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회전초밥 먹어봤어?”
연예인들이 작은 접시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식당에서 초밥을 먹고 있었다. 먹고 싶은 초밥 접시를 꺼내서 먹고 빈 접시는 옆에 쌓아 두었다. 접시를 깨뜨리면 안 되니까 조심해야 할 것 같았다. 나도 텔레비전 속에 들어가서 회전초밥을 딱 한 접시라도 먹어보고 싶었다.
“마트에서 사다 먹어봤잖아.”
아빠가 종아리를 긁으면서 대답했다.
“아니 그거 말고, 진짜 회전초밥 말이야!”
“그거나 그거나 다 똑같지. 마트에서 만 원치 사 와도 먹을 것도 없더구먼.”
아빠가 텔레비전과 셋톱박스를 껐다. 엄마가 식탁에 앉아 탁탁탁 계산기를 두드리는 소리만 들렸다. 내 친구 진아 엄마는 하루 종일 드라마만 본다는데 우리 엄마는 맨날 가계부만 봤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우리 집은 이상한 점이 많았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일 때 학교 마치고 집으로 오다가 옆집 언니를 만난 적이 있었다. 지금은 중학생이 된 그 언니가 나한테 했던 말이 아직도 생각난다.
“그거 내 가방인데....”
엄마가 사 온 줄 알았던 책가방이 옆집 언니가 쓰던 가방이었던 것이다. 그 순간 내가 얼마나 창피했는지 엄마는 모를 거다.
우리 집에 있는 동화책 전집은 거의 다 아파트 분리수거장에서 엄마가 주워온 거다. 그래서 <삼총사>는 세 권이나 있는데 <빨간 머리 앤>은 한 권도 없다. 친구들은 주말에 엄마 아빠랑 카페에 가서 와플도 먹고 그런다는데 나는 아직까지 한 번도 카페에 가본 적이 없다. 아빠는 북한사람들은 아직도 굶어 죽기도 하는데 카페에 가서 비싼 커피 마시는 사람들이 미친 거라고 한다.
나는 눈을 말똥말똥 떴다.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써도 잠이 오지 않았다. 우리 집은 왜 이렇게 가난할까. 나는 왜 이렇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걸까.
나는 어른이 되면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돈을 많이 벌려면 연예인이나 사장님이 되어야 하는데 춤과 노래를 배우려면 돈이 필요하고, 회사를 차리려고 해도 돈이 많이 필요할 것 같았다.
시골 할머니 집 외양간 옆에 돼지우리가 있었다. 원래 할머니 집에서 돼지를 키웠나.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작은 나뭇가지 위에 돼지 한 마리가 사뿐히 앉아있었다. 돼지저금통처럼 생긴 분홍색 돼지였다. 이상한 건 양쪽에 흰색 날개가 달렸다는 점이다. 돼지가 나를 보고 환하게 웃더니 입을 쩌억 벌렸다. 돼지 입 안에는 황금색 알이 가득했다. 동글동글한 황금알이 반짝반짝거렸다. 돼지가 나보고 자기 입안에서 황금알을 꺼내가라고 하는 것 같았다. 내가 돼지 입속으로 손을 뻗었다....
“돼지가 무슨 알을 낳아? 새끼를 낳지. 넌 삼 학년이 그런 것도 모르니?”
엄마는 내 얘기를 제대로 듣지도 않고 잔소리를 퍼부었다. 엄마는 김밥을 싸고 있었다. 아빠는 회사에서 10년째 과장이었고 김밥은 10년째 아빠의 도시락이었다. 아빠는 10년 동안 김밥을 싸준 엄마가 대단한지 아니면 10년 동안 김밥을 먹고 있는 아빠가 대단한지 나한테 물어본 적이 있었다. 나는 속으로 다른 반찬을 해달라고 하면 안 되나 생각했다. 하지만 아빠는 엄마보다 힘이 약했다.
나는 아빠 도시락에 들어가고 남은 김밥을 우걱우걱 씹어 먹었다.
“여보, 우리 복권 사야 되는 거 아냐?”
아빠가 물을 마시고 식탁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애한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아빠, 왜?”
“송이가 돼지꿈을 꿨으니까.”
“아빠 돼지꿈을 꾸면 복권이 당첨되는 거야? 그러면 우리 집도 부자가 되는 거야?”
나는 내 꿈속에 나온 분홍색 돼지가 얼마나 귀여웠는지, 꿈속에서 내가 얼마나 좋은 기분이었는지 다 설명하고 싶었다.
“늦겠다. 빨리 학교 가야지!”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내 친구 진아였다. 나는 학교까지 걸어가면서 진아에게도 돼지꿈 이야기를 했다.
“우리 엄마가 꿈은 얘기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복이 달아난대.”
나는 깜짝 놀라 입을 손바닥으로 막았다. 실수를 한 것 같았다.
“빨리 말해주지....”
“근데 또또복권 당첨되면 상금 얼마 받아?”
“아마 10억도 넘게?”
“대박!”
갑자기 진아가 걸음을 멈췄다. 진아가 한참 주변을 살피더니 속삭이듯이 말했다.
“복권 당첨되면 뭐 할 거야?”
“회전초밥 먹으러 갈 거야. 엄마 아빠랑.”
나도 괜히 소곤소곤 대답했다.
우리 집은 당연히 외식을 거의 하지 않았다. 어쩌다가 손님이 오는 날 엄마가 유일하게 주문하는 음식은 아귀찜이었다. 나는 아귀찜이 음식물쓰레기 같아서 정말 싫었다.
나는 복권이 당첨되면 진아에게 5억 원을 주기로 약속했다. 나한테 진아는 그만큼 소중한 친구니까. 근데 진아도 내 꿈에 나온 돼지가 새끼를 안 낳고 알을 가지고 있는 게 거짓말 같고 이상하다고 했다. 또 돼지꿈보다 똥이 나오는 꿈이 좋은 꿈이라고 했다. 자기도 돼지가 똥 누는 꿈을 꾸고 싶다고. 나는 돼지가 똥 누는 꿈은 아니라도 새끼를 낳는 돼지꿈을 다시 꾸고 싶었다.
나는 하루 종일 돼지를 생각했다. 내가 돼지꿈을 꿨다고 하면 엄마 아빠가 정말 기뻐할 것 같았다. 나는 정말 돼지꿈을 꾸고 싶었다. 돼지코를 생각하자 아빠 콧구멍이 떠올랐다. 아빠 콧구멍은 동전이 들어갈 만큼 컸으니까. 분홍색 돼지가 입을 벌리자 황금알이 가득 들어있었는데 내가 손을 뻗자 돼지가 입을 다물어버렸다. 나는 삼겹살이 먹고 싶어서 입에 군침이 돌았다. 돼지고기는 맛있으니까 돼지는 착한 동물인 것 같았다.
다음날 나는 돼지꿈을 꾼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았지만 돼지 생각을 한 것과 돼지꿈을 꾼 것이 정확하게 구별되지 않았다. 나는 돼지꿈을 꾼 것 같았다. 그래서 엄마에게 말했다.
“돼지꿈을 꿨어. 나도 복권을 사고 싶어.”
“그래, 엄마가 복권을 사 올게.”
엄마는 내 말을 믿어주었다.
복권 추첨은 토요일이었다. 나는 왠지 마음이 불안했다. 아침에 양치질을 하려고 하다가 아빠 칫솔을 변기통에 빠뜨렸다. 아빠한테 혼날까 봐 칫솔을 물로 씻어서 다시 꽂아놓았다. 진아하고 같이 하루 종일 놀았는데도 내가 돼지꿈을 꿨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입이 간질간질했지만 복이 달아날까 봐 간신히 참았다. 진아한테 하루 종일 미안했다. 그리고 길에서 돌멩이에 걸려 넘어졌다. 피는 안 났지만 무릎이 아팠다.
문을 열자 고소한 삼겹살 냄새가 났다. 엄마가 삼겹살을 굽고 있었다.
“송이야, 손 씻고 밥 먹자.”
나는 화장실로 가서 손을 씻고 세수도 했다. 괜히 긴장되었다. 아빠는 텔레비전 채널을 여기저기 돌리고 있었다. 평소에도 우리 집은 말이 많지는 않았지만 밥 먹는 동안 말을 먼저 꺼내는 사람이 없었다. 할 수 없이 내가 엄마 아빠를 바라보며 “사 왔어?” 하고 묻자 엄마 아빠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우리 가족은 텔레비전에 앞에 둘러앉아 종이 한 장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 얇은 종이 한 장에 앞으로 우리 가족의 운명이 달려있었다.
복권 당첨이 된다면 아빠는 10년째 과장밖에 안 시켜주는 회사에 일하러 안 가도 되고, 엄마는 가계부 대신 재미있는 웹툰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회전초밥을 먹으러 갈 수 있다.
접시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식당처럼 회전판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숫자가 하나하나 발표될 때마다 내 심장은 점점 빨리 뛰었다. 종이에 적힌 서른 개의 숫자 중에서 맞는 것은 세 개 밖에 없었다. 그것도 각자 다른 줄에 있었다. 나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쥐구멍 대신 방으로 들어갔다.
“송이야, 밥 먹고 교회 가야지.”
엄마가 나를 깨웠다. 나는 일어나기가 싫어서 그대로 누워있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송이야! 안 일어나?”
엄마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나는 간신히 일어나 화장실 문을 빼꼼 열었다. 아빠가 양치질을 하고 있었다. 내가 변기통에 빠뜨렸던 칫솔로.
“송이 잘 잤어?”
나는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눈을 비볐다. 밥을 먼저 먹으려고 식탁으로 걸어갔다. 식탁에는 엄마가 교회에 낼 성금 봉투가 놓여있었다. 엄마는 안방에 있었다. 나는 성금 봉투를 살며시 열어보고 깜짝 놀랐다.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회전초밥은 얼마든지 사 먹고도 남을 만큼 많은 돈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