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핫배지 #22

시행착오

by 임경주

7/ 현(現)


사랑은 누구나 다 통과의례적인 시행착오를 거친다. 내적불행에 의한 공허함에 의해, 처음부터 갖고 태어난 천성에 의해, 환경에 의한 습관에 의해…….

돌아가지 않아도 될 길을 돌아가는 것이다.


“나 참, 웃기지도 않아. 손님 다 내쫓고 그렇게 퍼먹더니 오천 원? 학생! 지금 장난해? 분식점 한다고 사람 우습게 보여? 빨리 내놔! 십삼만 원! 오천 원 깎아 준거야!”

점심 장사할 양을 거의 다 먹어 해치운 휘나는 돈이 5천 원 밖에 없었다. 이마에 말라붙은 피딱지를 닦지도 않은 채, 오천 원을 내밀고 있는 손이 무척이나 민망해 보인다.

“저기, 아빠한테 전화 좀……. 쓸게요.”

“학생 전화기 써!”

“지금 전화기가 없어서요.”

“뭐야? 정말,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오네. 어서 써!”

휘나가 아빠에게 막 전화를 거는 그 때다. 한 여학생이 뛰어 들어왔다. 여학생의 얼굴이 흐리게 보이자 안경을 벗어 보았다. 안경을 벗고 보니 인도 미인 같았다. 키도 훤칠하고, 꾸미지 않은 수수함이 더욱 빛났다. 목이 조금 늘어난 헐렁한 회색 라운드 면 티에 오래되어 색이 바란 남색 면바지가 무릎을 가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아리가 무척이나 길다.

급하게 달려 나왔는지 슬리퍼도 제 짝이 아니었다. 오른 쪽은 면으로 만들어진 실내용 슬리퍼고 왼쪽은 비키니 슬리퍼였다. 머리도 대충 묶어 조금 흐트러져있다. 앞 머리카락에 물기가 묻어있는 것이 이제 막 세수하다가 달려 나온 것 같았다.

“아, 아주머니.”

복순이는 식당 주인을 조심스럽게 불렀다.

“왜?”

“이거, 다 해서 얼마…….”

“왜? 학생이 그걸 왜 물어? 계산하게?”

“아, 아뇨. 이 정도 먹으면 얼마 나오나 해서요.”

막 아빠랑 통화하려던 휘나는 여학생이 하는 말을 듣고 창피해 고개를 돌렸다. 등까지 돌린 채로 전화기에 대고 속삭인다.

“아빠, 지금 빨리 통장에 돈 좀 보내 줘. 왜는 뭐가 왜야, 필요하니까 그렇지. 나 잡혀 있단 말이야. 여기? 분식점……. 좀 먹었어. 십삼만 원……. 십오만 원 보내 줘. 나중에 자세히 말해 줄게. 아이! 내가 다 먹은 거야. 여기? 분식점이라니까……. 아줌마 바꿔줄까? 아들 말 못 믿겠으면 바꿔줄 게. 알았어. 미안해. 정말이야, 그래 내가 다 먹은 거야. 알잖아.”

휘나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조심조심 걸어와 아주머니에게 말했다.

“돈 찾아올게요. 가방은 여기에 두고 갔다 올게요.”

가방과 안경을 구석탁자 위에 올려두며 여학생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보았다. 그 때 여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조금은, 익숙한 눈빛이었다.


복순이는 새벽 4시부터 일어나 점심이 다 되도록 공부하다가 슬리퍼도 대충 신고 기숙사 공동 세면장에서 세수를 했다. 그 때 본의 아니게 옆에서 양치질하는 후배들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완전, 미친 돼지야. 타이밍벨트 억지로 벗을 때 무서워서 혼났어. 그게 벗겨지데?”

“바바리 맨 요즘 뜸하다싶더니. 돼지가 난리를 치네.”

“그래도 살 많이 빠졌던데? 그 때 교문에서 머리 터져 쓰러질 때만 해도 좀 뚱뚱했었는데.”

“자세히 보니까 인물 되게 좋더라. 잘 생겼던데?”

“그럼, 너 가져.”

“그럴까? 호호호! 아냐, 잠깐만. 그 때 그 선배언니랑 Ai 핫배지 울렸는데, 둘이 어떻게 됐지?”

“정말? 그 와중에 Ai 핫배지 울렸어? 누구랑?”

“복순이 선배.”

복순이는 세면장 뒤편에 있어서 후배들에게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복순이는 그대로 세면장을 빠져 나와 숨이 턱까지 차오를 정도로 힘껏 달려 왔다. 정말 그 오빠가 맞나, 하며 살짝 안을 들여다보니 이마 여기저기가 찢어져 흘러내린 피에 식탁에는 먹고 남은 음식 쓰레기가 지저분하게 널려있었다. 잠시 몰래 훔쳐봤더니 돈이 없단다. 복순이는 일단 앞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마주친 눈과 눈.

“저, 저기.”

“?”

“얼굴 좀…….”

복순이가 닦을 것을 찾아, 실내를 두리번거리자 아주머니가 물수건을 휘나에게 휙! 던져주었다. 거울 앞에서 얼굴을 대충 닦으며 여학생을 또 훔쳐보았다. 그러다 거울을 통해 눈과 눈이 또 마주쳤다.

어색한 휘나는 그대로 분식점을 빠져나가 편의점으로 달렸다. 현금 인출기 앞에서 돈을 인출한 뒤 천천히 걸어 분식점 앞에 도착하는데, 갑자기 많이 먹어서인지 배가 살살 아파 왔다.

휘나는 아주머니에게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돈을 지불하고 가방과 안경을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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