓고 있을 때 체온계를 보며 한 말이었다.

핫 모이에 집계된 블루 37.2도에 해당하는 핫배지 이용자는 총 180명.

그중 타 지역 사람들과 연령이 높은 자들, 동성을 제외하며 줄여나가니 휘나와 같은 지역에 사는 이성은 딱 다섯 명이 남았다. 그중 세 명은 정보를 공개했지만 두 명은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정보를 공개한 세 명의 신상정보와 소개 글을 보니 한 명은 28세였고, 나머지 두 명은 35세, 37세다. 그렇다면 딱 두 명 남았다.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두 명 중 누군가가 휘나가 자살하려는 순간 밑을 지나간 것이다. 휘나는 그녀를 위에서 보았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교복을 입은 소녀.

“날 살렸어…….”

순간 뒤돌아 거울을 보니, 자살을 결심했던 한심한 모습이 있다. 잠깐 사이였지만 왜 죽으려고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살 희망도, 살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 것이 불과 몇 분 전이었는데.

“내가 미쳤지. 내가 미쳤어.”

그와 동시에 누굴까? 정말 누굴까? 하는 의문이 거울 속의 휘나를 진지하게 만든다.

죽기로 맘먹고 온 마음을 다해 입력한 진실된 정보.

“생명의 은인이야, 반드시 찾아내겠어!”

휘나는 오랜 시간을 망설이다가 결국, 핫라인을 연결하고 억지로 잠을 청했다.

다시는 연결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생명을 살려준 은인이 누군지 알아야만 했다. 그러나 무슨 이유인지, 꿈속에서는 거리를 달리며 방황하는 자신의 모습만 있을 뿐이었다. 핫라인은 더 이상 휘나가 상상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것이 휘나의 진짜 의지였을 테지만 휘나는 알아채지 못했다.

꿈에서 깨어나 파일을 다시 열어 되감기를 클릭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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