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奇)와 혈(血)의 시대 #2

기억상실

by 임경주




─얼마나 쓰러져 있었을까?

엄마는 전화벨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전화를 받자마자 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이아빠다.

“여보, 별일 없는 거지!? 여보! 말해 봐!”

“왜 그래 무섭게? 엄청, 무서운 꿈 꿨단 말이야.”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단비, 단비는?”

“단비…….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엄마는 주변을 둘러보며 딸아이를 찾는다.

“여보, 지금 다 도착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문 꼭 잠그고 있어. 아무 일 없을 거야! 무서워하지 마! 이제 괜찮아!”

엄마는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모르겠다. 단비가 없다는 사실에 점점 두려워진다. 마당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와 뒤돌아본다. 거실 유리창 앞에 치와와가 험악한 이빨을 드러내고 침을 질질 흘리며 으르렁거리고 있다. 한데, 몸이 사람의 몸이다. 이빨에는 살점이 덕지덕지 껴있고, 입 주위가 온통 피투성이다.

꿈이 아니었던 것이다.

“꺄아아아악!”

하고 수화기를 떨어뜨리며 비명을 내지르는 순간, 치와와가 주먹으로 유리창을 박살 낸다. 쨍그랑, 하며 쏟아지는 유리파편과 함께, 순식간에 거실로 침범한 치와와는 엄마를 향해 돌진한다. 장난감 자동차에 발이 미끄러져 뒤로 꽈당! 하고 넘어졌다.

엄마는 즉시 안방으로 들어갔다. 문을 잠그고, 창문까지 잠근다. 두려움과 놀라움에 온몸이 발발, 떨리고 있다. 안절부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딸아이 생각에 뭘 어떻게 해야 하긴 하겠는데, 도무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순간, 거실 장식장위에 거치되어 있는 마사무네(*마사무네는 일본의 대표적인 명검으로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다. 단비아빠는 짚단 베기 훈련용으로 일본에서 직접 고가에 구입한 일본도를 마사무네라 이름 짓고, 장식품처럼 끔찍하게도 아꼈다. 이하 마사무네라 칭한다)가 생각난다. 애들 아빠처럼 검을 잘 다룬다면, 마사무네로 저 괴물의 목을 날려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뿐, 도무지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때, 우당탕! 하며 누군가가 또 들어왔다. 한바탕 요란한 소리가 들려온다. 깽! 하는 소리가 들린 후 모든 것이 잠잠해졌다. 누군가가 문고리를 거칠게 돌린다.

“여보! 단비 엄마! 어디 있어?”

남편의 목소리다!

엄마는 남편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비로소 몸이 움직였다. 문을 열자마자 와락 안겼다. 남편의 등 뒤로, 치와와의 목이 잘려있고, 사람의 시체가 목에서 피를 콸콸 쏟아내고 있다.

“괜찮은 거지?”

뭔가 이상하다. 엄마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선다. 남편을 다시 자세히 본다. 남색도복에 피를 뒤집어쓴 그 모습은, 그 괴물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더 무서운 모습이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워 온 것이다.

왼쪽 팔 대신 고양이의 상반신을 달고서.

─야옹, 고양이가 떨어져 나오기 위해 몸부림치며 울부짖는다.

아빠는 고양이의 상체를 그 자리에서 잘라내 버렸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고양이들이 화단과 담 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갓난아기처럼 운다.

단비는 화단에 쓰러져 있었다. 양다리의 살점이 심하게 물어 뜯겨 있었지만, 신기할 정도로 빠르게 회복되었다. 흉터도 남지 않았다. 아빠가 급히 다가가자 고양이들이 물러난다. 모여 있던 고양이들도 흩어진다.

“단비 옆에 뭐가 있었소?”

“고양이요! 너무 예쁜 고양이였는데...”

아빠는 단비를 품에 안았다.

“이건, 절대로 비밀이야. 누구에게도 말해선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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