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핫배지 #25

난 너의 아바타야!

by 임경주

어느새 사위가 어두워지고 있었다.

“자꾸 어디가?”

“집에 가지, 어디가.”

“그래. 집에 가는 구나.”

휘나는 졸졸졸 뒤따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리……. 영화 보러 갈까?”

“싫어.”

“그럼 놀이공원 갈까?”

“싫어.”

“그럼 어디 앉아서 얘기할까?”

휘나는 재빨리 시은이 옆으로 가서 몸을 낮추었다. 시은의 입이 꼭 다물어져 있다.

“그것도 싫어?”

다시 물었지만 역시나 대답이 없다. 그저 앞만 보고 걸을 뿐. 휘나는 도대체 시은의 속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퍼뜩 연애 책에서 보았던 글귀가 떠올랐다.


여자의 심리, 여자는 싫으면 싫다고 확실히 말한다. 몰라, 알아서 해, 맘대로, 대답이 없는 등등은 좋다! 라는 의사표시라 보아도 무방하다.


순간, 휘나의 눈에 시은의 작은 손이 들어왔다.

잡고 싶다!

시은이는 자연스럽게 내 어깨에 팔을 올리고 엉덩이에 베개를 올리고 팔꿈치로 누르는데, 손 한 번 잡는다고 큰일이야 나겠어?

휘나의 손끝이 꿈틀거린다.

그러다 다시 허벅지를 뻑뻑! 문댄다.

과연 손을 허락할까?

이 분위기는 그런 분위기란 말인가?

아니란 말인가?

큰 착각을 하고 있단 말인가?

아니란 말인가?

손을 꿈틀거려 잡으려는 그 때 시은이가 고개를 들더니 활짝 웃으며 말했다.

“잘 가, 난 집에 가야겠다.”

“…….”

“안녕.”

손을 흔들며 안녕, 안녕 이라.

기분이 묘했다.

휘나의 몸은 그대로 도로에 얼어붙고 말았다. 손잡으려 한 것을 들키고 말았어!

휘나의 눈이 빠르게 주변을 둘러본다. 만만한 편의점이 보였다.

“시은아, 배 안 고파? 저기서 컵라면 먹을까?”

“아냐, 생각 없어.”

단호하게 거절한다. 안 돼! 제발 그런 표정만은.

“나 갈게. 안녕, 낼 보자.”

시은이 활짝 웃더니 뒤돌아 걷는다. 갑자기 날씨가 더워졌다. 숨이 막혀왔다. 휘나는 더 이상 따라갈 수가 없었다.

잡아야 하는데, 이대로 가버리면 서로 잘 알지 못하던 처음으로 되돌아 가버릴 것만 같았다. 순간, 시은을 잡을 수 있는 묘책이 떠올랐다.

아바타!

“난, 너의 아바타야!”

휘나가 소리치자 시은의 발이 멈췄다. 뒤돌아봐라! 제발 뒤돌아라! 하는 휘나의 염원에 따라 시은이 뒤 돌아섰다.

“휘나야, 넌 너무 착해. 사람이 어떻게 사람의 아바타가 될 수 있겠어. 그냥 장난친 거였어. 넌 좋은 친구야. 이제 잊어버려. 네 말대로 어떻게 그런 세상이 오겠어.”

“아니, 나 처음부터 그렇게 싫지만은 않았는데 일부러 싫다고 했어. 자존심도 그렇고, 남들이 놀릴 까봐 창피해서도 그렇고, 물론, 그런 세상이 온다는 거, 못 믿은 것은 사실이야. 하지만 나 베오니 블란쳇 기사를 봤어. 네 말이 맞아. 난 이제 네가 팥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믿을 거야.”

휘나는 목청을 더 높여 소리쳤다. 거리의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본다.

시은이는 한참동안 휘나의 얼굴을 바라만 보더니 풋! 하고 웃었다. 그리고 천천히 말한다.

“베오니 블란쳇은……. 아마도……. 그래, 그저 이상한 사람일뿐이겠지. 그런 세상은 절대로 안 와. 내가 억지 부린 거야.”

뭐야? 이게 아니잖아. 시은아 이런 모습 보이지마! 너에게 전혀 안 어울리는 모습이란 말이야. 휘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갈게, 낼 보자.”

그렇게 시은이는 명랑한 뒷모습을 남기며 사라져갔다. 휘나는 더 이상 잡을 수가 없었다. 허탈하게 뒤돌아선 순간, 호주머니에 넣어둔 핫배지가 생각났다.

“방시은!”

“왜에.”

어느새 멀어져간 시은이 귀찮다는 듯이 뒤돌아 대답했다. 한발, 두발, 세발, 네발, 다섯 발. 휘나는 천천히 발을 움직여 시은이 코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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