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핫배지 #17

서번트 신드롬

by 임경주

휘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꾸준히 호흡하며 죽기 살기로 뛰었다. 계단을 돌고 돌아, 맨발로 건물을 빠져나가 운동장을 가로질러 달린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모래를 가르는 빠른 발!

초록색 후드 티에 딸린 모자가 긴 머리카락과 함께 정신없이 흩날린다.

인성도 맨발로 운동장을 가로질러 추적한다.

인성은 어제나 오늘이나 매일 같은 옷, 상하 빨간색 트레이닝복에 죽도를 들고 있는 상태다. 복도에 몰려 있던 아이들은 다시 교실로 들어와 창문을 통해 머리를 빼고 소리친다. 그중에 시은도 섞여 있지만 휘나는 결코 뒤돌아보지 못했다.

걸리면 뒤진다!

창문에서 운동장을 바라보는 시은의 표정이 갑자기 안 돼! 하는 경악의 표정으로 바뀌었다.

휘나가 운동장에서 한 번 붙잡혔지만 어떻게 발악하다 보니, 인성의 손아귀에서 또 벗어나 달리고 있다. 운동장 모래가 두 사람 사이에서 한바탕 사납게 일어났다.

“아, 나. 사람 돌게 만드네?”

인성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온 휘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교문을 통과해 보도를 따라 앞으로 계속 달렸다.

휘나의 머리 앞에 수채화처럼 붉은 노을이 펼쳐져 있었다.

여유가 생겨, 뒤를 돌아보니 인성이 더 빠르게 쫓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부러진 코뼈로 인해 코피가 또 터져 지혈하랴 닦아내랴 바쁘다.

‘저 녀석 날 쫓아오지 못한다!’

휘나의 얼굴에 먹구름이 물러나고 해가 떴다. 코뼈가 부러진 탓이었지만 인성이 자신을 쫓아오지 못하니 정말 기뻤다.

신이 나서 달리고 또 달리는 휘나. 그러다 힘이 들어 걷다가 뛰다가를 반복한다. 인성도 지쳤는지, 걷다가 뛰다가를 반복하다가 돌을 집어던지고 욕을 내뱉으며 집요하게 쫓아온다.

“이, 돼지새끼야!”

한참을 그렇게 쫓기던 휘나는 한적한 공원벤치에 앉아 숨을 돌렸다. 인성도 보도에서 화단을 건너뛰어 공원으로 들어섰다. 죽도로 그네를 툭 건드리며 다가가자 휘나가 다시 도망치려고 몸을 일으킨다.

“잠깐, 잠깐. 하아… 하아……. 알았어. 말로하자.”

“하아… 웃기고 있네. 병원이나 가라. 자식아.”

휘나도 숨이 턱까지 차올라 간신히 대답한다.

“하아… 하아……. 안 때려, 안 때릴 테니까 말로하자. 진짜, 진짜 말로하자. 나 죽도 버린다. 봐라.”

정말 죽도를 옆에 버린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면서도 살금살금 휘나에게 다가오고 있다. 시소 두 개만 건너뛰면 휘나를 붙잡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너랑 할 말 없거든?”

휘나가 벌떡 일어나더니, 뒤돌아 또 달린다.

“에이, 진짜! 이, 돼지새끼야! 너, 진짜 잡히면 뒈진다!”

분에 못 이기는 인성의 외침. 인성이 다시 죽도를 꼬나들고 뛴다. 그렇게 뛰고 또 뛰는 두 사람이다.

휘나는 뒤돌아보며 여유 있게 걷다가 인성이 다시 달리면 죽어라 달려 도망치고, 인성이 힘들어 걸으면 다시 여유 있게 걸었다. 여유가 생기자 놀리기까지 한다.

“코피 맛있냐? 배 터지겠다?”

그러다 배화여고 교문 앞을 지나치게 되었다. 어느새 야자까지 끝난 늦은 시간인지라 교문과 주변 분식점에는 수많은 여고생들로 붐볐다. 분식점에는 라면과 떡볶이를 시켜 먹는 여학생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휘나가 순간, 민희를 떠올리는 바로 그 때다. 주머니 속에서 강력한 진동이 울렸다.

핫배지가 울린 것이다.

멈추어 주변을 빠르게 탐색하는 휘나의 눈.

주머니 속에서 핫배지를 빼보니 파란색 불빛을 반짝이며 미친 듯이 울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폭발할 것 같은 심장이 더욱 거세게 뛰기 시작한다.

판막이 터져 역류해 버릴 것만 같다.

전율!

온몸을 사포로 빡빡! 문지르는 것 같은 끔찍한 전율이 머리끝에서 시작해 발끝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누구냐?

도대체 누구냐?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배화여고 학생이었어? 제발, 제발 모습을 드러내라. 나 여기 있어. 이렇게 당당하게 여기에 있다고!

쫓아오는 인성은 안중에도 없이 멈추어 서서 주변을 빠르게 탐색하는 휘나의 눈.

너냐?

너야?

수많은 여고생들의 눈을 하나하나 확인한다. 핫배지가 울리고 있으니, 분명 눈빛으로 알아보리라! 휘나를 중심으로 모든 것이 뱅뱅 돈다.

여학생들의 대화소리도, 웃음소리도, 건물도, 나무도, 하늘도, 구름도.

어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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