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는 길에 발을 건 사람에게
당신에게
당신은 나를 몰라. 아무리 아는 체 해도. 사람은 그래, 자기밖에 모르지. 그건 괜찮아. 그런데 모르면서 아는 척은 하지 말았으면 해.
당신은 자기의 경험이 얼마나 자기만의 것인지, 그게 세상에서 얼마나 작은 부분인지 모르면서 다 안다고 생각해. 아니다. 당신은 그게 세상에서 얼마나 작은 부분인지 알면서도 정작 자신은 그렇게 아는 체를 하며 산다고 자각하지 못해.
쓰다 보니 이게 더 문제인 것 같다.
당신은 몇 번씩이나 말했어. 당신이 속해 있는 사회가 이 세상을 이루는 수많은 군집 중에 아주 일부였던 경험을. 그럼 알아야 할 텐데. 하지만 당신은 여전히 몰라. 같은 경험을 몇 번씩이나 말하는 걸 보면 그게 기억 깊숙이 남을 정도로 인상은 깊었지만 그 이상의 반복적인 경험은 하지 못했었나 봐. 더 배웠어야 했을 텐데.
당신은 당신이 말하는 '아주 일부'라는 작은 기준으로 나를 판단하고 있다는 걸 자각하지 못해. 당신에게 전달되는 나의 삶의 서사 중에 얼마나 많은 서사가 생략되어 있는지 당신은 아나요?
당신은 나보다 낫지. 당신은 돈도 많고 명예도 있고 권력도 있고 말이 가지는 힘도 나보다 세고 아는 사람도 많아. 나보다 경험도 많지. 그런데 있잖아, 당신이 겪어온 경험의 질이 나의 것과 낫다고 확언할 수 있어? 당신의 축적된 경험으로부터 형성된 당신의 기준과 가치가 내가 내 경험으로부터 다져온 나의 기준과 가치보다 낫다고 확신할 수 있어?
사람에게는 남이라면 누구도 헤아릴 수 없는 고유의 서사가 있는데.
나는 끝내 내 선택을 할 수 있길 바라. 당신의 기준에서는 도무지 말이 안 될지라도, 어리석을지라도, 난 내가 믿는 기준이 맞다고 믿어. 그 기준을 지켜야 내 가치를 지킬 수 있다고 믿어.
당신은 아무것도 몰라. 사람마다 매우 다른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걸 몰라. 내 가치를 믿음으로써 지켜내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몰라. 적어도 난 당신이 나를 아무리 아는 체 해도 모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안다. 당신이 나보다 잘났어도 이 점 하나만큼은 내가 낫네요.
당신의 옳음은 절대적으로 옳지 않답니다. 당신이 늘 주지하는 사회란 게 그렇다는 걸 모르고 살지 말기를.
나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