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와 라면

by Shin Huiseon


진주가 편의점 언니를 처음 만난 날은 빼빼로데이였어요. 진주는 편의점 입구에 진열된 여러 가지 빼빼로 중에서 가장 먹고 싶은 것을 골라서 카운터로 갔어요.


“천 원입니다.”


편의점 언니가 기계처럼 대답했어요. 편의점 언니는 얼굴이 예뻤고 편의점 문밖에는 누군가 쓰레기를 던지는 모습이 보였어요. 진주는 눈이 사시라서 두 가지를 동시에 볼 수 있었거든요.


진주는 큰 눈을 멀뚱멀뚱 뜨고 심각하게 고민했어요. 뒤돌아서서 한참을 더 생각하고 나서 진주는 카운터를 향해 빼빼로를 내밀었어요.


“비싸지만 사겠어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진주의 말에 편의점 언니가 웃음을 터뜨렸어요. 진주도 따라 웃었어요.


그때부터 진주는 학교 마치면 꼬박꼬박 편의점에 갔어요. 진주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라면을 먹기 위해서였어요. 편의점 언니는 진주에게 유통기한이 지난 삼각김밥 몇 개를 남겨놨다가 챙겨주었어요. 운이 좋을 때는 도시락을 먹을 수도 있었어요.


진주는 폰 게임을 하면서 후루룩 후루룩 천천히 라면을 먹을 때가 가장 행복했어요. 진주는 라면을 다 먹어도 바로 집에 가지 않았어요. 편의점 언니에게 장난도 치고, 손님들에게 “잘생기셨네요.” 혹은 “정말 예쁘시네요.” 같은 말을 걸어서 한바탕 웃기기도 했어요. 진주가 말을 하면 같이 웃는 사람도 있고, 진주를 피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편의점 언니는 진주의 말에 가장 크게 웃는 사람이었어요.


편의점 언니는 대학생이고 남자친구가 있었어요. 진주는 언니의 남자친구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어요.


“언니! 오늘 남자친구 만나요? 왜 이렇게 예쁘게 하고 왔어요?”


“나는 원래 예쁘거든!”


편의점 언니는 공주병이 심각했어요. 진주가 매일 예쁘다고 인사를 했기 때문에 병이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었어요.


“언니! 남자친구 만날 때 나도 따라가면 안 돼요? 딱 한 번만 제발 부탁이에요!”


“안 돼!”


편의점 언니는 진주에게는 단칼에 거절하고, 손님 앞에서는 친절한 얼굴로 인사했어요.


“언니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에요?”


진주는 오리처럼 입이 내밀고 우물우물 질문했어요.


“음.... 키가 크고, 잘생기고, 착하고 그렇지 뭐....”


편의점 언니가 밀대걸레를 들고 바닥을 닦을 때도 진주는 언니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어요. 진주의 진짜 목표는 언니의 남자친구를 만나서 맛있는 것을 얻어먹는 것이었거든요.


“정말 잠깐만이야. 인사만 하고 가야 돼!”


편의점 언니가 진주에게 다섯 번째 다짐을 받았어요. 진주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진주는 편의점 언니의 손을 잡고 지하상가를 걸어갔어요. 반짝거리는 옷을 입은 멋진 사람들이 앞뒤로 스쳐 지나갔어요.


편의점 언니의 남자친구는 중고서점 앞에 서 있다가 언니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어요.


“잘생기셨네요!”


진주가 언니의 남자친구를 향해 반갑게 인사했어요. 진주의 말에 언니와 남자친구가 큰소리로 웃었어요. 언니의 남자친구는 뚱뚱하고 얼굴이 사각형이었지만 진주도 예의상 그렇게 말한 것이었어요.


“실례지만 무슨 음식을 좋아하세요?”


진주가 언니의 남자친구에게 열세 살 치고는 어른스러운 말투로 질문했어요.


“저는 라면을 좋아합니다.”


언니의 남자친구도 진주의 말투를 흉내 내서 대답했어요.


“무슨 라면을 좋아하시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진주의 눈빛은 새삼 진지해졌어요.


“저는 신라면을 좋아합니다.”


그 순간 진주는 너무 놀라서 손바닥으로 입가를 가렸어요. 진주가 가장 좋아하는 라면도 신라면이었기 때문이에요.


“우리 하이파이브 한 번 해도 될까요?”


진주와 언니의 남자친구는 멋지게 하이파이브를 했어요. 그러자 편의점 언니가 진주에게 빨리 가라는 뜻의 눈빛을 보내왔어요.


“진주는 이제 집에 갈 시간이지?”


편의점 언니가 얄밉게 말했어요.


“네.... 언니.”


진주를 남겨놓고 편의점 언니와 남자친구가 손을 잡고 지하상가 계단을 걸어 올라갔어요. 진주도 잠시 망설이다가 계단을 따라 올라갔어요. 진주가 뒤를 따라가면 어쩔 수 없이 맛있는 것을 사줄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와 정말 성격이 활달하네. 처음 만나는 사람한테 하이파이브를 하자고 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인데. 그것도 같은 종류의 라면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남자친구에게 언니가 말했어요.


“진주는 지적장애 3급이고, 할머니랑 살아. 편의점 앞 교회에 다니는데 자주 놀러 오거든.”


편의점 언니와 남자친구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요. 진주는 발걸음을 돌렸어요.


비가 오는 날이면 편의점 언니가 예민해졌어요.


“아 짜증 나! 나보고 어쩌라고!”


손님이 들어올 때마다 바닥에 시커먼 발자국이 찍혀서 더러워졌기 때문이에요. 편의점 언니가 밀대걸레로 바닥을 아무리 닦아내도 소용이 없었어요. 진주는 언니의 기분을 좋게 바꿔주고 싶었어요.


“언니 나 잡아 봐요!”


진주가 밀대걸레로 바닥을 닦고 있던 편의점 언니의 배에 살짝 간지럼을 태우고 도망쳤어요.


“야아 아!!


편의점에서 간지럼 태우기는 자주 하던 장난 중의 하나였어요. 진주는 배가 나와서 그런지 간지럼을 안 타는데 편의점 언니는 특히 간지럼을 못 참았거든요. 진주는 언니가 크게 반응하는 것이 좋았어요. 그래서 진주는 언니에게 다시 한번 다가갔어요. 그때 언니가 버럭 소리를 질렀어요.


“야! 이 바보야!!!!!”


진주는 걸음을 멈췄어요. 눈앞이 캄캄해졌어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말이 이런 기분일까요. 편의점 언니가 진주의 팔을 붙잡았지만 진주가 언니의 팔을 뿌리쳤어요. 편의점 언니가 진주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어요.


“진주야 너 바보 아니잖아. 언니가 그냥 놀리려고 그런 거잖아....”


“언니 나 바보 맞는데?”


“네가 왜 바보야?”


“언니 나는 지적장애 3급이라고!!!!!”


“언니가 정말 미안해.... 내가 바보다. 내가 바보야.”


언니가 주먹을 쥐고 자기 머리를 쿵쿵 때리는 시늉을 했어요. 그래도 진주는 마음이 풀리지 않았어요.


“나 집에 갈래!”


진주는 편의점을 박차고 나왔어요. 편의점에 다른 손님이 우르르 들어가는 바람에 언니는 진주를 따라 나오지 못했어요. 편의점 문에서 나는 딸랑딸랑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어요. 밖에는 비가 계속 쏟아지고 있었어요.


“할머니.”


“오냐! 우리 새끼 왔냐.”


할머니는 마늘을 까면서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고 있었어요. 마늘냄새가 진주의 코를 찔렀어요.


“우리 새끼 어쩌다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됐냐? 밥은 먹었고?”


“아니요.”


진주가 눈을 말똥말똥 뜨고 대답했어요. 진주는 아무리 많이 먹어도 배가 고플 때가 많았어요. 할머니가 다진 마늘을 넣어서 라면을 끓여주었어요. 진주는 마늘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라면은 따뜻하고 맛있었어요.


“교회에서 무슨 행사한다면서?”


“할머니 나도 춤춰. 근데 아무도 보러 올 사람이 없어. 교회 말고는 친구가 한 명도 없으니까.”


“그럼 그 편의점 언니가 뭐신가 오라고 하면 되잖아.”


진주는 대답은 못하고 후루룩 후루룩 라면만 먹었어요. 할머니는 드라마를 보면서 까던 마늘을 계속 깠어요.


진주는 일주일 동안이나 편의점에 발길을 뚝 끊었어요. 편의점 언니를 보고 싶지 않았어요. 진주가 편의점에 가지 않는 것은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었지만요.


진주는 편의점 언니의 문자에 답장을 하지 않았어요. 그러자 전화벨이 울렸어요.


“진주야, 뭐 해? 왜 편의점 안 와? 빨리 와서 언니 일 좀 도와줘. 우유도 좀 나르고.... 무겁단 말이야.”


“이 언니는 나를 뭐로 보고? 월급도 안 주면서 부려먹으려고 하네. 정말 너무 하는 거 아니에요?”


“언니가 라면 사줄게.”


편의점 언니가 진주를 살살 꼬드겼어요.


“언니 나 부탁이 하나 있어요. 교회에서 교회에 안 다니는 친구를 데리고 오는 행사를 하는데, 언니 나 교회에 안 다니는 친구가 아무도 없어. 언니가 교회에 와줄래요?”


“언니가 요즘.......”


“언니 일요일 일곱 시까지 오면 돼요. 언니, 나 무대에서 춤도 춰.”


“아니야. 갈게. 가야지.”


편의점 언니의 대답은 믿음직스럽지는 않았어요. 진주는 언니가 교회에 꼭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진주가 속해있는 교회 초등부 친구들은 크레용팝의 <빠빠빠>를 개사해서 발표준비를 했어요. 교회 친구들은 착했어요. 학교 친구들처럼 진주를 괴롭히지도 않고 따돌리지도 않았어요. 단지 친하게 지내지 않을 뿐이었어요.


신나는 음악에 맞춰 뜀박질을 하다 보니 음악이 끝났어요. 무대에 선다는 건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이었어요. 무대가 끝나고 진주는 주변을 둘러보았어요. 편의점 언니도, 할머니도 보이지 않았어요. 다른 친구들의 친구들은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어요.


진주는 자리에 앉아서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어요. 진주가 춤춘 것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진주는 한 번도 틀리지 않고 잘했는데 말이에요. 진주는 교회에서 나눠주는 햄버거를 먹지 않고 가방에 넣어 놓았어요.


목사님의 설교가 시작되었어요. 진주의 한쪽 눈은 벽에 걸린 시계를, 다른 쪽 눈은 줄곧 출입문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목사님은 핏대를 세우며 설교 중이었어요. 아무리 기다려도 편의점 언니는 오지 않았어요. 진주는 자꾸만 눈이 감겼어요.


진주는 예쁜 옷을 입고 편의점 언니와 언니의 남자친구 손을 양쪽에 잡고 어딘가로 가는 중이었어요. 진주는 엄마와 아빠 손을 양쪽에 잡은 어린아이가 된 것 같았어요. 지하상가에는 반짝거리는 옷을 입은 멋진 사람들이 앞뒤로 스쳐 지나갔어요.


“우리 지금 뭐 먹으러 가나요?”


“당연히 신라면이죠!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잖아요!”


언니의 남자친구가 대답했어요.


꿈속에서 진주는 예뻤고 눈도 사시가 아니었어요. 진주는 편의점 언니와 언니의 남자친구와 나란히 편의점에 앉아 후루룩 후루룩 라면을 먹었어요.


진주가 눈을 떴을 때 예배실의 문이 열렸어요. 정장차림을 한 편의점 언니와 눈이 마주쳤어요. 언니가 몸을 숙여서 진주의 옆자리를 찾아왔어요. 진주가 편의점 언니에게 햄버거를 내밀었어요.


“진주야, 늦어서 미안해.”


진주는 라면을 안 먹었는데도 배부른 느낌이었어요. <끝>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