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핫배지 #16

튀어!

by 임경주

“남자는 관심 없어도, 남들 삼각관계 그런 건 관심 많아. 창작에 도움 되거든. 자, 솔직히 말해 봐. 어떻게 된 거야?”

창작? 시은이가 말한, 하고 있는 일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궁금했지만 휘나는 일단 넘어갔다. 중요한 것은 시은이가 인성이 놈에게 관심이 있냐? 없냐? 이기에.

“아냐, 너부터 솔직히 말해. 솔직히 말하면 나도 다 말할 게.”

“아, 진짜. 너 자꾸 목소리 커지게 만들래? 나 정말 남자는 관심 없다니까? 속고만 살았나. 아, 너 바보라서 매일 속고만 살았다고 했지? 알았어. 맞아, 나 강인성에게 관심 많다. 이제 말했으니까 너도 말해 봐. 둘이 무슨 일 있었어?”

“됐어! 별로 말하고 싶지 않거든?”

순간, 열이 확 받아 오른 휘나. 그래, 결국엔 너까지 강인성이 좋단 말이지. 인성이 놈은 복도 많구나! 인성에게 관심 많다는 시은의 억지 대답은 휘나의 가슴을 후벼 파는 것도 모자라 아예 심장에 말뚝을 박고 있었다. 굉장한 불쾌감.

“어우, 야! 약속했잖아!”

시은이 휘나의 가방 끈을 붙잡고 매달린다. 휘나는 그대로 소처럼 움직여 병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말해준다고 했잖아!”

시은이 가방끈에 매달려 복도에서 미끄럼을 타며 소리친다. 앞만 보고 더욱 힘차게 걷는 휘나. 가방끈이 늘어 날대로 늘어났다. 휘나가 뒤돌아보니 여전히 미끄럼을 타고 있다. 재밌나 보다. 휘나는 시은이 정말 신기했다. 도대체, 종잡을 수 없는 아이였다.


휘나의 집.

아빠 방, 책상 뒤쪽에서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계속 들려온다.

방바닥에 건강의학 서적이 산만하게 펼쳐져 있다. 문을 열고 물끄러미 바라보던 휘나 아빠는 방해될까 봐, 조심스럽게 발을 옮기며 기특하다는 듯이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아하!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음식조절과 운동이구나!”

참으로 큰 깨달음이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탓일까? 생각보다는, 말보다는, 행동이 앞섰다. 기말고사고 뭐고, 안중에도 없다.

곧장 실천으로 옮겨 강변로를 따라 새벽을 연다.

입에서 터져 나오는 거친 호흡과 보람찬 입김.

새로운 태양은 안개를 뚫고, 프리즘을 통과한 가시광선은 세상을 화려한 영상으로 복원하고 있다.

짹짹, 지저귀는 새소리.

흩날리며 사라지는 안개.

이렇게도 아름다웠던가! 세상이 이렇게도 아름다웠단 말인가?

감격에 눈물이 고이고 눈물에 담겼던 세상은 힘차게 내딛는 발과 함께 지상으로 흩뿌려지고 있다.


휘나는 살과의 전쟁을 시작하며 자신을 살린 핫배지의 주인공도 동시에 찾아 나섰다. 지금 뭣 때문에 이 고생을 하고 있는데!

제일 먼저 일가친척, 사돈의 팔촌까지 빌로우 코리아에 근무하는 사람을 찾아봐야 했다. 빌로우 코리아 직원이라면 신원 비공개의 인물이라도 이름과 주소를 알아낼 수 있기에.

“아빠, 빌로우 코리아에 아는 사람 없어?”

“있긴, 있지…….”

어떻게 줄이 닿다 보니 휘나의 이모의 삼촌의 사돈의 조카가(휘나랑 아무 상관없는) 빌로우 코리아 영업팀에 근무하고 있었다. 그러나 휘나의 바람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게 말이야, 고객관리 팀은 보안이 철저해. 고객정보보호에 관한 교육도 철저하게 받고. 거기에 내 애인이 있어도 알아낼 수 없을 거다. 이런 부탁하는 사람들 무지 많다고 들었어.”

휘나가 잘 모르는 이모의 삼촌의 사돈의 조카 되는 사람은 매우 바쁜 사람 같았다. 전화를 뚝 끊어버리는 것이 말이다. 이런 식의 접근, 휘나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휘나는 밤만 되면 어김없이 베란다에서 시간을 보냈다. 놀이공원의 불빛이 하나둘 사라져 암 흙이 될 때까지, 혹시나 하며 기다려보지만 Ai 핫배지는 울리지 않았다. 인연의 고리는 꼬이고 꼬여 토요일 밤, 휘나가 베란다에 서서 핫배지를 만지작거릴 때 복순이가 멀티방에 들어가더니 한참 동안 나오지 않고 있다. 답답하고 성급한 마음에 계단을 밟고 내려와 상가 반대쪽(그녀가 처음 사라진 방향)으로 아파트 단지를 배회할 때 복순이가 멀티방에서 나와 106동 앞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문득 멈춰 선 발.

복순이가 6층 난간을 잠시 올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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