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선생님께 보내는 여섯 번째 편지
* 이 이야기는 100% 창작을 통해 만들어진 허구입니다.
지명, 인물명, 단체명이나 사건명들이 실존하거나 실제와 비슷한 경우가 있더라도 그것은 완전히 우연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
* 격주(26.04.12)로 연재될 예정입니다.
Q선생님 : 40대 후반의 여성. 화자인 ‘경숙’에게 글쓰기를 가르쳐준 선생님. 지금은 남편과 미국에서 살고 있다.
경숙 : 50대 초반의 여성. 편지를 쓰는 주인공. 그린아크 초원 아파트로 이사해 겪은 기묘한 일들을 Q선생님에게 쓰고 있다.
(똑순이) 소라 : 40대 후반의 여성. 경숙의 하우스메이트. 개를 좋아하며 경숙 때문에 간접적으로 놀라운 경험을 하고 있다.
초코·세라 : 경숙의 강아지. 경숙과 소라의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다. 둘의 자식 같은 존재.
이무백 : 40대 후반의 남성. 경숙의 전 연인. 사채로 돈을 많이 번 부모 밑에서 자랐다. 다정하고 유약한 남자.
경숙엄마 : 70대 중반의 여성. 경숙과 전형적이면서도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는 엄마. 서로 많이 다른 듯, 닮았다.
강현주 사무국장 : 40대 중반의 여성. 우리가족 협동조합의 사무국장. 경숙이 그린아크 공동체운영위원회와 갈등을 겪을 때 많은 도움을 준다.
방귀남 : 50대 초반의 남성. 초동 인근 커피숍에서 일하고 있으며, 사람이 없을 때 방귀를 뿡뿡 뀌어대는 모양이다.
‘멍냥수다방’의 시작은 순조로웠습니다. 가입한 사람들이 반려동물 동아리를 기다렸다고 하더라고요. ‘안 생기면 어쩌나, 나라도 만들어야 하나?’라면서 초조했대요. 아까비... 조금만 더 기다릴걸 그랬어요. 제가 제일 엉덩이가 가벼웠던 거죠. 우리 엄마가 자주 하던 말이에요.
“넌 엉덩이가 가벼워서 큰일이다. 진득하게 기다리면 될 것을 쪼르르~ 쪼르르~ 그러면 좋은 남자 못 만나.”
저는 지금도 저 말을 이해 못 하는데 아마 평생 못하지 않을까 싶어요. 어째서 가벼운 엉덩이(심지어 저는 물리적으로 가볍지 않은….)가 좋은 남자를 못 만나는 걸로 연결되는 것인지…. 그런 당신이야말로 ‘쇠뿔도 단김에 빼라’라는 자세로 평생을 서두르며 사셨는데 말이죠. 그러고 보니 본인의 경험칙일 수도 있겠군요. 이런! 우리 엄마 욕을 하고 있네요. 요기서 줄이겠습니다.
동아리 활동을 하며 느낀 건데 요즘 사람들은 참 바빠요. 스무 명쯤 되는 동아리 회원들이 모여 얼굴 보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출퇴근 시간, 요일도 다 다르고 쉬는 날에는 이미 루틴이 된 여가 생활이나 사교활동이 있어 다 모이는 게 쉽지 않았어요.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에 살고 있는데 말이죠. 하긴 입주 두 달 된 새 아파트에서 개고양이 키운다는 거 말곤 공통점 없는 사람들이 갑자기 친해지는 게 그렇게 간단할 리 없죠. 그래도 저는 ‘방장’이잖아요? 매번 모임 때 빠지지 않고 참석해 회원들 얼굴을 익혔습니다. 사실 이건…. 원래 게으른 제 성정에 반하는 일이지만 어쩌겠어요? 판을 벌인 건 ‘저’니까요.
그렇게 두 달 동안 회비도 모으고, 닉네임 규칙도 정하고, 주소록도 만들었어요. 신경 쓸 일이 꽤 많더라고요. 새삼 Q선생님 혼자 글쓰기 수업을 끌어가신 걸 떠올리며 손뼉 치게 됐어요. 그 많은 수강생 관리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많이) 늦었지만 감사합니다. 그때 Q선생님의 정성 덕에 이렇게 멀리 있으면서도 아직도 연락하는 사이로 남을 수 있었나 봅니다.
우리 멍냥수다방은 그럭저럭 잘 굴러갔습니다. 회원들이 제가 얘기한 ‘적절한 위로’에 동의해 줘서 좋았어요.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라 금방 수긍해준 거 같습니다. 그래서 근처 동물 장례 업체도 찾아서 공유하고, 우리끼리 진행할 장례 절차도 준비하고 그랬답니다. 일단 소풍 가는 집이 생기면 (반려동물이 죽었을 때 ‘소풍 간다, 소풍 떠났다’라고 해요) 꽃을 보내는 건 결정했어요. 이건 제가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그 어떤 미사여구의 위로의 말보다 이 슬픔을 아는 이가 주는 소박한 꽃다발이 받고 싶다고요.
저의 이런 활발한 사교생활에 소라는 내심 불편했어요. 자기는 늘 ‘로우프로파일’로 살고 싶다고 누누이 강조했으니까요. 이해는 가요. ‘왜 그 나이에 혼자에요?’로 시작되는 질문 공세와 미묘한 호기심의 눈빛이 불편한 건, 저도 마찬가지니까요. 그런데 소라가 초코 세라를 데리고 단지 내를 산책하면 우리 강아지를 알아본 멍냥수다방 회원들이 인사를 했어요. 이게 좀 웃긴 게 지금이야 3년이 꽉 차서 회원끼리 서로 다 누군지 알지만, 입주 초엔 몰랐어요. 오로지 데리고 나온 개를 보고 ‘챗방에서 사진으로 본 초코세라네!’하고 인사하는 거였어요. 그러니까 소라를 보고 “방장님!” 하면서 인사하는 일이 종종 있었어요. 소라 처지에선 거기다 대고 부러, “저 아니거든요!” 정색하는 것도 좀 그렇잖아요. 그래서 좀 난감했나 보더라고요.
소라가 저한테 푸념하듯, 다짐받듯 자기는 이 아파트에서 없는 사람처럼 살다가 어느 날 청약에 성공해 마치 원래 없었던 것처럼 조용히 빠져나가고 싶다고 했어요. 여기가 추구하는 공동체가 뭔지도 잘 모르겠고, 자기는 그런 거에 그다지 어울리는 사람도 아니며, 집에 와서도 인간관계에 신경 쓰고 싶지 않다고요. 그러니까 아파트에서 너무 눈에 띄는 활동은 자길 봐서 좀 자제해달라고.
이 말을 들었을 땐 저도 제 생각을 말할까? 하다, 그냥 입을 닫았어요. 일단 소라의 입장에 공감이 가서 그렇게 살 수 있도록 응원해 주고 싶었어요. 또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방식은 개인의 밑바탕에 깔린 기질과 삶에 대한 자세의 문제인데 그걸 얘기하다 보면 옳고 그름의 문제처럼 소라와 논쟁하게 될까 봐 겁이 났어요. 제가 이 아파트에서 가장 잘 지내야 할 사람이 똑순이 소라잖아요. 그래서 입에 지퍼를 꽉- 채우고 “알겠다, 노력하겠다!”라고 했습니다.
저 역시 비슷하게 자격지심(?) 같은 걸 가진 부분이 그린아크초원에 입주한 사람 중에 사회적기업, 사회적협동조합, NGO, 사회활동가, 마을 공동체 관련 혹은 경험자, 도시재생사업 종사자. 시민단체 활동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눈에 띄게 많았다는 거였습니다. 소라도 그렇고 저도 이런 쪽엔 정말 관심 없이 살았고, 만난 적도 없는 분야의 사람들이니까요. 그저 막연한, (편견에 가까운) 이미지만 갖고 있었어요. ‘자본과 다수의 욕망이 비껴간 곳에서 신념을 가지고 유무형의 가치를 발굴해 내고 알리는 사람들이다.’ 정도? ‘큰돈이야 못 만지겠지만 어쨌든 자기가 좋아서 뛰어든 사람들이니 보람차고 행복하게 살 거 같다. 참 멋지다!’ 했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제가 이상화한 이미지였어요. 예전에 Q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알려주셨던 플라톤의 그 이데아 얘기가 떠오르네요. 제가 저 때 가졌던, 그래서 ‘이 동네 사는 그쪽 분야 사람들은 다 괜찮은 사람들일 것이다.’라는 인식은 그야말로 그림자 같은 거였어요. 여기서 살아보니 사람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고, 못난 것도 이쁜 것도 대충 비슷하구나! 싶어요.
입주 초 이 아파트를 최초 제안하고 만들었던 부동산개발 회사 ‘소셜웨이브’(이하 소웨)은 그린아크초원 특별운영위원회의 운영에 깊이 관여했어요. 그럴 수밖에 없죠. 진즉에 같이 살던 사람들이 ‘우리 집 지어서 계속 같이 살자!’고 아파트를 지은 게 아니라, 소웨란 회사가 박근혜 정부의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의 정책을 이용해서 일반적인 아파트가 아니라 공동체로 사는 아파트를 만들어볼까? 라는 아이디어를 내서 진행한 거니까요. 그러니까 추상적이고 막연한 ‘아파트형 마을 공동체’란 목표만 있었지 그걸 실제로 만들어낼 주민은 없었던 거예요. 주객이 전도된 거죠. 원래 동네가 오래 묵어서 ‘우리가 한동네(공동체)가 됐네~’ 가 자연스러운 건데, 소웨가 ‘우리가 아파트 지을 테니 공동체로 살 사람들 모여 봐~’한 거니까요.
노스텔지어를 자극한 그 기획이 먹혔고, 몇 가지 장점-서울과 가깝고 임차료가 싸단 점-이 어우러져서 지금의 그린아크초원 혹은 특별운영위원회가 만들어진 것 아니겠느냐, 가 제 생각입니다. 제 경우는 후자에 방점이 찍혀있죠. 그치만 전자(공동체) 역시 이곳의 좋은 점이라고 생각해요. 고향 떠나 평생 혼자 살았으니, 중년의 강에 허벅지를 담근 이 시점엔 주변에 같이 늙어갈 동네 사람이 좀 있어도 괜찮겠다 싶었습니다. 물론 이런 생각을 가지고 여기에 입주한 건 아니죠. 지난번 편지에서 말씀드렸듯, 모델하우스에 눈이 멀어 물욕으로 입주를 결정하고 그걸 합리화했다는 쪽이 맞을 겁니다.
제가 이 그린아크초원의 권력(?) 중심부를 들여다보게 된 계기는 멍냥수다방을 만들었기 때문이에요. 당시 조합사무국은 동아리 회장들을 모아서 ‘커뮤니티센터관리단(줄여서 CM관리단)’이라는 걸 만들었어요. 아무래도 개별 동아리들이 커뮤니티 센터 내의 공간을 가장 적극적으로 사용하니 그들이 직접 공간 운영, 관리에 참여하는 게 맞다는 개념으로 출발해 만들어진 것이었요.
모든 일은 제가 여기에 참여해, 본의 아니게 당시의 그린아크초원 특별운영위원회의 권력 중심(?)을 엿보면서 생긴 것이랍니다. 하- 근데 또 그 시절을 떠올리니까 급- 딥빡이 올라오는군요. 하하하하.... 어디 가서 한바탕 식히고 편지 이어갈게요.
지난번 편지에서 방귀를 뿡뿡 뀌어대는 남자 때문에 당황해서 넘어졌다고 했잖아요. 글쎄 지하철역 근처 카페에서 그 남자를 다시 만났지, 뭡니까. 선생님께 메일 보내려고 노트북을 테이블에 다 뻗쳐놓고 카운터에 갔더니 그 남자가 거기서 주문을 받는 거예요. 노트북 세팅 안 했으면 그대로 돌아서 나갔을 텐데, 난감하더라고요. 그래서 저 방귀남이 절 까먹었거나 최소 모른 척이라도 해주면 좋겠다고 속으로 빌었는데, 눈치도 없는지 대뜸 “엇! 강아지 산책, 철퍼덕! 그때 안 다치셨어요?” 이러는 거 있죠? 정말 얼척이 없어서…. 그래서 “안 다쳤습니다~ 괜찮아요~ (신경 끄세요!)”하고는 얼른 자리로 돌아왔죠. 다시는 여기 안 온다, 그러면서요. 그런데…. 그런데…! 제가 그 카페에 파우치랑 지갑을 놓고 온 거 있죠? 파우치에는 여성용품도 들어있는데…. 하….
그 남자한테 연락이 왔어요. 분실물 보관 중이니 찾으러 오라고요. 연락처는 적립카드 보고 알았다고 하면서…. 그래서 내일 또 거길 가게 됐어요. 그나마 다행인 건 그 남자가 보낸 문자메시지가 비문 없이 정갈하고 정중하고 맞춤법도 다 맞았다는 거예요. 문자가 깔끔하니까 제가 좀 덜 부끄럽다고나 할까? 물론 그래봤자 내일 만나면 다시 민망해지겠지만요…. 여튼 그러합니다. 요새 제가 정신이 없네요.
2025년 9월
가을비로 촉촉한 날에 정신없는 경숙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