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핫배지 #14

썸의 시작?

by 임경주

“너, 진짜 살 빼고 싶어?”

“응.”

“그러면 저녁 6시 넘어서 아무것도 먹지 마. 살 뺀다면서 저녁 6시가 넘어서 뭘 먹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거야. 탄수화물 섭취는 저녁 6시 이전에 모두 끝내야 하거든. 근데 그건 너무 어려워. 나도 지금 노력하고 있는데, 너무 끔찍해.”

그렇게 말하고 시은은 교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휘나는 시은의 뒤를 따랐다. 야자까지 끝난 늦은 시간인지라 운동장은 몹시 어두웠다. 어둡고 적막한 밤, 가방을 등에 매고 검은색 교복 상의 호주머니에 두 손을 꼭 집어넣은 채로 이어폰을 통해 노래를 들으며 걷고 있는 시은의 뒷모습.

분홍색 캔버스신발과 분홍색양말이 걸린 얇은 발목 그리고 예쁜 종아리.

그 발목과 종아리만이 하얗게 보였다.

잘 마른빨래냄새까지…….

그 뒤를 따르는 것은 약간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세상이 고요해 이어폰의 노랫소리가 휘나의 귀에도 들려왔다. 휘나의 귀가 노랫소리에 집중하느라 꿈틀거린다. 강렬한 전기기타 소리에 판소리가 뒤죽박죽으로 섞인 음을 잡아냈다.

‘뭐지? 퓨전국악? 퓨전국악을 좋아하는구나……. 그러니, 핫배지가 서로 울릴 일이 없었지.’

휘나는 민희를 알기 전까지 누구라도 좋으니, 핫배지 한 번 울려보고자 허구한 날 정보를 변경해 새로운 코드를 받았다. 그러나 좋아하는 음악에 퓨전국악을 입력해 볼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내일 당장 변경해야겠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블루 37.2도의 정체 모를 그녀가 문득 떠올랐다.

‘아니지, 아니지. 지금 무슨 생각하는 거야. 동요를 퓨전국악으로 변경해 버리면 안 되잖아. 아, 정말 누구였을까? 지금 이 시간,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날 죽음에서 살려낸 것을 알고나 있을까? 정말 만나보고 싶다.’

머리는 다른 생각을 하면서도 휘나의 눈은 시은의 작고 아담한 엉덩이에 꽂혔다. 키는 작지만 몸매가 균형 잡혔고 각선미 또한 뛰어났다. 그래서인지 교복이 무척 잘 어울렸다.

‘엉덩이가 참 작고 예쁘다.’

휘나가 엉덩이를 훔쳐보고 있는 것을 알아채기라도 한 것일까? 시은이 획 뒤돌아 말한다.

“어디 보는 거야?”

엉덩이를 보던 휘나의 눈이 즉시 북극성을 찾고 있다.

“어디 보긴 뭘 어디 봐? 북극성 찾고 있어.”

“북극성이 거기 있냐? 저기 있지.”

“어, 그렇지.”

“걸을 때는 앞만 보고 똑바로 걸어라. 넘어져 코 깨진다.”

“응.”

휘나는 즉시 앞을 보고 반듯하게 걸었다. 시은을 추월해 앞으로 나간다. 뒤에서 들려오는 낭랑한 목소리.

“과일 다이어트 좋다고 들었어. 물론 1960년대에 유행했던 전근대적인 다이어트지만 말이야. 일단, 아무것도 먹지 말고 과일만 먹는 거야. 이제 곧 포도가 많이 나오니까, 포도 다이어트 하면 되겠다.”

휘나는 발을 멈추고 뒤돌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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