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핫배지 #13

자존심

by 임경주

긴 정적이 이어진다.

째깍째깍 거리던 시계소리도 사라진다. 세상의 모든 빛과 소음이 사라지고 오직 두 사람만 존재한다.

인성이 긴 한숨과 함께 침묵을 깨뜨렸다.

“휴… 그거였어? 알았어. 그럼, 지금 해. 지금 찔러.”

인성은 침을 꿀꺽 삼키더니 죽도를 들고 왔다. 휘나는 인성에게 이끌려 죽도를 건네받았다. 내가 지금 무슨 소릴 한 건가? 이왕 내뱉은 거 잘 하긴 했나? 하며…….

“그게, 그렇게 쌓여있었구나. 난, 선배들한테 숱하게 당했던 일이라…….”

“시은이가 보고 있었어!”

헉! 휘나는 말하고 나서 깜짝 놀랐다. 이미 주워 담을 수가 없었다.

“너 시은이 좋아하냐? 언제부터? 언제부터 좋아했냐?”

“…….”

좋아하지 않는다고 왜 당당히 말하지 못하는 걸까? 정말 좋아하나? 휘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어쩐지……. 민희가 시은이 같은 스타일이긴 했어.”

“시끄러워!”

휘나는 호면을 벗기 위해 뒤통수에 묶인 줄을 찾아 헤매다 인성이 뒤에서 호면을 벗겨주자 그것을 바닥에 신경질적으로 던져버렸다. 호면이 벗겨지니 살 것 같았다. 혈색도 돌아와 하얀 얼굴에 홍조가 드리워졌다. 쿠당탕탕! 하며 호면이 바닥을 굴러 인성의 발 앞에서 멈추었다.

“왜……. 옛날에는 왜 이러지 않았냐?”

인성이 마룻바닥에 나뒹구는 호면을 집어 들며 물었다.

“뭐가?”

휘나가 따지듯이 되묻는다.

“놈들이 새댁이라 놀리며 가지고 놀아도 왜 이렇게 화내지 않았냐고. 학기 첫날, 그때도 시은이는 널 지켜보고 있었겠지.”

“안 한 게 아니라 못했다! 어쩔래? 시은이랑 전혀 상관없거든?”

무서웠다.

언제부터인가 다른 녀석들처럼 피부가 거칠어지지도 않았고, 사춘기를 맞이할수록 피부는 더욱 매끈해졌다. 고 1 때 이렇게 계집애처럼 변했다. 머리 결도 어지간한 여자들보다 더 좋아졌고, 손가락은 마디가 생기지 않은 채로 여자처럼 길게만 자랐다. 심지어 손톱까지.

더군다나, 엄마를 어이없는 사고로 잃은 아빠는 매일 술만 먹으며 인생무상이라고 말해왔다. 사실, 무기력해진 것은 그때부터였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오랜 습관에 젖어버린, 휘나의 세계인 것이다.

사람은 언제든, 어떻게든, 왕이든, 거지든, 미남이든, 추남이든,

죽어버리면 그만이니까.

끝이니까.

대충대충 편하게 살다 가면 그만인 거라고,

아빠의 삶에,

그 퇴폐적이고 무기력한 폐쇄적인 세계에,

그 세계에…….

휘나는 오랜 시간 젖어있었다. 이제는 완전한 휘나의 세계가 되어버린 것이다.

더군다나 날이 가면 갈수록 계집애처럼 변하는 외모.

1학년 때, 변화된 외모를 가지고 녀석들은 장난이었지만 휘나는 무서운 것이 사실이었다. 장난을 받아주지 못하고 발끈했다가 싸우게 되는 것도 무서웠다.

언제까지나 휘나는 착한 아이니까.

그 세계에 살면서, 무기력하고 나약해진 성격을 휘나는 스스로 착한 성격으로 합리화시켜왔다.

계집애처럼 얌전하고 착하고 예의 바른 모범생이 되어버렸고, 놀리던 녀석들이 스스로 반성해 미안해하며 다정하게 다가와 주길 바란 것이 사실이었다. 나약한 휘나에게 있어서, 휘나가 스스로 지킨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무엇보다……. 따돌림받게 될까 봐. 그것이 가장 무서워 바보처럼 놀림당하고 살아왔다.

“하루 사이에 많이 변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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