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에 대하여. 임산부와 유방암
까만 밤하늘만 있는 것 같지? 별도 있어
오후 2시 30분. 4시에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기에 무엇을 새로 시작하기 애매한 시각이다. 커피를 끓여 마시며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는 그때, 반가운 이름이 뜨며 전화가 걸려왔다.
K였다. 회사에서 내 동향 후배였고 15년을 다녔으나 그냥 없어져 버린 회사에서 그나마 건진 건 K와의 인연이다. 나와 나이가 1년 차이 나지만, 회사 그만둔 지 오래됐는데도 여전히 깍듯이 대하며 날 잘 챙기는 그녀다. 몇 년 전 종아리 통깁스 신세로 출퇴근을 했을 때도 퇴근 시 꼬박 우리 과로 와서 집으로 가는 택시를 잡아주는 친절한 사람이다. 사람 만나는데 편견이 정말 없었던 그녀를 보며 참 배울게 많다 생각했었다. 그리고 결혼 후 나와 같이 시험관 2번 만에 성공해서 어렵게 아이를 품었을 때도 누구보다 기뻤었다. 그녀와 만나는 시간이나 전화, 카톡은 전혀 소모적이지 않았다. 몇 안 되는 관계 속에 나는 내 육아용품을 전혀 아끼지 않고 죄다 물려줄 정도로 챙겨주고 싶은 그녀였다. 그렇게 기다리는 K의 연락이었다.
내가 먼저 연락할 수 없었던 데는 이유가 있었다. 첫째로는 이제 세상에 나온 지 50일 정도밖에 안된 갓난아기를 키우는 터라, 잠시 쉬고 싶은 시간에 내가 연락하느라 그녀의 체력을 소모시키고 싶지 않아서였고, 둘째는 K가 아프기 때문이다.
임신 30주가 넘어 안 좋은 병에 걸렸다. 이게 말이 되는 걸까. 드라마처럼 만들어내는 이야기 같은데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뭐..라고?..." "유방암이요..."
" 하.. 어떡하니ㅜㅜ"
K가 아프다는 말을 건네 들은 것도 아니고 본인 입으로 말하는데, 어처구니없이 내 입에선 그런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너무 놀라 말을 잇지 못하니 "어떻게 잘 되겠죠." 오히려 말 못 하는 나를 위로한다.
사정이 생겨 조리원에 못 들어갈 것 같다. 37주에 제왕절개로 출산할 것 같다며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늘어놓을 때, 제발 입 다물고 그만 물었어야 했다. 멈췄어야 했다. 감당 안될 소리를 들을 준비도 안됐으면서 생각 없이 물었던 내 잘못이 크다.
유방암.
출산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만삭 임산부와 가장 어울리지 않는 단어 아닌가. 예전에 의료기관에서 일할 때 아이를 품고 있는 중이어서 자궁암 진단이 늦었던 환자를 본 적이 있다. 100일 정도밖에 되지 않은 아기를 데리고 치료받으러 와서 직원들의 동정을 샀던 바로 그 일이 확 떠오른다.
정말 너무하다. 아기가 태어나 제일 먼저 찾는 것이 엄마의 젖이다. 젖양이 모자라 먹이지 못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젖을 물릴 수 없는 어미의 마음은 어떨지. 아이 낳고도 몸조리에 온 힘을 써도 모자랄 판에 낳자마자 그제야 제대로 된 진단을 위한 핵의학 검사가 가능한 것이다. (몇 기인 지도 지금 모른단다.) 아이 낳고 퇴원도 하기 전에 치료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출산하면 더 바빠질 것 같아 일치감치 출산 선물과 장난감, 아기용품들을 택배로 보냈다. 내가 할 수 있는 위로란 아이 키우는 것이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고 고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기다렸던 만큼 그 아이로 인해 받은 위로는 어느 누가 줄 수 없는 거라고 그렇게 밖에 말하지 못했고, 순산을 기원한다는 짧은 카드도 동봉했다.
그리고 출산 소식을 잠잠히 기다렸다. 프사에 신생아가 울고 있는 사진이 올라오길 기다렸다. 1달이 지나도 연락은커녕 프사도 바뀌지 않았다. 안 좋은 생각이 자꾸만 들었지만, 선뜻 연락할 수가 없었다. 얼마나 정신없는 날들이 이어질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지 않다면 하루를 버티기도 힘들지 않을까 생각해보면서 말이다.
K를 몇 번이나 본 남편은 출산할 때쯤 되지 않았냐며 자주 묻는다. 나는 설거지 한 그릇을 정리하는 척하며 돌아선 채 응, 그쯤 됐지 하며 무심히 대답했다. 남편에게조차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그 누구의 입에도 오르내리지 않았으면 좋겠는, 그런 기분이었다. 이게 무슨 의리라도 되는 마냥 입을 꾹 다물었고, 남들이 동정하는 말도 듣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어느 날 드디어 K의 프사가 아기로 바뀌었고, 그 순간 바로 메시지를 보냈다. 아기가 참 이쁘다고 마음껏 축하해 주었다. 아기는 분유 먹고 소화시키는 게 조금 힘들어 자주 게운다고 했고, 지금은 도우미가 있어 잠시 숨 돌릴 정도는 된다고 했다. 치료는 어떻게 되고 있는지, 몇 기인 지, 항암은 힘들지 않은지 묻고 싶은 말들이 많았으나 꺼내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아기의 모습과 행동들을 발견한 소소한 얘기들이 오갔고, 우리들의 대화는 그것만으로 충분했고,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안심했다. K도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