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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Mar 21. 2018

비밀이 많은 여자

J에게

그는 나에게 비밀이 많다고 했다.

추리소설 속 신비로운 여주인공이 된 것 같아 짜릿했지만 찰나였다. 나는 짝 당황했다. 비밀이라는 단어를 변명하기 위해 또 무수히 많은 거짓말을 지어낼까 봐


그가 뒤에 덧붙인 말

-내가 스스로 입밖에 꺼내지 않는 이야기는 묻고 싶지 않으며 자신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서 사랑해줄 뿐이라고- 

은 잘 들리지 않았다. 듣기 좋았지만 그 말은 내 환부의 본질과는 상관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소 공허했다.


나는 나에게 '비밀'이랄것 까지는 없다고 대꾸했다.

당신이 알려고만 하면 모든 걸 알게 될 거다.

부러 말하지 않는 것이 많은 것, 비밀이 많은 것은 이전의 연애로 인한 자기방어적인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고 했다.

그냥 그렇다고'만' 했다.


그는 내 말을 이해했을까

이해하지 못했을까


어영 부영 알듯 말듯한 여운을 남기긴 했지만 그에게 비밀이랍시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늘어놓지 않는 이유는 사실 이렇다.


첫째는 비밀이나 지극히 사적인 얘기를 공유하면서 관계가 돈독히 되는 것이 두려워서다.
어떤 얘기들나에게 엄청나게 큰 의미를 갖느냐고 묻는다면 아니다. 이야기하지 못할 것도 없다.


그러나 문제는 그 행위 자체다. 무척이나 사적인 이야기를 '공유하는 행위'의 함의가 사뭇 진지하다는 것이 문제다. 공유자가 되기까지 쌓아야 할 신뢰를 양자 공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뢰는 관계의 자양분이다. 그러니까 비밀을 공유한다는 것은 관계를 돈독히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관계를 돈독히 한다는 것은 상당히 많은 변화를 내포한다. 대표적으로 기대와 의지가 있다.

기대와 의지란 무엇인가
쉽게 말하면 그것은 일종의 부채다.
그가 할 수 없는 것을 기대하고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의지하는 것.

둘 다 본질적으로
상대에 대한 강한 애착을 기반으로 싹트고 
희망에 기생하면서
"기의 행복과 불행의 조종간을 통째로 타인의 손에 쥐여준다"는 것이 문제다.(은희경/새의 선물)


상대에 대해 기대하고, 의지하면서 행복과 슬픔을 수차례 오고 가는 것이 얼마나 피곤하고 소모적인 일인지 나는 안다. 그리고 기대와 의지라는 떨거지들을 끌고 다니던 관계 자체가 깨져버렸을 때 그 상실감과 배신감에 대해서도 나는 충분히 안다.

그리고 젊은이에게
연인의 관계란
그 얼마나 흩어지기 쉬운 것인지도 나는






그러니까 딱히 그의 탓은 아닐 것이다.

외려 내 탓이겠지.


나는 그와의 관계가 다분히 한시적이라고 생각한다. 계절적이며 일시적이고 변덕스러우며, 연약한 관계.

이런 관계와 몸을 격렬히 섞는 때는 둘 중 하나다.

바보가 되었거나, 사랑에 빠졌거나


나는 바보도 아니고 아직 사랑에 빠지지도 않았다. 그래서 '비밀을 공유하는 행위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선택을 유지하고 있다.


두 번째는 앞선 명제를 부연설명하는 형태로 이뤄진다.

나는 사실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

나는 연애를 하고 싶지 사랑을 하고 싶지 않다.

나는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에게 바라는 것이 없다.

나는 어쩌면 나 자신만을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나는 연애를 사용가치라고 생각한다.

나는 서로가 서로의 효용가치만을 충족시켜주면 되는 관계였으면 한다. (나는 그에게 예쁜 여자 친구, 그는 내게 무료한 생활의 환기 정도로)

나는 그가 나에게 무언가 바라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우리가 적당히 만나다가 헤어지길 바란다.

나는 아무것도 약속하고 싶지 않다.

나는 반려자를 찾는 게 아니다.

나는 연애의 파트너로서 그를 선택했다.


그러니까 나는 구구절절 그에게 뭔가를 설명하고 이해시키며 공유하는 과정 자체를 불필요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어차피 헤어질 거니까.

어차피 공허한 일이 될 테니까.


서워

내가 '비밀'을 말하기 시작하면 이 음침한 속마음들이 당신에게 와르르 쏟아질까 봐


누군가 이 글을 읽는다면 나란 사람을 지독하게 비겁하고 끔찍하게 부도덕하다고 판단할까?


한편의 양심이 내게 묻기도 한다.

내가 이전의 연애로 인해 상처받고 흠집이 났다고 해서 지금 같은 비정상적인 연애를 정당화할 수 있느냐고


러면 한편의 이성이 그를 비웃는다.

아직 덜 아픈가 보다고


나는 처음으로 깊은 애착을 제거하고도 외형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연인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현재까지는 꽤 성공적이다.


우리 내일 헤어진다면 눈물 한 방울쯤은 흘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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