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奇)와 혈(血)의 시대 #3

봉인

by 임경주

아기를 살려야 했기에, 급하게 발을 움직인다. 나뭇가지가 뺨을 스친다. 발을 헛디뎌 넘어져 몇 바퀴를 구른다. 그 와중에도 아기를 품에 잘 안고 있다. 벌떡 일어선 순간이다. 사방이 고양이 떼다. 숲 속에서 눈을 형광처럼 발광하며 아기처럼 울부짖는다. 타앙, 발광하던 눈들이 일순간 흩어졌다. 총성과 함께 외팔이는 앞으로 날아가 고꾸라지고 말았다. 사각사각, 나뭇잎 밟는 소리가 들려온다. 동료는 외팔이의 품에서 아기를 빼앗아 들었다. 아기 울음소리가 멈추었다.

“뭐, 사냥꾼들 사고로 죽는 일이 태반이니까. 잘 가라고.”

동료는 그대로 내려가기 아쉬운 듯하다. 한마디 더 한다.

“그렇지 않아도 네놈, 연합회에서 소문이 좋지 않아. 그 팔, 스스로 잘라낸 거지? 뭐가 달라붙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애썼어. 이제 편히 가라고.”

동료는 휘파람을 불며 산을 내려간다.

어디서 나타났을까, 들 고양이들이 하나둘 따라붙는다. 외팔이는 끄응, 하며 일어나 마사무네를 빼들었다. 열 보를 사이로 동료는 깜짝 놀라 뒤돌아보았다. 또다시 숲 속에서 수많은 눈이 발광했다. 야옹, 야옹하며 아기고양이들이 울부짖는다.

조준점을 찾을 수가 없다.

정확히 쏴야 할 곳을 정하지 못하며 이리저리 산탄총을 겨누는 그때, 외팔이는 마사무네를 던져버린다. 회전과 함께 날아간 마사무네는 나뭇가지를 가르고 동료의 목에 가로로 박혀버렸다. 피가 소나기처럼 떨어지며 휘청거리던 동료는 쿵! 하고 넘어간다.

“멍청한 놈. 머리를 겨누었어야지.”

사냥을 하다 보면 실수로 동료를 향해 총을 발사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외팔이는 이런 일에 대비해 방탄조끼를 착용한 상태였다.

고양이들은 동료의 시체로 모여들었다. 외팔이기인사냥꾼은 고양이들을 애써 무시한다. 가서 아기를 안아보니, 아기는 이미 숨을 거두고 말았다. 몸이 굳고 체온이 식어간다. 외팔이는 아기를 품에 안고 털썩 주저앉아 또다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한참을 울다 보니,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외팔이는 아기와 아빠엄마를 한 곳에 곱게 묻어주고 산을 내려왔다.

고양이들이 뒤따른다.

뒤돌아 돌을 집어던지니, 흩어졌다가 다시 따른다. 외팔이기인사냥꾼은 무서웠다. 붙어있지 않은 왼팔이 꿈틀거렸다. 누군가가 뇌를 쥐어짜는 것만 같았다. 지독한 고통이었다.

파동을 맞은 후, 항상 그래왔다. 고양이들이 영혼을 잠식하는 것만 같았다. 내가 사라지고 고양이들이 내 몸을 차지하는 것만 같았다.

순간, 기억이 사라져 간다. 아득하게 사라져 간다. 딸아이의 얼굴도, 아내의 얼굴도.

이빨이 가렵다. 조금 더 길게 자라난 송곳니 네 개가 너무도 가려워 이빨 전체가 가려운 것 같다. 눈이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색상을 구분할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다 흑과 백으로만 보인다.

저놈의 고양이, 저놈의 고양이들은, 대체 무얼 원하는 것일까. 외팔이는 멀어져 가는 기억의 끈을 필사적으로 붙잡았다. 붙잡으려 하면 할수록, 누군가가 머리를 붙잡아 뇌를 쥐어짜는 것만 같았다. 끔찍한 고통과 함께 기억은 멀어져 갔다. 외팔이는 겨우 집을 찾아왔다.

고양이들은 갓 난 아가처럼 울며 집요하게 집까지 따라왔다.

집에 돌아온 외팔이는 대문 앞에서 만개한 벚나무를 올려다보며 기억을 되살릴 수 있었다. 다행히도 눈이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앞이 제대로 보인다. 들어가자마자 미친 사람처럼 침을 질질 흘리며 급히 마사무네를 봉인한다. 마치, 넋이 나간 사람 같았다. 외팔이는 단비가 아가였을 때 사용했던 기저귀천을 쭉쭉 찢어, 검을 미라처럼 꽁꽁 감싸버렸다.

“아빠, 왜 꽁꽁 감싸는 거야?”

5살 딸아이가 묻는다.

“응, 다시는……. 다, 다시는, 뽑지 않으려고…….”

외팔이는 말을 더듬는다. 침도 흘린다.

“나 검술 더 배우고 싶은데?”

“그래, 하, 하지만 미안……. 하, 하구나. 이, 이젠……. 더, 더 이상 못 가르쳐, 주, 줄 것 같아. 음, 다, 단비야……. 대, 대신 피아노를 열심히 쳐. 다, 단비는 피아노를……. 저, 정말 좋아하고, 또……. 자, 잘 치잖아. 이, 이렇게 조, 좋은 스승이 옆에 있고 말이야…….”

엄마는 말을 더듬는 아빠를 불안해하며 단비를 안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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