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하고 내가 구한 일은 논술학원이었다. 작은 학원이었는데 초등학생, 중학생 논술수업을 했다. 그러다가 나는 갑자기 치아교정을 하게 되었다. 아이들한테 놀림당해서 그랬던 것 같다. 치아교정은 내 인생에서 잘한 일인데, 그때의 나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해서 구석에 숨어서 타자 치는 종류의 일을 하고 싶어졌다.
중앙동 인쇄소 겸 출판사에 취직했다. 그 인쇄소는 대학교재를 주로 만들었는데 나의 업무는 책의 내지를 편집하는 것이었다. 나의 사수 언니한테 한글프로그램의 모든 기능을 배운 것 같다. 그 언니는 인쇄골목에서 한자 잘 읽는 걸로 유명했다. 지금은 필요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때만 해도 한자를 입력하려면 음독을 할 수 있어야 했는데 그 언니는 그게 가능했다. 한자 음독해 주고 알바비를 벌기도 했다. 타고난 재능인 것 같았다.
한 번은 용접공이라는 사람에게 전화가 온 적이 있었다. 경리언니가 전화를 받았다. 그 사람 하는 말이 자기가 용접공이라서 용접에 관한 책을 한 권 사서 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책에 한자가 많은 것입니까. 한자 때문에 책을 도저히 읽을 수가 없다는 말이었다.
사람이니까 오타를 안 칠 수는 없었다. 디자인팀에 실수 많이 하는 언니가 있어서 나는 좀 묻혔는데 나도 실수를 많이 했다. 오타가 나면 스티커 작업을 하거나 책 한 장만 다시 갈아 끼우기도 하고 최악의 경우 책을 다시 찍어야 했다. 그러면 남는 게 없다고 했다. 책이 완성되면 일단 가제본을 뽑는다. 책이 처음 나오면 사람의 손처럼 따뜻하다. 나는 그곳에서 책을 쓰는 사람 말고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배웠다.
중앙동 인쇄골목은 예술적인 곳이었다. 내가 그곳에 일할 때 40계단 근처에는 스누피 만화에 나오는 것처럼 노란색 담요를 가지고 다니는 노숙자 아주머니가 있었다. 그리고 내가 본 가장 재미있는 장면은 어떤 할아버지가 비 오는 날 우산을 쓰고 혼자 앉아 짜장면을 먹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