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사색 <온기>

by 샤인진

퇴근 길.

어라? 막히는 구간인데 오늘따라 시원하게 뚤린다. 신호도 나이스 타이밍이다.

엑셀을 밟는다. 평소보다 일찍 도착했다. 왠일이래? 기분이 아주 좋다.


현관문에 가스검침 노란종이가 붙어있다.

방금 다녀가신 것 같았다.

퇴근이 늦어 검사를 못받았었는데 오늘은 일찍 도착해서 가능할 것 같았다.

바로 전화를 걸었다. 금방 오셨다.


보일러 가스줄에 검은색 무선기 같은 기계를 대며 점검하신다.

처음 듣는 소리가 들린다.

'띠리리리리리릭'

"아고... 가스가 셉니다!" 보일러통에 붙은 하얀 종이를 가르키시며

"언능 여기 설치 회사에 전화하셔서 고치셔야해요. 오늘은 잠그고 갈게요. 보일러

쓰시면 안되요."

설치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지금 이러이러한 상황입니다."

"오늘은 모두 퇴근했고 내일 아침 일찍 가겠습니다." 의 답변을 받고 전화를 끊었다.


오늘 최고 추운 -13도. 집 온도 16도였다.

세는 가스를 쓰고 있었다는 사실에 아찔 놀라고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당황하고

오늘밤을 어찌 보내야할지 황당함에 우선 의자에 앉았다.


'모텔 갈까? 아니다. 탕에 들어가고 싶다.'

가까운 온천 목욕탕이 있다.

밤 9시. 모락모락 뜨끈한 탕에 들어갔다.

놀람과 당황으로 굳었던 몸이 한 순간 감동으로 퍼지며 너무나 행복했다.

차가웠던 발바닥, 손가락 마디마디 스몄던 찬물, 코 끝에 맴돌았던 찬 공기.

항상 따뜻한 온기와 지내왔음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절실하게 느꼈다.

온천물로 채워온 고마운 온기가 새어나갈까 이불를 얼굴까지 꽁꽁 싸매고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8시.

반가운 보일러 아저씨. 온기 선물 너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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