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쿄. 스쿄. 스쿄. 스쿄요오오오오....”
여름입니다. 그리고 장마철입니다. 그날 아침도 비가 대차게 내리더군요. 사선으로 내리는 비를 탓하며 등교했습니다. 3교시였을 겁니다. 빗소리를 백색소음 삼아 자습하던 중 문득, 이따 집에는 또 어떻게 가냐, 푸념을 내쉬며 창밖을 바라보니 공교롭게도 비가 그쳐 있었습니다. 정확히는 잠시 소강상태에 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무언의 소리가 반쯤 열려있던 창문의 방충망을 뚫고 들어와 제 귓속에 안착했습니다.
“스쿄. 스쿄. 스쿄. 스쿄요오오오오....”
흔히 ‘맴맴’으로 표현되는 매미 울음소리였습니다. 오랜만에 듣는 듯 반가웠습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몇 주간 이어지고 있는 하늘의 대찬 울음소리에 한낱 미물인 매미의 울음소리는 낄 틈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피어오르는 안타까움과 함께 매미의 처지에 대한 사색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매미는 땅속에서 10년을 머문다고 합니다. 긴 인고의 시간을 떨쳐내고 세상 밖으로 나와 마지막 탈피인 우화를 거치면 그제야 훨훨 날갯짓을 할 수 있다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자유의 허락은 2주를 채 넘지 않아서 여름의 끝과 함께 마감합니다. 10년에 비해 2주라뇨, 하루살이의 생애를 연(年) 단위로 연장하면 그것이 곧 매미의 삶과 다를 바 없음을 느낍니다.
지상에서의 마지막 2주 동안 주어지는 임무는 번식입니다. 어쩌면 이 번식을 위해 지하에서의 그 느린 시간을 때워왔던 걸지도 모르겠네요. 매미들은 짝짓기를 위해 열성을 다해 울다 갑니다. 그런데 이번 여름을 짝짓기 시기로 맞이한, 일명 ‘2020 짝짓기 기수’ 매미들에겐 참으로 속이 타는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2주 동안 대차게 울어대도 부족할 판에 하필이면 그 2주 동안 비만 대차게 내리는 지경이니, 차마 암컷에게 울음소리를 과시할 기회도 좀처럼 주어지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기껏해야 비가 잠시 소강상태에 들 때만을 기다릴 뿐이죠.
그래서 그날 들었던 저들의 울음소리가 썩 씩씩하고 당당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나 봅니다. "매미야, 금세 다시 비가 오기 전에 더 크게 울어라" 시선은 초점 없이 책상 위 문제집을 향해있으나 귀는 저들의 울음소리에 집중하며 내심 응원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매미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던 교실은 얼마 못 가 다시 정숙으로 바뀌었습니다. 누군가 반쯤 열려있던 창문을, 소리의 유일한 창구를 덜컥 닫아버린 것입니다. 완전한 방음 성공과 동시에 저들의 울음소리도 교실에서 그쳐 버렸습니다. 하필 그날이란, 기말고사를 앞두고 마지막 땜질을 가하고 있던, 사소한 외부 소음이 전혀 사소하지 않게 다가오던, 그런 자습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 시간의 일원이었기에, 창문을 닫은 친구를 탓할 수는 없었습니다. 여타의 시간에 저 또한 은연중 그러지 않았으리란 보장도 없으니까요.
예기치 못한 역병의 창궐로, 이번 고3은 참 안됐다는 말을 주위에서 자주 듣습니다. 저는 여기에 ‘2020 짝짓기 기수’ 매미들을 생각합니다. 장마로 인해 암컷에게 환영받을 기회도 못 잡고 있을뿐더러, 내신의 마지막 탈피를 앞둔 ‘인간매미’인 저희 학생들에게도 저들의 울음소리는 교실에서 결코 울려 퍼지면 안 될 소음으로만 여겨질 뿐입니다. 참으로 딱한 이번 해 (인간)매미들 입니다.
어제 저는 그 마지막 탈피로 여겨지는 기말고사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제가 우스갯소리로 친구에게 건넨 말은, “야, 나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총 22번 고사(考査)를 치렀다. 징하다 징해. 난 다시 돌아갈 수 있다 해도 안 갈겨.” 매미는 땅속 10년간 무려 15번의 탈피를 거친답니다. 비유를 들어도 괜찮다면, 저도 지난 중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름 22번의 탈피를 거쳐온 것이겠지요. 아무쪼록 이번 장마를 겪고 있는 매미에게, 그리고 저에게 있어서도 각자가 거쳐온 지난 탈피의 나날들이 그간 희망해온 목표에 무사히 닿기를 염원합니다. 또한, 여러분 각자의 탈피를 응원하며, 이만 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