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서, 길 위에서 길을 가르치는 예수 (9-2)
함께 읽고 걷는 더 드라마, 예수의 길 떠난 가족
2.
주님은 누구에게 ‘보여 주는 신앙’을 하지 말고, 누구 ‘모르게 하는 신앙’을 해라 하십니다. 사람들 앞에 서서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신앙’ 말고,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께 ‘보여 주는 신앙’도 말고, 사람들 ‘모르게 하는 신앙’ 그리고 하나님 ‘모르게 하는 신앙’, 그러나 하나님께만 ‘들키는 신앙’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입니다.
“주님, 주님께서 나를 샅샅이 살펴보셨으니, 나를 환히 알고 계십니다. 내가 앉아 있거나 서 있거나 주님께서는 다 아십니다. 멀리서도 내 생각을 다 알고 계십니다. 내가 길을 가거나 누워 있거나, 주님께서는 다 살피고 계시니, 내 모든 행실을 다 알고 계십니다. 내가 혀를 놀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주님께서는 내가 하려는 말을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나의 앞뒤를 두루 감싸 주시고, 내게 주님의 손을 얹어 주셨습니다. 이 깨달음이 내게는 너무 놀랍고 너무 높아서, 내가 감히 측량할 수조차 없습니다.” (시 139:1-6)
남에게 나를 보여주고 싶고, 남이 나를 보았으면 좋겠고, 나 역시 거울로 그런 나를 내가 보고 싶고. 신앙인이 신앙의 길을 걸으며 만나는 가장 큰 유혹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불법을 행하는 일’이고, ‘불의한 자’가 되는 길입니다.
자선을 베풀고, 기도를 열심히 하고, 금식을 하는 것, 그런 신앙의 실천이 불법이고 불의한 것이 아닙니다. 제아무리 선한 의도를 갖고 있고, 선한 목적이 있고, 또한 선한 행위라 할지라도 거기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거기에 신앙심 깊고 그 신앙의 실천에 열심인 ‘나’를 보이고 싶고, 그런 나를 보여 주고 싶고, 그런 나를 알아주었으면 좋겠고, 그래서 결국에는 나를 한가운데에 세운 신앙이라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불법이고, 불의라는 것입니다.
카메라는 거짓말을 못 합니다. 카메라를 속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카메라가 그렇습니다. 나 자신은 속일 수는 있어도 하나님은 절대 속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신앙인에게 두려운 말씀입니다.
사실 우리가 신앙 생활에 있어 배우가 되어 연기하는 것은 우리의 조급함 때문입니다. 뭔가 신앙 생활에 있어 열매가 보여야 하는데, 뭔가 결과가 있어야 하는데, 뭔가 보상이 있어야 하는데. . . 당장에 그것이 나의 눈에 보이지 않으니 조급해집니다. 조금씩 신앙이 흔들립니다. 내가 제대로 가는 걸까? 믿는 걸까? 이 길이 맞을까? 그래서 확인이 필요하고, 확신이 필요합니다. 증거가 있어야 하고, 증인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 신앙의 길을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찾다 보니 아쉬운 대로 남들이 내게 보내는 칭찬과 박수가 그런대로 좋아 보입니다. 내 신앙에 대한, 신앙의 실천에 대한, 신앙의 삶에 대한 확인을 받은 것 같고, 그래서 신앙의 확신도 듭니다. 점점 기도는 잦아지고 길어지고, 말도 많아지고 커지고, 자선을 베푸는 내가 사람들 눈에 뜨이는 것도 좋고, 금식을 비롯한 이러저러 신앙 생활의 실천과 훈련을 하고 있는 나를 사람들이 알아주니 좋고. 의도치 않게 사람들 앞에 선 배우가 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나를 다른 배우와 비교합니다. 나를 추켜세웁니다. 나는 겸손하게 우쭐해집니다. 점점 나 또한 다른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게 됩니다. 내가 더욱 주인공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젠 다른 조급함이 생기고, 비교가 버릇이 됩니다. 그러다 신앙이, 신앙 생활이 그만 경쟁이 됩니다. 신앙이 올림픽 게임이 되고, 신앙이 SNS의 ‘좋아요’ 버튼 누르기가 되어갑니다. 그리고 나의 연기력은 점점 늘어 갑니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연기해서 우리가 얻는 것은 과연 무얼까요? 그렇게 열심히 달려가 우리가 얻는 것은 과연 무얼까요?
“너희는 서로 영광을 주고받으면서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광은 구하지 않으니,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 (요 5:44)
“많은 사람들이 ‘좋아요’ 버튼을 눌렀으니, 그럼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 아니냐? 너희끼리 주고받는 ‘좋아요’면 되지 않느냐, 서로를 비교하며, 누구는 치켜세우고, 누구는 잘했다 박수 쳐 주고, 그렇게 너희 서로가 영광을 주고받으면 된 것이 아니냐, 그걸 너희는 바라던 것이 아니냐?”
우리에게 하시는 주님의 질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한다 우리가 말로는 그랬는데, 주님이 보시기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 너무 형편없는 배우입니다. 하나님께 우리가 하는 연기가 다 들켰습니다. 그러니 그만 연기해라, 배우는 그만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그럴싸한 리얼한 연기를 해도 하나님의 눈, 하나님의 카메라를 우리는 속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얼굴은 슬픈 표정이고, 눈물도 흘리고, 입으로 흐느끼지만, 하나님께서 카메라로 줌인 클로즈업을 해서 우리를 보시니, 우리의 연기가 영 아니라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슬퍼 우는데, 속으로 우리가 웃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나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지 않는다.” (요 5:41)
그러니 우리도 사람에게서, 서로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광’을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가 오면,
“사람들이 동과 서에서, 또 남과 북에서 와서, 하나님 나라 잔치 자리에 앉을 것이다. 보아라, 꼴찌가 첫째가 될 사람이 있고, 첫째가 꼴찌가 될 사람이 있다.” (눅 13:29-30)
그러니,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것이 없다고 조급하게 생각 말고,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서로 경쟁하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배우의 연기가 아니라, 그 모르게 하는 자선과 기도와 금식을 하라는 것입니다. 클로즈업해서 은밀하게 보시는 하나님께서 이미 다 알고 계시니, 우리의 그 ‘모르게 하는 신앙’은 이미 하나님께 ‘좋게’ 들켰으니, 하나님께서 혹시 모르실까, 그런 걱정은 아예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하나님 나라 잔치 자리에 우리가 지금 하나님과 함께 앉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 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