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핫배지 #18

by 임경주

드디어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여름방학이 되었다.

“이건 너무 불공평하잖아. 왜 우리오빠만 방학기간동안 사회봉사에다가 특별교육을 이수해야 하냐고!”

독서실 앞 편의점,

컵라면 뚜껑에 두 손을 올리고 불평을 늘어놓는 민희의 얼굴이 사뭇 귀엽다. 휘나와의 사건으로 인성의 대통령배 출전은 물 건너갔고, 일본전지훈련에서도 제외되었으니 방학동안 인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질 것을 기대했던 민희에게 청천벼락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사람을 죽일 뻔했는데, 정학 처리해야지. 사회봉사가 뭐냐? 그 학교는 뭐 그러냐?”

민희가 순간 발끈해 복순이를 째려본다.

“너 왜 그래? 말끝마다 우리오빠 비꼬고?”

“우리오빠, 우리오빠. 퍽도 좋겠다. 난 동네양아치로밖에 안보이더라. 너 잘 처신해라. 색안경이 씌어서 뭐가 잘 안보이나 본데.”

“너나 잘하세요. 문병 간다며, 안가냐?”

“어머 애는 정말. 무슨 문병이야! 핫배지 전해주려는 거지.”

“에이, 핑계 대기는. 왜 그렇게 놀래? 핫배지 울리니까 좋았어? 핫라인 연결해 보았겠네? 어땠어? 미리 말해두지만, 난 그 오빠랑은 핫라인 연결 안했다. 얘기 좀 해줘 봐. 꿈속에서 끈적끈적 했어? 잘 해주디?”

“이게 정말! 확, 라면을 얼굴에 부어버릴까 보다!”

민희가 자꾸 놀리자 복순이는 소리를 빽 질렀다. 익고 있는 컵라면을 얼굴에 부어버릴 기세다.

“알았어, 계집애 소리 지르기는. 그나저나, 배지가 울려도 어떻게 그렇게 울리냐? 악연이다, 악연이야.”

입을 꼭 다문 복순이의 얼굴, 컵라면 뚜껑을 열자 안경이 뿌옇게 변했다.

방학이 시작되고 일주일동안 휘나는 병원신세를 면치 못했다. 금강원 덕택에 치명적인 사고에서는 벗어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정수리와 뒤통수의 상처를 합쳐 24바늘을 꿰맸다. 삭발한 머리에 붕대를 감은 상태로 절대적으로 안정을 취해야만 했다.


복순이는 민희의 야유에도 불구하고 결국 휘나의 병실을 찾고야 말았다.

“전해주고만 오는 거야. 다른 이유 없어.”

혼자 중얼거리며 복도를 지나쳐 병실을 찾다보니,


<김휘나>


라는 네임플레이트의 이름을 발견했다. 그러나 병실 문 앞에서 한참을 서성거린다. 문은 살짝 열려있지만 노크를 할 수가 없었다.

핫배지는 핫배지일 뿐이야, 그래도 전해주긴 해야겠지, 하고 막 노크와 함께 들어서려는 그 때 유쾌한 여자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호호호! 공부하고 싶다고?”

“응, 농담 아냐. 나, 정말 공부하고 싶어.”

휘나가 시은이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벌써 사흘 째, 시은은 하루가 멀다 하고 휘나의 병실을 찾아왔다. 남들 앞에서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으면서 휘나 앞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휘나는 시은이가 병원에 찾아온 날, 시은이가 그토록 궁금해 했던 모든 일들을 다 말해주었다. 민희와 처음 핫배지가 울린 것부터 시작해 인성과 함께 만나 영화를 본 것 그리고 때밀이 아르바이트해서 돈 뜯긴 거랑, 키스하는 장면을 목격한 것까지. 그리고 자살을 결심했다가 핫배지가 울려 다시 살아나게 된 것까지 모두 자세하게 얘기해주었다.

시은은 매우 진지하게 휘나의 얘기를 들었고, 휘나가 모든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뒤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모든 게 다 욕심나. 살 빼고, 공부하고……. 그리고 특별히 없네.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저것 다 열심히 하고 싶은데. 인생무상인지라.”

시은이 획 돌아보며 묻는다.

“인생무상? 노인네 같은 소리 할래?”

“뭐가 노인네 같은 소리야. 왕이든 거지든, 잘난 놈이든 못난 놈이든 다 죽으면 그만이고, 땅에 묻히면 똑같이 구더기 밥 되는 건 마찬가지잖아. 아빠가 그랬어, 죽으면 다 그만이라고. 죽음에는 차별이 없다고. 누구나 다 똑같다고.”

“그래, 맞아. 죽음에는 분명 차별이 없지. 네 말대로 왕이나 거지나 죽으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삶에는 분명 차별이 있어. 그러니까 살아 숨 쉴 때 그 차별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아야 할 거 아냐! 삶은 차별을 이루기 위한 싸움의 연속이란 말이야. 너, 뭐 잘하는데?”

“잘하는 게 하나도 없다. 그래서 나도 뭔가 하나는 잘하고 싶다.”

시은의 말을 곱씹어볼 여유도 없이 휘나는 대답했다. 삶은 차별을 이루기 위한 싸움의 연속이라니.

“잘 하는 게 하나도 없는 게 아니라, 뭘 잘하는지 모르고 있는 거겠지.”

“아냐, 나 잘하는 거 하나도 없어.”

“너, 잘하는 거 있어. 네가 몰라서 그래.”

“그럴까? 난 뭘 잘할까? 나, 잘하는 거 없는데.”

“토하는 것도 잘하지. 달리기도 잘하지. 벌써 두 가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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