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면서 지난 6년 동안 책을 거의 읽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책을 안 읽고 살았어도 육아하는 시기에 책을 읽기 시작하던데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드라마를 봤다. 나한테는 드라마가 소설책 같았다. 내가 영화보다 드라마를 더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 나는 그냥 긴 이야기가 좋았다.
그러다가 뭐라도 하고 싶었을 때(아마 운이 바뀌었을 때) 인문학 수업에 참석하게 됐다. 남편은 나에게 이제 새로운 걸 좀 배워보라고 했지만 나는 다른 건 하고 싶지 않았다. 집에만 있어서 그런지 자신감이 부족했고, 익숙한 걸 하고 싶었다.
인문학 수업에는 은퇴한 노부부, 학원을 운영하는 사람, 교회에 다니는 사람, 가정주부 등이 모였다. 강사는 생각보다 젊은 사람이었다.
수업에서 400쪽이 넘는 책을 읽으라고 할 줄은 몰랐다. 시몬 비젠탈의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라는 책이었다. 수업에 가서 책이 두껍다고 투덜거렸는데, 마침 내 옆에 앉으신 분이 벌써 책을 다 읽었다고 여유롭게 말했다.(아마 독서학원 운영하시는 분)
그 말에 긁혀서 나는 집 앞에 있는 스터디카페 50시간을 끊었다. 아마 집에 있었다면 드라마를 본다고 책을 못 읽었을 것 같다. 나는 이미 그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으니까.
책은 유대인 시몬 비젠탈이 수용소에 있을 때 직접 겪은 일이었다. 그가 노동을 하고 있을 때, 간호사가 그를 어떤 독일병사에게 데려간다. 독일 병사는 온몸에 붕대를 감고 죽음이 임박해 있다. 독일인이 유대인에게 하는 말. 누구든지 유대인을 만나면 자기 행동에 대해 용서를 빌고 싶었다고. 당신이라면 그 독일인을 용서할 수 있는지에 관한 책이었다.
이때까지 살면서 나는 용서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내 인생과 상관없는 단어였다. 나는 용서하고 싶은 사람이 없고, 용서받고 싶은 사람이 없었다.
어딘가에서 용서라는 말이 나오면 나는 그 인문학 수업이 생각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그 수업 덕분에 나는 다시 책을 읽고 글을 조금씩 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