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의 밥그릇

by Shin Huiseon


금지는 늘 배가 고팠다. 금지는 커다란 솜사탕을 상상했다. 분홍색 솜사탕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솜사탕은 배가 안 부르잖아’ 금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다시, 커다란 빵을 상상했다. 노란색 빵 안에 딸기잼이 들어있었다. 금지가 손가락으로 딸기잼을 찍어 입에 넣으려는 순간 누군가 금지의 가방을 툭 쳤다. 금지는 놀라서 쓰러질 뻔했다.
“으악!”
뒤돌아보니 같은 반 달래였다.
“금지야, 왜 이렇게 놀라?”
“아니, 아니야. 괜찮아.”
“금지야, 우리 집에 아무도 없어서 그러는데 우리 집에 가서 같이 놀자!”
달래가 금지를 집에 초대하는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금지는 집에 가서 숙제를 해놓고 놀아야 했다. 금지는 대답이 빨리 나오지 않았다.
“우리 집에 레고도 있어.”
금지는 레고를 좋아하지 않았다. 금지는 가만히 앉거나 누워서 상상만 해도 뭐든지 다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었으니까.
“우리 집에 치킨도 있는데?”
금지는 침을 꼴깍 삼켰다. 치킨이 먹고 싶었다. 텔레비전 광고에서 치킨을 지글지글 튀기는 걸 본 적이 있었다. 금지는 10년 동안 살면서 치킨을 먹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금지 엄마는 인스턴트 음식은 절대 사주지 않았다. 건강이 나빠지고 비만이 되기 쉽기 때문이라고 했다.
금지는 망설였다. 하지만 배가 너무 고팠다. 그게 무엇이라도 먹고 싶었다. 길바닥에 떨어진 나뭇잎이라도 주워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달래의 집은 쓰레기장 같았다. 벽지는 노란색이었고 이상한 냄새가 났다. 바닥엔 온갖 쓰레기들이 뒤섞여서 굴러다녔다. 자세히 보니 쓰레기가 아닌 것도 있었다. 벽에는 이상한 낙서가 가득했다. 금지가 가만히 서있는 동안 달래가 발로 툭툭 쳐서 방 가운데를 깨끗하게 만들었다. 달래의 양말이 더러워졌다.
“여기 앉아서 기다려.”
달래가 부엌으로 들어갔다.
‘이 집에서 주는 음식을 먹어도 될까?’ 금지는 잠깐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는 속담이 생각나서 가만히 앉아서 기다렸다.
“심심하면 텔레비전을 봐도 돼.”
달래가 큰소리쳤다. 달래의 집에는 텔레비전이 세 개나 있었다.
“달래야, 내가 뭐 도와줄까?”
“아니, 치킨을 전자레인지에 돌리기만 하면 돼. 따뜻해야 맛있으니까.”
달짝지근한 냄새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금지는 고소하고 바삭바삭한 치킨을 상상했다.
잠시 후 달래가 가지고 온 것은 그동안 금지가 상상했던 것과 달랐다. 양념치킨이었다. 금지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달래처럼 금지도 손으로 양념치킨을 집어 입에 넣었다. 금지는 빨간색 양념이 옷에 떨어지는 것도 몰랐다.
“아, 맛있다!”
금지는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생전 처음 먹어본 것 같았다. 따뜻하고 달콤하고 물컹물컹한 맛이었다. 금지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금지가 치킨 한 조각을 먹는 동안 달래가 나머지 치킨을 다 먹어버렸다. 치킨 뼈를 발라먹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기 때문이다. 달래는 양손을 사용해서 쉽게 살을 발라먹었지만 금지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달래야! 엄마 왔다!”
쾅쾅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달래가 쫓아가서 문을 열었다. 금지는 입과 코에 빨간색 양념을 묻히고 달래의 엄마에게 인사를 했다.
“어머나! 달래 친구 왔구나. 아주 예쁘게 생겼네.”
금지는 자기 얼굴이 예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금지는 텔레비전에서 예쁜 여자얼굴을 많이 봐서 그런 걸 잘 알았다. 금지는 눈도 작고, 코도 작고, 입도 작았다. 하지만 어른들 눈에 아이들은 웬만하면 예쁘게 보이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금지에게 예쁘다고 말하는 것을 금지보다 좋아하는 사람은 금지 엄마였다. 금지 엄마는 마치 자기가 예쁘다는 칭찬을 들은 것처럼 아주 좋아했다.
금지 엄마는 항상 이렇게 말했다. “여자는 예뻐야 해! 살찌면 안 돼! 밥을 많이 먹으면 안 돼!”
사람들은 금지 엄마에게 모델같이 날씬하다고 말했다. “엄마의 젊었을 때 꿈은 정말 모델이 되는 것이었단다. 그런데 네 아빠를 만나서 결혼을 했지!” 금지 엄마는 슬픈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금지가 크면 엄마 대신 꼭 모델이 되어야 해!”라고 말했다. 하지만 금지의 꿈은 따로 있었다.

달래 엄마는 아주 힘이 센 씨름선수 같았다. 달래 엄마가 한 손에 텔레비전을 들고 집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몸집도 금지 엄마의 두 배는 되는 것 같았다. ‘텔레비전은 이미 세 개나 있는데.’라고 금지는 생각했다.
달래가 조르르 밖으로 달려 나가서 달래 엄마가 끌고 온 리어카에서 라디오와 종이박스를 가져왔다. 달래 엄마는 이런저런 물건들을 고물상에 내다 파는 일을 한다고 했다.
“엄마가 밥 해줄게.”
달래 엄마가 부엌으로 들어갔다. 달래는 엄마가 가지고 온 텔레비전의 코드를 연결하고, 화면이 잘 나오는지 채널을 이곳저곳으로 돌려보았다. 화면이 지지직거리고 잘 나오지 않았다. 달래가 텔레비전을 발로 쿵 찼다. 텔레비전이 잘 나왔다. 금지는 텔레비전이 네 개나 있는 곳에 자신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했다. 달래는 텔레비전을 동시에 두 개 틀어서 비교해서 보여주었다. 똑같은 화면의 색깔이 다르게 보였다.

밥상 앞에 앉은 금지는 더 깜짝 놀랐다. 밥을 담은 그릇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평소 금지가 먹는 밥그릇의 세 배는 컸다. 반찬을 수북이 담은 그릇들이 네모난 밥상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잘 먹겠습니다.”
달래가 밥을 먹기 시작했다. 금지도 배가 고팠으므로 일단 밥을 먹었다.
“너는 밥을 많이 먹어야 되겠다. 그래야 쑥쑥 크지!”
달래 엄마가 금지를 보면서 걱정스럽게 말했다. 금지는 달래보다 키가 작지는 않은데 체구가 작은 편이었다.
“엄마! 금지는 급식도 안 먹고 집에서 싸 온 도시락만 먹어.”
달래가 엄마에게 신기하다는 듯이 말했다.
금지는 밥과 계란을, 밥과 멸치볶음을, 밥과 김치를 꼭꼭 씹어 먹었다. 고소한 맛, 짠맛, 매운맛이 번갈아가며 느껴졌다. 배가 가득 차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금지는 배가 부르다는 것이 어떤 건지 알 것 같았다.
그때 달래가 말했다.
“엄마, 밥 더 줘.”
달래 엄마가 무신경하게 대답했다.
“갖다 먹어.”
달래가 부엌으로 가서 밥통을 통째로 들고 왔다. 금지는 밥통이 이렇게 생겼다는 걸 처음 알았다. 달래가 익숙한 듯 주걱으로 밥을 퍼서 밥그릇에 담았다.
“너도 더 먹을래?”
금지의 밥은 아직 반 이상 남아 있었다. 금지는 대답 대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달래를 바라보았다. 금지는 충격을 받았다.
‘세상에 밥통을 통째로 가져와서 밥을 먹을 수 있다니!!!!’

금지 엄마의 취미는 빨래였다. 엄마는 세탁기를 돌리고, 빨래를 베란다에 널고, 빨래를 개는 것을 좋아했다. 빨래냄새가 좋다고 했다. 깨끗한 옷을 다시 세탁기에 돌리는 일도 많았다.
“황금지!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옷에는 뭘 그렇게 묻히고 다니는 거야?”
엄마는 베란다에서 빨래를 털다가 금지를 보자마자 잔소리부터 했다.
“미술시간에 묻었어요.”
금지는 엄마한테 혼날까 봐 거짓말을 했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 옷에서 치킨냄새는 나지 않았다. 금지는 한숨을 내쉬었다. 금지보다 더 작은 은지와 동지는 텔레비전 앞에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금지가 먹고 온 밥그릇의 절반도 안 되는 작은 크기의 그릇이었다. 동생들의 밥그릇은 간장종지만 했다. 금지의 밥그릇도 똑같았다. 금지는 동생들이 불쌍했다. 금지는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 것 같았다.

금지는 숙제를 하려고 책상 앞에 앉았다. 자꾸만 졸음이 쏟아졌다. 금지는 책상 앞에 앉아 꾸벅꾸벅 졸았다.
금지는 동생들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 은지와 동지가 “배고파, 언니” “배고파” 하면서 울었다. 금지도 미안해서 눈물이 났다. 금지가 동생들을 데리고 달래네 집으로 가자고 했다. 달래네 집에서 밥을 얻어먹고 싶었다. 그러면 동생들도 배가 부르고 포만감을 느낄 것 같았다. 달래네 집 앞에 가서 금지가 문을 똑똑 두드렸다. 달래네 집 앞에는 장미꽃 몇 송이가 피어 있었다. ‘아까는 장미꽃을 못 봤는데....’ 금지가 이상하게 생각하자 장미꽃이 사라졌다. 금지는 큰소리로 달래를 부르면서 문을 두들겼다. 달래는 텔레비전을 본다고 금지가 노크하는 소리를 못 듣는 것 같았다. 똑똑똑, 집안에서는 깔깔깔 웃음소리가 들렸다.
꿈이었다. 눈을 떴을 때 금지는 침대에 누워있었다. 금지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금지는 애타게 엄마를 불렀다.
“엄마, 엄마! 배가 아파....”

금지는 엄마와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병원으로 가는 동안 금지는 몸을 덜덜 떨었다. “도대체 얘가 뭘 잘못 먹은 거야?”
엄마가 금지를 안고 걱정스러운 듯이 말했다.
응급실에는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긴 의자에 빼곡하게 앉아있었다. 금지 엄마는 마음이 급했다.
금지 엄마가 원무과 앞에서 크게 소리를 질렀다. “애가 아파요! 애가 이렇게 아프다고요!” 금지는 엄마 목소리가 너무 커서 부끄러웠다. 금지는 엄마 뒤에 안 보이게 숨었다.
팔에 붕대를 감은 아저씨가 벌떡 일어나 자리를 양보해 주었다. 엄마는 금지를 그 자리에 앉혔다. 금지는 엄마 옷자락을 붙잡고 한참을 기다린 끝에 응급실 안으로 들어갔다.
의사가 금지의 배에 청진기를 갖다 대고 가만히 소리를 듣더니 말했다.
“장염이네요.”
엄마가 금지에게 화를 냈다.
“어디서 뭘 먹은 거야? 엄마가 절대 아무거나 먹으면 안 된다고 했지!!!!!”
의사가 금지에게 다시 질문했다.
“잠깐만요. 얘야, 혼내지 않을게. 뭘 먹었는지 다 말해보렴.”
금지는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금지는 침대에 누워서 링거를 맞고 있었다. 금지의 팔뚝에는 주삿바늘이 꽂혀있었다. 금지가 눈을 떴을 때 엄마는 침대에 얼굴을 묻고 잠들어 있었다. 금지에게 엄마는 달래 엄마보다 약해 보였다. 그때 엄마가 벌떡 일어났다.
“엄마가 아무거나 먹으면 안 된다고 몇 번을 말했어? 응? 배탈이 났잖아!!!!!!”
엄마가 눈을 무섭게 떴다.
“엄마 나는 앞으로 밥을 아주 큰 그릇에 주세요!”
금지가 두 손바닥으로 밥그릇 모양을 만들었다. 달래 집에 있는 밥그릇처럼 크게 만들었다가 밥통처럼 더 크게 만들었다.
“엄마 말도 안 듣고, 또 병원에 오려고 그래? 그렇게 많이 먹으면 배 아프잖아.”
“엄마 내 꿈은 모델이 되는 게 아니에요. 엄마 나는 나중에 아주 강한 사람이 될 거예요!”
금지의 갑작스러운 말에 엄마가 의아해했다.
금지는 조그마한 머리를 다시 베개에 베고 누워서 미소를 지었다. <끝>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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