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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주미 Oct 01. 2021

03 엄마 아빠는 내 나이 때 뭐 했을까?

[인터뷰] 언어를 관찰하는 사람, 최수근

03

엄마 아빠는 내 나이 때 뭐 했을까?

(이 대화를 끝까지 읽기 위해 5분의 시간을 내어주세요.)



오늘 얘기해 보고 싶다고 한 주제 중에 ‘가족’이라는 키워드도 있었죠? 평소 인스타에 올라오는 가족들과의 에피소드를 봐도 그렇고, 오빠네 가족은 평범한 가정에서 이런 대화가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아주 친근한 것 같아요.   
수근: 우리 집안 분위기가 좀 그렇지. 스킨십도 많이 하고. 근데 아빠는 세상 무뚝뚝해. 어렸을 때부터 조언이란 걸 들어본 적도 없고, 다정하다기 보다 나를 어려워하지. 우리 가족이 다들 서로 좀 어려워하는 것 같은 느낌이 있지 않아? 


표현은 부족할지 몰라도 오빠의 시선으로 쓴 그분들에 대한 글을 보면 사랑이 넘쳐 보여요. 

수근: 그건 내가 어머니를 사랑하기 때문일 거야. 난 어머니를 인터뷰해 보고 싶어. 더 정확하게는 어머니 얘기를 듣고 책을 내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 그래서 니가 인터뷰한다니까 호기심이 생겼지. 주미는 어떻게 하나 싶어서. 어느 시점부터인가 부모님의 죽음을 생각하게 됐는데, 그러다 보니 빨리 기록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내가 노조 활동한답시고 가족에 신경을 못 쓴 게 마음의 짐이거든. 


노조 활동하면서 부모님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이 줄었나요? 

수근: 삼분의 일 정도로 확 줄었지. 


바빠서요? 

수근: 바쁘다기보다 사람 만나기가 싫어. 혼자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그게 다 주말이니까 부모님은 잘 안 만나게 돼. 만나면 노조 얘기는 안 해야겠다 하지만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하면 더 생각나는 것처럼, 그래서 좀 피곤하더라고. 
 

저도 요즘엔 엄마 아빠를 만날 때마다 앞으로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아있나 늘 초조해하는 마음이 있어요.  
수근: 한 번은 엄마가 백신 맞기 전에 식탁 앞에서 손을 꼭 잡고 ‘수근아, 엄마는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어’라고 하는데 되게 약해져 있는 느낌이었어. 내가 보호자로서 ‘괜찮아 괜찮아’ 달래 드려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 노조 활동 끝나면 최대한 부모님과 시간 많이 보내야겠다 싶어. 애들 커가는 모습 놓치는 게 아깝다고 하는 것처럼, 지금이 중요한 시기라고 느껴져


물론 병간호하고 그러면 다른 생각이 들긴 할 텐데… 주변에서 부모님 아프시다는 얘기 많이 듣게 되지 않아? 
 
아직은 아닌데 40대가 되면 부모님을 부양해야 할 상황에 대해서도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는 많이 듣는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돌아가실 것만 걱정할 게 아니라, 건강한 상태로 지금과 같은 관계를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게 얼마나 될지도 생각해야겠구나. 

수근: 그러게… 음… 친할머니께서 할아버지 돌아가실 때 옆에서 약 쓰지 말라고, 빨리 못 죽는다고 그러셨거든. 어머니가 그런 걸 보고 많이 배웠다고 하셨어.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태도는 그걸 따라하시는 것 같기도 한데 막상 본인의 죽음에 대해서 그렇게 태연할 수 있을까. 비행기에서 난기류만 만나면 옆에서 잡은 손에 땀이 삐질삐질 나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는 부모님이랑 떨어져 살다 보니까 포항에서 서울로 돌아올 때 항상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해요. 물론 이런 초조함으로 30년을 더 잘 살 수도 있지만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요. 그래서 이번이 마지막이었다는 걸 내가 뒤늦게 알게 됐을 때 뭘 후회하게 될까 상상하면서, 조금이라도 신경 쓰이는 게 있다면 그 상태로 놔두지 않아요. 다투면 무조건 풀고 온다거나, 헤어질 때 포옹을 한다거나 일부러 더 챙기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여한이 없다는 말은 나중에 남겨질 상대방이 슬퍼하거나 후회할 일이 없도록 안심시켜주는 말이 아닐까 생각하게 돼요. 

수근: 맞아. 어머니가 외할머니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여름에 수박 사달라는 걸 안 사 드린 게 여한이라고 하시거든. 그래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건 ‘니가 미안할 필요 없다’라는 배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 


어머니를 떠올렸을 때 미안하거나 더 챙기고 싶은 게 있을까요? 챙기지 못해 나중에라도 후회가 되겠다 싶은 것?   
수근: 말하지 못하는 비밀이 생기고 있다는 점? 일단 지금 우울증 약을 먹고 있는 거 어머니는 모르셔. 내가 보호자라는 느낌이 들어서 말 안하고 있는 것들이나… 그 외에도 소소하고 단편적인 기억은 너무 많지. 교육학 석사 논문을 쓸 때 수원에서 부모님이랑 같이 살았는데, 한 학기 동안 쓰던 걸 마치고 제본 맡긴 걸 찾아서 집에 왔더니 엄마가 되게 서운해하셨어. 내가 ‘제본 맡기고 도장만 받으면 된다’라고 했는데 어머니는 그때까지 내가 논문이 끝났다는 걸 모르신 거야. ‘끝났다고 말 좀 해주지’라고, ‘난 니가 혼자 끙끙대며 논문 쓸 땐 밖에서 TV도 안 보고 있었다’라고 하시는데 난 몰랐거든. 나 혼자만 힘든 게 아닌데 엄마가 나를 얼마나 신경 썼는지 무시하고 있었구나 싶어 죄송했어. ‘끝난 걸 얘기해 줬으면 같이 즐거워하고 얼마나 좋았겠냐’고 하셨는데… 그 말씀을 듣고도 우울증 약 먹는 걸 어머니한테 비밀로 하고 있고, 그런 거지. 


오빠가 노조 일을 하는 동안에도 표현은 못 하지만 계속 눈치 보고 계신 건 아닐까요? 

수근: 처음에 노조 일 맡을 때 어머니한테 이렇게 프레젠테이션 해야겠다 준비했고, 어머니도 ‘니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하고 더 안심하신 것 같아. 대신 자세한 속 얘긴 못하지. 밤에 잘 못 자는 얘기라든지 술 먹는 얘기도. 내가 얘기했을 때 보일 리액션을 내가 감당 못할 것 같아. 친구한테 얘기하니까 어머니한테 말하라고 하더라고. 그건 부모 몫의 짐이니, 자기는 아이가 나중에 그걸 얘기해 줬으면 좋겠대. 그 말 듣고 나니까 내가 엄마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얘기 안 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내가 더 무너질 것 같아서. 어쩌면 어머니 아버지도 본인 아픈 걸 나한테 말 안 하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같이 들더라구. 가족이 뭔가 싶지. 
 
주제가 가족이라고 얘기했지만 오빠한텐 어머니의 비중이 참 큰 것 같네요.

수근: 응 그런 것 같아. 


부모님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다고 했는데, 엄마 아빠와의 인터뷰에서 단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면 뭐가 될까요?

수근: 어머니의 경우 ‘어머니는 내 나이 때 뭐 하셨어요? 어떤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면 내가 어릴 적 기억하는 엄마의 모습이 이제 내 친구들과 비슷해. 노조 활동하면서 선생님들 볼 때마다 그때 우리 엄마가 이 나이쯤 됐겠구나, 엄마도 애였구나 하는 생각 들거든. 


아, 이것도 질문해야겠다. ‘어머니 글 좀 남길 생각 없어요?’ 옛날에 글 쓰는 거 좋아하셔서 내가 어머니 쓰신 글도 타이핑해서 저장해 놓고 그랬는데. 실제로 작년인가 재작년쯤에 물어봤어. 글을 보면 내가 이런저런 생각도 좀 알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한동안 글을 안 쓰셔서 물어보니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정직하게 글을 쓰면, 그걸 너한테 보여줄 것 같아?’라고 하셨지.  
   
엄마가 따로 일기장처럼 쓰시는 건 있을까요? 
수근: 몰라. 옛날에 썼던 글도 있고 노트도 있는데 안 보여줄 거냐고 하니까 ‘나는 니 엄마가 전부가 아니야’라고 하셨어. 그때 ‘아 우리 엄마 멋있다’라는 생각을 했고, 그렇지만 궁금해. 아마 내가 노력해도 볼 수 없을 거야, 어쨌든 나는 어미니 아들이니까. 엄마 이상의 사람을 엿보고 싶은데... 


엄마로서의 이야기 말고 특정 주제를 잡고 인터뷰를 제안한다면 하실까요? 모자 관계 이상의 질문에 답을 하실까요? 
수근: 하더라도 아마 내가 이해를 못 할 거야. 그래서 어머니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고 할 때도 처음에는 어머니의 입체적인 모습을 남기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어떻게 해도 나는 결국 아들로서 밖에 안 되겠지라는 생각이야. 


그게 딸이었다면 달라졌을까요? 
수근: 글쎄, 여성으로서의 모습을 더 보여줄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또래 여자들 중에 어머니의 서사를 기록하고 싶다는 사람이 진짜 많거든요. 

수근: 이슬아씨도 그런 글을 썼지?   


맞아요. 창작 활동하는 여성들 중에는 탐구의 대상이 자연스럽게 엄마한테로 향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엄마가 글 썼으면 좋겠다는 사람도 많고, 그런데 자기 엄마는 스스로 글을 안 쓰실 거니까 본인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불완전하게라도 엄마의 이야기를 기록해야겠다는 사람, 아니면 엄마랑 이메일을 주고받음으로써 엄마가 글을 쓰게 만드는 사람도 있고요. 

수근: 그런 것도 좋네. 아 그리고 아버지한테 할 인터뷰 질문도 생각났다. ‘아버지는 어떤 아버지가 되고 싶었어요?’ 


질문자에게 약간의 속내가 있어 보이는데요? 

수근: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말에 담긴 뜻은 ‘당신의 의도는 실패하였습니다’. 어휴, 아버지 미안해요.ㅎㅎㅎ 아버지는 본인을 아버지로 범주화한 적이 없는 것 같아.  
 
범주화하지 못한다는 게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과 비슷한 뜻일까요? 영원히 아버지로서의 준비가 되지 못한 남자들도 많다고 생각해요.  
수근: 비슷한 말인 거 같아. 자신이 누군가의 아버지라는 걸 안 느끼고 사셨던 것 같아. 나 고3일 때도 고3인 줄도 몰랐고, 평생토록 어린애 같은 느낌이 있어. 누군가의 남편이라는 자의식도 없었을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아버지는 어떤 아버지가 되고 싶었어요?’라니, 그 인터뷰가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하네요. 최종적으로 정리되는 인터뷰 기사의 제목을 예상해 본다면? 
수근: 아버지에 대해선, 내가 예상하는 건 <어쩌다가 아버지> 하하하. 그건 사실 내 얘기이기도 해. 내가 인스타에서 ‘하다가 보면’ 이런 표현을 많이 쓴대, 한국어 선생님들은 그런 거에 민감하지ㅎㅎ 얘기한 것처럼 노조지부장도 그렇고, 다 애초에 계획 없이 살다가 우연히 이뤄지는 것들에 대한 거니까. 그리고 어머니의 인터뷰 제목은, 어머니하고도 왠지 그렇게 되겠다, <어쩌다 보니 어머니>. 
 

‘니 엄마로서의 내가 전부가 아니다’라는 얘기를 하셨다고 하니, ‘엄마가 안 되었다면 지금 뭐가 되어 있을까’라는 주제의 질문도 가능하겠어요. 
수근: 아, 어머니가 하고 싶었던 일은 알아. 다큐멘터리 촬영 감독을 하고 싶어 하셨어. 여행, 자연 다큐멘터리 그쪽 일을 하고 싶어 하셨어. 


상당히 구체적이네요.

수근: 어머니 생일 선물로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나온 지도책을 달라고 해서 드리니까 나중에 형광펜으로 다큐 볼 때마다 표시하더라구. 그래서 찐이구나 하고 느꼈어. 어머니가 우리 가족 중에 해외여행도 제일 많이 했고, 운전면허도 제일 많이 따셨어. 


몰랐던 이미지네요. 문학소녀로만 보였는데.  

수근: 아냐, 엄청 개구져. 손재주도 좋고, 목공도 배우셨고. 


부캐를 많이 가지고 계시군요. 

수근: 다음엔 내 딸로 태어났으면 좋겠다 생각해. 하고 싶은 거 마음대로 하게 해주고 큰 물에서 놀았으면 좋았을 텐데 싶어서. 기독교인이긴 하지만 어머니를 생각하면 내세가 있었으면 좋겠다, 환생했으면 좋겠다. 어우, 너무 닭살이겠다. 결혼도 안 할 건데 이렇게 말하면 어머니한테 욕먹겠다ㅎㅎㅎ 근데 내 딸로 태어나도 서로 모르는 건 마찬가지겠지.


그런데 어떻게... 인터뷰가 계획대로 되고 있는 거니? 너무 산만하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아. 


계획이 있다기보단 오빠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하는 거니까요. 

수근: 뭔가 재밌다. 십몇 년 전에 같이 인터뷰를 했던 사이인데, 그리고 타임슬립ㅎㅎ 그때 대학생이던 너는… 역사가 묘하게 반복되는 느낌인 거야. 인터뷰라는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경험이 이렇게 짜여진 느낌. 


그렇다고 사실 대학생 시절보다 훨씬 준비된 것도 아니랍니다. 예상 질문은 있었지만 프레임이 다 짜여진 상태에서 짜집기 하고 싶진 않고, 그래서 이 파일럿 프로그램에서는 일단 모든 이야기를 다 펼쳐 놓아 보는 거죠. 그 중에 뭘 건져서 어떻게 정리될지는 나도 모르겠어요. 

수근:  다음에 나도 한 번 너한테 인터뷰 신청을 해야겠다. 재밌겠다. :)

<끝>


대화 내내 오빠는 내 질문을 이해하려고 여러 번 곱씹고 되물었다. 또 여러 번 ‘예를 들어’ 주었고, ‘다시 말해’ 주었다. 인터뷰 녹음 파일을 다시 듣는 내내 그 다정함이 느껴져, 오히려 이런 사람이 인터뷰어가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내뱉는 언어에 대해서는 지독히 엄격하여, 때로는 한 마디도 아끼고 싶어 하는 사람 같기도 했다. 그래서 이 글을 정리하는 중에도 나는 최수근이라는 사람을 아주 일부분 밖에, 아니면 그것조차도 담는 데 실패하겠구나 염려했다. 외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은 어차피 잘못된 해석과 오해를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말이 오묘하게도 위로가 되었다.  


그러니 오빠가 언젠가 반대로 내게도 인터뷰 요청을 한다면 기꺼이 오해받을 마음으로 응할 것이다, 오빠가 그랬듯이. ‘이런 언어를 쓰는 걸 보니 이 사람은 이런 이런 경험을 했구만!’ 이라는 추리의 대상이 되어도 좋겠다. 나도 오빠가 자주 썼던 ‘예를 들어’, ‘다시 말해’, ‘하다못해’ ‘되어버렸다’라는 표현들로부터 오빠의 시간들을 추리해 보곤 했다. 


<우리가 나눈 이야기들 전체 보기>

01 엄격하게 때로는 유연하게, 언어를 탐구하는 마음으로 

02 언어는 흔해서 전문성을 인정받기 어렵구나 

03 엄마 아빠는 내 나이 때 뭐 했을까? (현재글)


인터뷰이: 최수근 (인스타그램 ID: @sukunch)

인터뷰: 오주미 (인스타그램 ID: @fayetree)

대화 시기: 2021년 8월

사진 제공: 최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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