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 없는 세상

by Shin Huiseon


소년은 다리를 흔들며 우걱우걱 빵을 먹고 있었다. 지금 소년의 바람은 딱 한 가지밖에 없었다. 빨리 시간이 지나가서 시험이 끝나는 것. 그래야 도서관에 안 와도 되고, 마음 편하게 놀 수 있으니까. 엄마는 “공부도 안 하면서?” 하고 말하겠지만 소년도 시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지만 빵은 여전히 맛있었다.

소년의 맞은편 의자에는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아주머니가 앉아있었다. 아주머니의 다리 밑에는 커다란 캐리어가방이 놓여있었다. 아주머니와 소년은 여러 번 눈이 마주쳤다. 아주머니가 소년이 먹고 있는 빵을 유심히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주머니, 이거 드실래요?”

소년이 먹다 남은 빵을 반으로 쪼개서 아주머니에게 내밀었다. 아주머니는 대답도 없이 소년에게 다가와 빵을 덥석 낚아챘다. 아주머니는 빵을 씹지도 않고 단숨에 삼켰다. 그리고 소년을 바라보았다. 소년은 손에 들고 있던 빵조각도 아주머니에게 건네주었다. 아주머니는 재빨리 빵을 입에 넣었다. 빨리 먹기 대회에 나가면 일등을 할 것 같은 속도였다.

소년은 두 손을 탈탈 털고 코코아를 한 모금 마셨다. 아주머니는 소년이 손에 쥔 종이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주머니, 이건 안 돼요!”

이번에는 소년이 단호하게 말했다.

“저기 자판기가 있잖아요.”

소년이 오른쪽에 있는 커피자판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커피자판기 옆에는 음료수자판기도 나란히 있었다.

“얘야, 내가 이걸 줄게. 커피 한 잔만 뽑아줄래?”

아주머니가 쉬고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아주머니가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백 원짜리 동전 세 개였다. 소년은 아주머니 목소리가 무섭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년은 처음 본 그것이 신기했다. 동그랗고 반짝거리는 것.

“아주머니, 이게 뭐예요?”

“이것도 뭔지 몰라? 동전이잖아.”

“만져 봐도 돼요?”

아주머니가 소년에게 동전을 내밀었다. 소년은 조심스레 그것을 만져보았다. 작지만 가볍지 않고 여전히 반짝거렸다. 소년은 동전 세 개를 두 주먹 안에 넣고 흔들어보았다. 짤랑짤랑짤랑 소리가 났다.

“아주머니, 이건 어떨 때 쓰는 물건이에요?”

“뭐에 쓰긴 뭐에 써? 모든 일에 다 쓰지. 콜록콜록콜록. 커피 한 잔 마실 수 있을까?”

소년은 얼른 커피자판기에 카드를 인식하고 밀크커피를 한 잔 뽑았다.

“아주머니, 그럼 이거 이제 제 거예요?”

소년은 동전을 주머니 안에 집어넣었다. 뭔지 모르겠지만 마음에 드는 물건이었다. 아주머니는 종이컵을 양손에 모아 쥐고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아, 달달해.” 아주머니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주머니, 여행 가는 중이에요?”

소년은 궁금한 것이 많았다.

“내 얘기가 궁금하니?”

아주머니가 아까보다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소년은 아주머니가 무섭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주 부잣집 외동딸로 태어났단다. 부모님은 나를 무척 사랑하셨지. 나는 예쁘고 공부도 잘했어. 지금도 예쁘지 않니?”

소년은 아주머니의 예쁜 얼굴을 상상하기 힘들었다. 아주머니의 얼굴은 찐빵같이 동그랗기만 했다. 소년이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아주머니는 계속해서 말을 했다.

“나는 아주 멋진 집에 살았단다. 빨간색 벽돌집이었는데 정원이 아주 넓었단다. 이웃사람들은 우리 집을 아주 부러워했지.”

“그게 무슨 부잣집이에요? 스카이팰리스 정도는 돼야 부잣집이죠.”

“계속 들어봐. 나는 피아노 치는 걸 좋아했지. 대회에 나가서 상도 많이 받았단다. 내가 가장 잘 치는 곡은 <엘리제를 위하여>야.”

그건 소년도 칠 수 있는 곡이었다. 소년은 잠자코 들어보기로 했다.

“나는 아주 멋진 남자하고 사랑에 빠졌단다. 사랑이 뭔지 아니?”

“음. 글쎄요.”

소년이 대답했다.

“너는 아직 어리구나.”

“저는 다 컸는데요.”

아주머니는 소년의 반응과 상관없이 하고 싶은 말을 계속했다.

“그 남자와 결혼했지. 나이가 많은 남자였단다. 하지만 그 남자는 가난한 집의 아들이었어.”

“그런데 왜 결혼했어요?”

소년이 질문했다.

“사랑했으니까....”

“엄마가 결혼은 비슷비슷한 형편끼리 해야 하는 거라고 그랬는데요. 그래서 이모는 결혼을 두 번 했는데요.”

소년이 아는 척을 했다.

“그 남자가 아니면 나는 죽을 것 같았어.”

“사랑이 그런 거예요?”

“아니, 사랑은 변하는 거란다. 나는 부모님 몰래 집을 나와서 그 남자와 단칸방에서 살았단다. 남들 다 하는 결혼식도 못했지. 나는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갖고 싶은 것도 못 사고, 피아노도 못 쳤단다. 다른 건 다 참아도 나는 피아노만큼은 정말 치고 싶었어.”

“그래서요?”

“나는 매일 방바닥에다 건반을 그려서 피아노를 쳤단다.”

“소리가 안 나잖아요.”

“너도 피아노를 좋아하는구나.”

“네.”

“나는 그 남자에게 피아노를 사달라고 졸랐어.”

“사줬어요?”

“아니, 피아노는 우리가 같이 사는 방 크기만 했는걸. 만약 피아노를 샀다면 우리는 잘 곳이 없어서 밖에서 자야 했을 거야.”

“그래서요?”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단다. 따뜻한 집, 넓은 정원, 부모님 얼굴, 피아노가 자꾸 떠올랐지.”

“다시 돌아갔어요?”

아주머니가 갑자기 콜록콜록 기침을 했다.

“허기가 지는구나.”

소년은 아주머니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안절부절못했다.

“김밥이 먹고 싶구나.”

“제가 가서 사 올게요.”

소년은 매점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주머니에서 짤랑짤랑 동전소리가 들렸다. 심장이 쿵쾅쿵쾅 거렸다.

소년은 김밥을 사서 뛰어오는 동안 아주머니가 어딘가로 가버렸을 것 같아서 걱정되었다. 아주머니와 같이 김밥을 사러 올 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있었다.

“아주머니, 이거 드세요.”

소년이 김밥을 내밀었다. 아주머니는 아까처럼 허겁지겁 김밥을 먹어치웠다. 입에 김밥이 있는데도 또 입에 김밥을 밀어 넣는 식이었다.

“김밥 빨리 먹기 대회에 나가면 일등 할 것 같아요.”

“목이 마르는구나.”

소년은 잠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왜 모르는 아주머니가 시키는 대로 하고 있지?’ 하지만 소년은 조금 전과 똑같은 방법으로 밀크커피를 뽑아 아주머니에게 건넸다.

아주머니는 커피를 천천히 마셨다. 소년도 코코아를 마시고 싶었지만 이제 카드에 남은 돈이 없었다.

“우리 집은 그 사이에 아주 망해버렸단다. 부모님은 나를 찾는다고 신문에 광고도 냈지. 일도 그만두고 나를 찾아다니다가 병을 얻고 만 거야. 내가 미쳤었지.”

소년은 역시 엄마의 말이 맞았다고 생각했다. 소년의 엄마는 아는 것이 많은 대학교수였기 때문이다.

“후회했겠네요.”

소년은 침착하게 말했다. 소년도 후회하는 일이 있었다. 소년이 드론에 한눈이 팔린 사이 강아지가 제멋대로 뛰어가다가 트럭에 치여 죽은 일이 그것이었다.

“하지만 후회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는 거란다. 그땐 이미 늦은 거야.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그 뜻이야.”

소년은 죽은 강아지를 생각하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소년이 눈물을 가득 머금은 눈동자로 아주머니를 바라보았다.

“나는 죄책감 때문에 여기저기 여행을 다닌단다. 너 같이 똑똑한 소년은 내 말을 잘 이해하겠지?”

“아주머니 남편은요?”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도 모른단다.”

소년은 아주머니의 이상한 이야기를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아주머니 가방에는 뭐가 들어있어요?”

소년은 아주머니의 가방에 동전처럼 반짝거리는 것들이 잔뜩 들어있을 것 같았다. 소년은 아주머니가 가방을 열고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보여주기를 기대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화장실에 갔다 올게. 이 가방을 좀 맡아줄래?”

“네 얼마든지요.”

소년은 두 손을 모으고 의젓하게 대답했다.

소년은 가방을 열어보고 싶은 마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소년이 가방을 열었다가 닫는 데는 일 분이면 충분할 것 같았다. 소년은 낑낑거리며 가방 문을 여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가방 안에는 헌 옷, 비닐봉지, 빈 깡통 같은 쓰레기만 가득했다. 소년은 깜짝 놀라 가방 문을 닫으려고 했다. 그때 소년은 아주머니와 눈이 딱 마주쳤다.

아주머니는 아무 말 없이 캐리어가방을 낚아채서 달아났다. 아주머니가 급히 가방을 닫느라 흘린 더러운 양말 한 짝이 바닥에 떨어졌다. 소년은 양말을 들고 아주머니를 뒤쫓았다. 하지만 아주머니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소년은 다리를 흔들며 우걱우걱 빵을 먹고 있었다. 지금 소년의 바람은 딱 한 가지밖에 없었다. 빨리 시간이 지나가서 어른이 되는 것. 그래야 도서관에 안 와도 되고, 마음 편하게 놀 수 있으니까. 엄마는 “공부도 안 하면서?” 하고 말하겠지만 소년도 시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지만 빵은 여전히 맛있었다.

그때 긴 머리를 뒤로 묶은 아저씨가 커다란 캐리어가방을 끌고 휴게실에 들어왔다. 아저씨는 시커먼 옷을 입고 잔뜩 인상을 쓰고 있었다. 아저씨는 소년의 맞은편에 앉았다. 아저씨는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커피자판기에 넣으려고 했다. 하지만 커피자판기 어디에도 동전 넣는 곳은 없었다. 아저씨는 불도 들어오지 않는 밀크커피 버튼을 자꾸자꾸 눌렀다. 하지만 커피는 나오지 않았다.

소년은 아저씨의 뒷모습을 계속 바라보았다. 소년의 주머니에 들어있는 동전 세 개는 아무 쓸모가 없었다. <끝>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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