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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기에 대하여

by 김필

독을 퍼뜨리는 자들이 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사회는 독을 퍼뜨리는 자들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나 역시 그 무리 중 하나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우리는 저마다의 열망을 품고 산다. 크고 작은 욕망들이 가슴 한편에서 꿈틀거리며 우리를 앞으로 이끈다. 하지만 내 마음속 불꽃이 타인의 가슴에도 똑같이 타오르리란 법은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나는—자신의 열망을 이루기 위해 타인의 마음속에 독기의 씨앗을 심어왔다. 은밀하게,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독기란 무엇일까. 그것은 조급함이기도 하고, 불안이기도 하며, 때로는 분노이기도 하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상대방을 재촉하고, 압박하고, 때로는 상처를 주는 모든 것들. 그렇게 뿌려진 독은 결국 나에게로 돌아와 내 얼굴에, 내 목소리에, 내 존재 전체에 스며든다.


"얼굴이 좋아 보인다."


3주간의 긴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뒤, 유독 자주 듣게 된 말이다. 거울 속 내 얼굴이 달라 보였을까. 아니다. 달라진 건 얼굴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것들이었다. 동료들과 나눈 대화가 한결 부드러워졌고, 웃음이 자연스럽게 터져 나왔다. 휴가 전까지 켜켜이 쌓였던 분노와 스트레스, 그리고 독기가 어느새 빠져나간 것이다. 마치 썰물처럼, 소리 없이 그리고 자연스럽게.


3주라는 시간이 참 묘한 것이다. 물리적으로는 단순히 일터를 떠나는 것일 뿐인데, 그 동안 우리는 자신을 되돌아볼 여유를 얻는다. 일상의 쳇바퀴에서 벗어나 비로소 내가 얼마나 많은 독을 품고 살아왔는지, 그리고 그 독이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을 얼마나 병들게 했는지 깨닫게 된다. 복귀 첫날, 동료들의 얼굴을 보며 문득 든 생각은 '내가 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독기를 뿜어댔을까' 하는 후회였다. 독기는 전염성이 강하다. 한 사람의 조급함은 팀 전체를 불안하게 만들고, 한 사람의 분노는 조직 전체의 분위기를 흐린다. 그리고 그렇게 퍼진 독은 다시 나에게로 돌아와 내 마음을 더욱 어둡게 만든다. 악순환의 고리가 완성되는 순간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옳은가. 솔직히 말하면 정답을 알 수는 없다. 삶이란 것이 그토록 단순명료했다면 우리가 이토록 헤매고 다닐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다만 이럴 때일수록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내게 있어 그 본질은 고객에게 더 나은 가치를 전달하는 것이다. 더 좋은 제품을, 더 나은 서비스를, 더 따뜻한 경험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내가 독기 대신 다시 채워야 할 마음이다.


독기를 빼내는 일은 쉽지 않다. 그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습관이자 사고방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썰물이 자연스럽게 바다로 돌아가듯, 독기 역시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 조금씩 빼낼 수 있다.


그 첫걸음은 아마도 자각일 것이다. 내가 지금 독을 품고 있는가, 내가 지금 누군가에게 독을 퍼뜨리고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묻는 것. 그리고 그 답이 '그렇다'일 때,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고르는 것.


독기 대신 무엇을 채울 것인가. 이것이 더 중요한 질문이다. 나는 고객에 대한 진정한 관심을, 동료에 대한 따뜻한 배려를, 그리고 일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다시 키워나가려 한다. 그것이 독이 빠진 자리를 채울 수 있는 유일한 해독제라고 믿기 때문이다.


얼굴이 좋아 보인다는 말을 다시 들을 수 있을까. 중요한 건 타인의 평가가 아니라 내 마음의 상태다. 독기가 아닌 진심이 담긴 얼굴로 사람들을 마주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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