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핫배지 #15

농약중독

by 임경주

기말고사를 4일 앞둔 날, 공동고교에 119 응급차가 요란하게 떴다.

이동침대에 누워 오한과 고열에 시달리고 있는 비만아.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헛소리도 마구 한다.

포도가 쫓아온다나 어쩐 다나…….

키 168센티미터에 몸무게 95킬로그램의 살덩이가 응급차에 힘겹게 옮겨진다.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린다.

자욱한 먼지를 일으키며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문을 떠나는 응급차.

시은이 급우들 사이에 있다.

응급차가 사라지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며.



휘나 아빠는 놀란 가슴으로 병원에 도착해 담당 의사를 만났다.

“포도만 쳐 먹고 다이어트하더니! 내가 영양실조 올 줄 알았어. 안 그래도 몸이 허약한 녀석이 살 뺀다고 포도만 쳐 먹고 아무것도 안 쳐 먹으니, 어휴!”

혼자 구시렁거리는 휘나 아빠를 향해 의사가 덤덤하게 말한다.

“영양실조 아닌데요.”

“네?”

“농약 중독인데요.”

의사 상담을 끝낸 휘나 아빠는 조용히 물러가 아들이 입원해 있는 병실로 들어갔다.

“어이, 새댁!”

침대에 누워 링거를 맞던 휘나는 아빠가 들어오면서 놀리자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본다.

“농약 중독이 뭐냐!”

“뭐?”

휘나는 어이가 없어 물었다.

“농약 중독이란다. 인마! 다행히 심각한 상태는 아니라니까 퇴원해도 된데. 집에 가자. 아빠가 천마로 약 내려주마. 깨끗이 해독될 거야.”

막 짐을 싸고 옷을 갈아입고 퇴원하려는 데 뜻하지 않게 친구들이 찾아왔다. 인성을 비롯한 급우들이 휘나를 병문안 온 것이다.

“어이, 손오공. 괜찮은 거냐?”

인성이 활짝 웃으며 말한다. 최근 휘나의 별명은 새댁에서 손오공으로 바뀌어 있었다. 머리의 금강원 때문에 새롭게 얻은 별명이다. 뜻하지 않은 친구들의 병문안에 감동한 휘나. 눈물이 글썽거린다. 들키지 않으려고 이미 다 싼 짐을 황급히 다시 싸는 척한다.

“그러게, 뭘 좀 먹어가면서 다이어트를 해야지.”

인성이 말했다.

그래서 휘나는 잘난 체 마라, 영양실조 아니고 농약 중독이거든?이라고 말하려던 그때, 긴 꼬리를 잇던 마지막 방문객이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놀랍게도 시은이었다.

시은이 휘나를 보며 가벼운 미소를 짓는다.

“정말 포도만 먹은 거야? 칠일 동안? 힘들지 않았어?”

시은은 아이들 틈을 당당히 헤집고 들어와 휘나의 손목에 연결된 링거 줄을 만지며 물었다.

“응, 할 만하던데?”

휘나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계속할 거야?”

“응.”

휘나는 그저 좋아 바보처럼 히죽거리며 대답한다. 시은이가 문병을 왔다.

“뭘 더 해, 녀석아!”

아빠가 한마디 툭 던졌다. 그러자 인성이 끼어들었다.

“그러니까 잘 먹고, 운동으로 살을 빼야 하는 거야. 퇴원하면 검도장 들려라. 야자 끝나고 하루에 한 시간만 투자해도 살이 쭉쭉 빠질 걸.”

인성의 말에 검도는 무산소라 살이 잘 안 빠진다는 둥, 유산소 운동을 해야 살을 뺄 수 있다는 둥 병실이 시끄러워졌다.

그때 인성의 핸드폰이 울려 병실을 조용하게 만들었다. 민희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인성이 복도로 나가자 친구들도 “휘나, 다이어트 파이팅!”하며 작별을 고하고 우르르 몰려 나갔다. 담임선생님의 지시에 의한 같은 반 급우 병문안이라는 의무감에 갑자기 몰려와서 갑자기 사라졌다.

“넌 안 가냐?”

아빠가 누군가에게 묻는다. 시은이 문 앞에 서 있었다.

“휘나가 이렇게 된 데에는 제 책임도 있으니까요.”

“포도 다이어트 네가 알려 준거냐? 그래서, 간호하려고? 이제 퇴원할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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