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룡이를 생각하며...
양동근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유튜브 알고리즘에 이끌려 양동근의 눈물 썸네일을 보게 되었어요. 그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아이컨택트'라는 프로그램에 그가 나온 겁니다.
'가장 따뜻했던 어른, 그 형'을 찾으러.
그 형은 외로웠던 아역배우 시절, 자주 집에 초대하고 재워주고 놀아줬던 연출부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여러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양동근의 말을 빌리자면
어린 나이에 사회생활을 하며 외롭고 힘들어
누군가에게 기대고 의지하고 싶었는데, 그 어려움을 그 형이 채워줬다고 합니다.
구구절절한 설명보다 한 없이 무뚝뚝한 양동근의 저 표정 하나가 모든 것을 말해 줍니다.
간절히 바랬던 관심과 평안을 주고, 스스로 힘들게 했던 결핍을 채워 준 이에 대한 ‘고마움'이라는 오랜 감정이 터져 나온 순간입니다.
자문해 봅니다.
'어렸을 때 내게 이 형과 같은 사람은 누구였을까?’
두 명이 떠올랐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반 친구와 싸워서 (정확히 한 대 때리고 두 대 맞고 안경 날아가면서 끝난) 먹먹하고 분했던 순간... 떨어진 안경을 주워 씻는 곳까지 따라와 괜찮다 위로해 주던 친구 현람이.
중학교 2학년 때 팔공산 정상에 오르길 힘겨워할 때 손 잡고 끌어준, 항상 나를 지지해 준, 내게 좋은 곳을 소개해준다며 홀트복지관에 데리고 간 영준이.
대학교 1학년 동거 동락했던 형들, 누나도 생각나네요. 제가 세상에 부채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들.
군 제대 후 제게 도움을 준 선배님들도 많지만 비교적 어릴 때는 이 정도인 것 같습니다.
그럼, 나는 누군가에게 눈물 날 만큼 고마운 존재인 적이 있었나...
승룡이가 생각납니다. 심승룡. 21살 입대를 연기하며 방황하던 중, 무료 과외 봉사로 만났습니다.
8개월 동안 매주 동대구 시장을 지나 작은 식당과 연결된 집, 좁은 방으로 향했던 기억이 납니다.
중학생인 승룡이, 두세 살 아래인 남동생까지... 수학을 가르쳤지요.
(그 당시에도 어설프게나마 존재했던) 인공지능 텍스트 음성변환 기능으로 장난을 치던 일,
놀이공원에서 범퍼카와 청룡열차를 탔던 일,
무알콜 과일향 맥주를 몰래 함께 마시던 일,
입대 1주일 전 할머니가 고맙다며 식당에서 손수
차려 주신 정성스러운 음식,
헤어지기 아쉬워 꼭꼭 눌러쓴 손 편지.
그때 저는 그들의 친구이자 선생님이었습니다.
대가 없이 베푼 그 시절 기억은 힘들 때마다 저를
지탱해 줍니다.
'지금 이렇게 이기적이고 방어적인 내가...
그때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그 시절, 정확히 군대 가기 전 1년의 시간, 여러 경험들이 항상 저를 일깨우고 움직이게 합니다.
씨링 배달, 저소득 청소년 지원, 아이들과의 운동회, 기타 봉사활동...
그때가 기억날 때마다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묵혀둔 감정을 꺼내어 실컷 울고 싶을 때에는, 좀 더 기억 깊숙이 빠져 들어가곤 합니다.
그렇게 눈물이 나는 이유는,
'지금 내가 잘못 살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 후회할지 모른다.'는 영혼의 목소리, 죄의식일 수도 있고,
그때의 제가 정말 '자랑스럽고 고마워서.' 인지도 모릅니다.
그때의 선행 덕에, 지금 나름 평안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항상 믿습니다.
때가 묻어갈수록, 그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 신이 제 행복을 앗아갈까 두렵기도 하죠.
사람들은 말합니다. '죽은 후 장례식장에서 울어줄 사람이 많을수록 그 사람은 잘 산 거야.'라고.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인생의 힘든 날, 삶의 마지막 날에
제 삶에 만족해서, 감동해서
눈물 흘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것이 잘 살아낸 삶 아닐까요.
앞으로 의식적으로라도 이 기억들을 자주 끄집어내어 스스로를 칭찬하고, 저에 대한 실망과 죄책감이 다가올 때 스스로를 지키는 데 사용하려 합니다.
조금은 더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다짐하는데 쓰고자 합니다.
지금쯤 사회 초년생으로 열심히 살고 있을 승룡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제 생각 가끔 하는지 궁금해요.
" 승룡아... 보고 싶다. 그리고 고마워. 할머니, 동생과 행복하게 살고 있길 바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