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형의 상실엔 사각형의 위로를

Q선생님께 보내는 다섯 번째 편지

by MINI

* 이 이야기는 100% 창작을 통해 만들어진 허구입니다.

지명, 인물명, 단체명이나 사건명들이 실존하거나 실제와 비슷한 경우가 있더라도 그것은 완전히 우연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

* 격주(26. 03.29)로 연재될 예정입니다.


등장인물

Q선생님 : 40대 후반의 여성. 화자인 ‘경숙’에게 글쓰기를 가르쳐준 선생님. 지금은 남편과 미국에서 살고 있다.

경숙 : 50대 초반의 여성. 편지를 쓰는 주인공. 그린아크 초원 아파트로 이사해 겪은 기묘한 일들을 Q선생님에게 쓰고 있다.

(똑순이) 소라 : 40대 후반의 여성. 경숙의 하우스메이트. 개를 좋아하며 경숙 때문에 간접적으로 놀라운 경험을 하고 있다.

초코·세라 : 경숙의 강아지. 경숙과 소라의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다. 둘의 자식 같은 존재.

이무백 : 40대 후반의 남성. 경숙의 전 연인. 사채로 돈을 많이 번 부모 밑에서 자랐다. 다정하고 유약한 남자.

경숙엄마 : 70대 중반의 여성. 경숙과 전형적이면서도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는 엄마. 서로 많이 다른 듯, 닮았다.

강현주 사무국장 : 40대 중반의 여성. 우리가족 협동조합의 사무국장. 경숙이 그린아크 공동체운영위원회와 갈등을 겪을 때 많은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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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형의 상실엔 사각형의 위로를>


제가 중학생 때 엄마 미용실에 십자매 새장이 다섯 개까지 생긴 적이 있습니다. 엄마가 십자매를 좋아했냐고요? 키우면서 예뻐하긴 하셨어요. 근데 최초에 십자매 한 쌍을 선물한 건 저였습니다. 어버이날에 카네이션과 함께 선물로 십자매 한 쌍을 새장에 담아 드렸죠. 엄마야 깜찍하다 못해 시커먼 제 속셈을 다 아셨지만 ‘고맙다~ 우리 딸.’ 하시곤 십자매를 잘 돌보셨어요. 저도 먹이와 물을 챙기고 새장청소도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십자매는 생각보다 번식력이 뛰어나더라고요. 그 때는 당근마켓도 중고나라도 없던 시절이라 십자매들을 어디 다른 데 보내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슬금슬금 새장이 늘어나기 시작했죠.

제가 고등학생이 되니 십자매 돌보는 게 쉽지 않았어요. 당시 우리 집엔 아랫집에서 얻어온 관상용 거북이에 열대어 어항과 믹스견 토토까지 있었습니다. 거실 겸 주방에 방 두 개짜리 작은 집이었는데, 사람과 동물로 꽉 찼던 거죠. 엄마는 이 좁은 집에 더 이상은 안 된다며 새장을 전부 미용실로 갖고 가셨어요. 그리고는 손님들한테 다 분양했어요.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돌볼 사람이 없으니까요. 한동안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열대어, 거북이를 보고 토토랑 놀아주고 어딘가로 떠난 십자매를 생각했어요. 괜히 미안하고 울적하고 그리웠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동물과 같이 사는 게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했어요. 엄마, 아빠한테 물려받은 기질일 거예요. 책에서 봤는데 지구상에서 이렇게 성실하게 다양한 동식물을 키우는 종은 호모사피엔스가 유일하대요. 우리의 본능에, 유전자에 새겨져 있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 본능이 강한 축인 거죠.



성인이 되어 독립해서도 개를 계속 키웠습니다. 개를 구하려고 애쓴 게 아니라 어쩔 수 없는 경우(?)였어요. 누가 키우던 개를 처분하려고 하면 측은지심에 데려오는 식으로요.

부모님이 키우던 강아지는 저한테 동생이었는데 혼자 키우니까 달랐습니다. 제 첫 강아지는 골격이 장대한 요크셔테리어 ‘해리’였는데, 산책 다녀와서 해리 발을 닦이며 ‘엄마가 닦아줄게.’라고 혼잣말이 튀어나왔는데 그 순간 뭔가가 울컥하고 올라왔어요. 무의식적으로 한 말이었는데 ‘엄마’란 단어가 책임과 의무, 깊은 애정을 일깨웠어요. 과장하면 제 영혼의 중심부가 살짝 흔들리는 느낌이었어요.


‘아, 내가 이 개의 보호자구나. 얘한테는 나밖에 없구나.’


어릴 적 설핏 낮잠에 들었다가 깼을 때 아무도 없어서 서러워 울었던 때가 떠올랐어요. 내가 사라지면 해리가 그런 기분이겠구나, 싶더라고요.

장군 같은 해리를 키우다가 사랑스러운 시츄 쿠키를 데려와 함께 키웠어요. 그러다 해리가 사고로 떠났고, 쿠키와 둘이 살다가 시크한 말티즈 캔디를 데려왔어요. 몇 년 후에는 쿠키가 심장병으로 떠났고 캔디도 나이를 먹어 눈도 귀도 멀고 치매증상을 보이는 할머니가 됐죠. 그 무렵에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세라와 초코가 같은 날 왔어요. 캔디는 초코세라와 2년 정도 같이 살다가 무지개다리를 건넜어요. 개들은 참 짧게 살다 가더라고요. 알고 있었지만, 여러 번 겪었지만, 이별의 순간은 늘 처음 겪는 것처럼 아프고 힘들었답니다.


강아지가 내 곁을 떠날 때 이 고통을 이해하고 나눌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이야 ‘펫로스’라는 말도 제법 통용되지만, 해리가 떠날 적만 해도 저는 ‘그깟 개 한 마리 땜에 그래?’란 말도 들었어요. 와! 그 순간에 어찌나 화가 나던지, 잠깐이지만 치솟는 분노 덕에 해리가 떠난 슬픔도 잠시 잊었지 뭡니까.



그린아크초원에 이런저런 동아리가 생겨날 무렵, 왜 강아지 동아리는 안 생기나 발을 구르다가 ‘나는 왜 그런 동아리가 필요하지?’라고 돌아보게 됐어요. 제가 쓸데없이 각 잡고 고민하는 거 잘하잖아요. (이건 소라의 표현이에요. 들었을 땐 기분 나빴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맞는 말 같긴 해요....)

‘왜?’라는 질문은 반려견 동아리에게 내가 바라는 점, 기대하는 것, 마침내는 그것의 존재의의까지 파고들어갔지 뭐예요. 처음에는 모호하고 피상적이었어요. 아파트 남는 공간에 강아지들을 위한 시설을 만들고 싶고, 잠깐 강아지 맡겨야할 상황이 생겼을 때 서로 맡아줄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고, 강아지들한테 동네 친구 강아지를 만들어주고 싶기도 하고, 등등 정말 많은 이유가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동아리가 왜 있어야하는지, 그게 사람들을 궁극적으로 어떻게 이어줄 지를 고민할수록 저의 욕심 섞인 희망사항은 하나씩 사라지더라고요. 마침내 제가 찾아낸 것은 ‘위로’였어요.

강아지가 떠났을 때 적절한 사람에게서 적절한 위로를 받고 싶었어요. 그런 적이 없었어요. 30년 동안 단 한 차례도요. 물론 자식과 비슷한 느낌이긴 하지만 개는 자식이 아니잖아요. 어찌 감히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에 댈 수 있겠어요. 사각형의 상실엔 사각형의 위로가, 세모의 공백엔 세모의 응원이, 동그라미의 아픔엔 동그란 약이 필요해요. 맞지 않는 모양을 우겨넣으면 오히려 상처가 생길 수 있잖아요.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그런 실수는 젊었을 때 많이 했으니까요.

미물이면서 소중한 존재, 사회·경제적으론 별 가치가 없지만 당사자에겐 하늘이 무너지는 상실감을 줄 수 있는 그 하찮은 존재의 무게를 아는 누군가가 그 깊디깊은 슬픔에 동의해주면 얼마나 큰 위로가 될까? 내가 개를 키우는 타인과 관계 맺기를 한다면 바로 그 지점이 가장 절실한 동기다, 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제가 대충 이런 생각을 소라한테 말했더니 소라는 다이어트 맥주에 와사비맛 과자를 아삭거리며 미묘한 표정을 짓더라고요. “아, 그렇구나. 알았어~”라고 했는데, 말만큼이나 표정, 몸짓, 눈빛 같은 비언어적 표현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설명해주셨던 Q선생님의 강의가 떠올랐지 뭡니까!?


소라는 저에게 ‘너란 인간은 쓸데없는 것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아서 복잡하면서도 딱히 유용하지 않은 결론을 내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구나... 네가 그런 답을 내려봤자 동아리가 그런 생각을 반영해 뚝딱 만들어지지도 운영되지도 않을 거다. 그리고 너나 난 언제라도 개인사정이 생겨 헤어질 가능성이 있고, 그럼 이 아파트도 동아리도 바이바이인데 뭘 그렇게 까지 딥(Deep)하게 파는 거니? 진실로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 같다.’ 라고 아주 확실히 전달을 한 것이죠.

아, 그리고 미리 소라에 대해 말씀드릴게 (어째 험담을 하는 것 같아 찔리지만 소라가 이 편지를 볼 일도 없고, 딱히 없는 말을 하는 것도 아니니 진짜 욕은 아니지 싶습니다.) 소라는 제가 볼 때 좀 과하다 싶게 주변 시선에 민감해요. 이해는 합니다. Q선생님이 아시다시피, 제가 평균이하의 외모잖아요. (우리가 서로 못 본 사이 분명 늙었을 것이고 제가 미용이나 관리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사니까 상태는 더 나빠졌을 거예요.) 평생 어느 자릴 가도 주목이나 시선을 받아본 적이 없답니다. 그에 반해 소라는 키 크고 늘씬한 축에 들고 인물도 그 정도면 매꼬롬하게 이쁜 편이니까요.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이 다 자길 쳐다본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소라가 입주 초에 그랬어요. 여기가 공동체 아파트니 뭐니 해도 우리는 조용히 살자고. 사람들이 자길 두고 수군거리는 게 너무 싫다고요. 저는 “네가 연예인도, 셀럽도 아닌데 누가 널 두고 수군거린다는 거야?”라고 묻고 싶었지만 그냥 입을 다물었습니다. 저 역시 남 눈에 띄는 걸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그린아크초원 84형에 대한 지분을 따져도 저보다 두 배 이상이신데 심기를 거슬려 좋을 게 없으니까요.

다시 동아리 얘기로 돌아가서 소라의 ‘네가 아무리 고민해봤자 그런 동아리는 존재하지도, 그렇게 운영되지도 않을 거야.’라는 비언어적 대답에 저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답니다. 반려동물 동아리 ‘멍냥수다방’을 만들었어요! 하하....



대체 왜 그랬을까요? 제가 그 때 살짝 미쳤었나 봐요. 여튼 이런 과정을 거쳐 저는 22년 4월에 그린아크초원 아파트 단지 내에 반려동물 동아리 ‘멍냥수다방’의 방장이 되었습니다. 두둥~!

당시엔 몰랐죠. 이 작은 한 발자국이 저를 이 아파트 단지에서 어디로 이끌게 될 지를요. 만약 알았다면 동아리를 안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돌이켜보면 저는 순진했습니다. 우물에도 파도는 칠 수 있고, 아무리 착한 사람도 욕망은 갖고 있는데 말이죠. 어쩜 입주 초 달뜬 분위기에 휩쓸려서 가능성 있는 상황을 놓치고 있었을 지도요.



2025년 9월

Q선생님의 가르침을 늘(?) 곱씹는 사랑스런 제자 경숙 씀



추신 : 어제 조금 당황스런 일이 있었어요. 해질녘 강아지들이랑 아파트 근처 개천으로 산책을 나갔어요. 그린아크초원은 초원동 끄트머리 아파트고 정비된 개천의 시작점이라 인적이 드물거든요. 근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제 앞에 걷던 남자가 방구를 뿡뿡 뀌는 게 아니겠어요? 소리가 정말 컸어요! 그게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을 연달아 뀌어서 그 소리에 초코가 귀를 쫑긋해서 두리번거렸고, 세라는 멍- 하고 짖었어요. 그랬더니 그 남자가 돌아봐서 저랑 눈이 마주쳤는데 씩 웃는 거예요. 세상에... 저는 너무 민망하고 부끄러웠는데, 또 그런 티를 내면 실례될까싶어 살짝 웃어주곤(아! 바보 같아...) 후다닥 앞질러가다가 그만 개들 리드 줄에 발이 걸려 넘어졌어요. 그것도 좀 괜찮게 넘어진 게 아니고 진짜 쌩으로, 살이 콘크리트 바닥에 쫙 붙어서 철퍼덕! 하고 큰 소리가 났죠... 아이고.... 아이고.....!!

그 남자가 ‘괜찮아요?’라면서 다가와서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천변을 뛰듯이 걸었어요. 집에 왔더니 무릎이 까져서 피가 나더군요. 아휴... 누굴 탓할 순 없지만, 그 남자의 길거리 방귀가 온당하단 느낌은 안 드네요. 길에서 뿡, 뿌웅, 뿡~ 삼연발을 해놓고 부끄러운 기색하나 없이 웃을 건 또 뭔지.... 죄는 그 남자가 지었는데 벌은 제가 받은 기분이라 좀 그러네요.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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