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선생님께 보내는 네 번째 편지
* 이 이야기는 100% 창작을 통해 만들어진 허구입니다.
지명, 인물명, 단체명이나 사건명들이 실존하거나 실제와 비슷한 경우가 있더라도 그것은 완전히 우연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
* 격주(26. 03.15)로 연재될 예정입니다.
Q선생님 : 40대 후반의 여성. 화자인 ‘경숙’에게 글쓰기를 가르쳐준 선생님. 지금은 남편과 미국에서 살고 있다.
경숙 : 50대 초반의 여성. 편지를 쓰는 주인공. 그린아크 초원 아파트로 이사해 겪은 기묘한 일들을 Q선생님에게 쓰고 있다.
(똑순이) 소라 : 40대 후반의 여성. 경숙의 하우스메이트. 개를 좋아하며 경숙 때문에 간접적으로 놀라운 경험을 하고 있다.
초코·세라 : 경숙의 강아지. 경숙과 소라의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다. 둘의 자식 같은 존재.
이무백 : 40대 후반의 남성. 경숙의 전 연인. 사채로 돈을 많이 번 부모 밑에서 자랐다. 다정하고 유약한 남자.
경숙엄마 : 70대 중반의 여성. 경숙과 전형적이면서도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는 엄마. 서로 많이 다른 듯, 닮았다.
강현주 사무국장 : 40대 중반의 여성. 우리가족 협동조합의 사무국장. 경숙이 그린아크 공동체운영위원회와 갈등을 겪을 때 많은 도움을 준다.
Q선생님, 전 이불킥을 자주 해요. 예전에 선생님이 ‘경숙씨는 과거에 연연하지 않아서 멋있어요.’라고 하신 적 있어요. 그 때 제가 막 손사래 치면서 아니라고 했었는데, 그게 겸양을 부린 게 아니라 늘 과거에 연연하고 곧잘 후회에 빠지는 인간이라 그랬던 거였어요. 오늘 아침만 해도 주방서랍의 은박지를 보고는 ‘아! 어리석은 나야, 그때 왜 그랬니?’ 했답니다.
예전 편지에 연서동 살 때 주말에 강남에 있는 반찬가게 알바 한 적 있다고 했잖아요. 그 때 저보다 먼저 일하던 선배언니가 있었어요. 열 살쯤 연상인데 매니저느낌으로 반찬디스플레이와 재고정리까지 맡아하셨어요. 성격이 좀 강해서 편한 분은 아니지만 저야 주말알바니 특별히 부딪힐만한 일은 없었어요. 그런데 하루는 은박지 사용하는 걸로 저한테 뭐라고 했어요. 은박지 보면 광택 있는 부분이랑 없는 부분이 있잖아요. 저는 고기 구울 때 은박지 반짝이는 면에다 구워요. 그래서 은박지에 포장하는 반찬은 반짝이는 면에다 쌌거든요. 그걸 언니가 보시곤 톡 쏘는 말투로 “먹는 음식을 왜 반짝이는 쪽으로 싸? 거기는 바깥쪽이야.”라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전 고기도 여기에 구워요. 식당에서도 다 그러던데 굳이 따지자면 이쪽이 맞는 쪽 아닐까요.”라고 했죠. 그랬더니 그 언니가 치를 떠는 거예요. 누가 맞느냐를 떠나서 제가 눈 동그랗게 뜨고 말대답하는 게 싫었던 거 같아요. 근데 그 땐 저도 웬일인지 지기 싫어서 바득바득 제가 옳다고 막 그랬어요.
Q선생님은 정답을 아세요? 검색해봤더니 결론은 ‘상관없다’입니다. 가공공정에 의해 한쪽 면이 반짝거릴 뿐, 아무데나 써도 된대요. 답이 이러니까 그 때의 제가 더더욱 한심했어요. 그까짓 게 뭐 대수라고 예~하고 넘어가지, 기필코 말대답을 해서 그 언니 기분을 상하게 했을까? 후회막급한데 또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그게 그 때의 나였다. 지금의 나는 은박지의 정체를 알기 때문에 다른 답을 할 수 있다, 이제라도 그 언니 기분, 내 기분도 안상하게 할 방법을 알았으니 조금 나아진 거다, 라고요.
이 편지를 쓰다보면 그린아크초원 입주 초로 돌아가 그동안의 나를 돌아보게 됩니다. 여기저기 후회들이 가득합니다. 그렇지만 그 후회들 대부분은 깨달음을 줬어요. 제가 얼마나 부족하고 모자란 사람인지, 매번 쉴 새 없이 실수하고, 잘할 수 있었는데 못했다는 걸.... 땅이 꺼져라 한숨이 나오고, 민망하고 부끄러워 말 그대로 이불 킥을 하는데, 또 그러는 제 모습을 발견하고는 ‘앗! 크크크’하고 웃어요. 그 때 저의 또 다른 자아(아마도 초자아)가 준엄하게 저에게 한마디 합니다.
“이 바보멍청이가 너다.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근데 알았다고 해서 또 멍청한 짓을 안 할 거라고 생각진 마라. 넌 늘, 평생- 그래왔으니까.”
물론 그린아크초원에 와서 후회만 가득한 건 아니에요. 즐거운 일도 많았어요. 특히 입주 초에 있었던 일들은 돌아보면 마법 같고, 다른 어디서도 다시는 겪지 못할 경험이자 추억이에요.
22년도 봄, 입주 초의 그린아크초원 아파트는 축제로 가득했어요. 주말마다 크고 작은 행사가 있었어요. 그때 위원회 사무국에서 일했던 사람이 그랬는데, 무조건 한 달에 한번 위원회 사무 주도의 마을전체 행사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커뮤니티센터에서 상품을 걸고 ‘빅게임1)도 했다고 들었어요. 진짜 별의별 이벤트를 다 한 거죠. 이해가 갔어요. 주민들 간의 ‘아이스브레이킹’과 ‘단합’을 위해 필요했지 싶어요.
마을 전체행사의 세부내용이나 목적은 매번 달랐지만 모양새는 늘 비슷했어요. 이국적인 메뉴의 푸드트럭이 몇 대 오고, 잔디밭 가장자리를 따라 사무국직원들이 천막을 세우면 신청한 사람들이 와서 부스를 열었어요. 대부분은 플리마켓 부스에요. 주민들이 이런저런 잡화나 음식을 나눔하고 팔았어요. 동아리나 인근 상인, 사회적기업이 회원을 모집하고, 자기네 물건이나 서비스를 홍보·판매하는 부스도 있었고요. 사무국이 솜사탕기계를 빌려서 애들한테 무료로 솜사탕을 주기도 했어요. 그럴 땐 줄이 정말 길게 늘어섰죠. 행사 날이면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신이 나서 아파트 단지 내를 돌아다녔어요. 저도 초코세라랑 그랬고요.
이런 행사가 요긴했던 이유 중 하나가 당시 초원동이 삭막해서였어요. 일시적인 식품 사막(food desert)2)이었답니다. 완성된 상가건물이 없어서 편의점 몇 개 덜렁 있었는데 거긴 제대로 된 식재료는 취급안하거든요. 와사비 하나, 두부 한 모 사러 차를 끌고 다른 동네로 가야했어요. 슈퍼가 없으니 식당도 없었죠. 배달메뉴도 한정적이었어요. 즐길 거리는 말할 것도 없었고요. 사람들이랑 차 한 잔하며 수다를 떨 장소는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카페뿐이었답니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시끌벅적한 축제가 열려 먹거리와 볼거리들이 들어오니 신이 날 수 밖에요. 자본주의가 지각해서 생긴 불편과 아쉬움을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로 채웠어요. 그래서 축제 중인 아파트 단지를 걷다보면 뿌듯함과 조심스러움을 동시에 느껴졌어요.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이 한번 보고 말 사람이 아니라 계속 마주 칠 이웃이라는 사실이 제 걸음걸이를 달라지게 만들었어요. 그 기분을 뭐라고 표현해야할지 잘 모르겠네요. 소속감이랑 비슷한데 딱 그건 아니고, 그렇다고 보는 눈이 많아 안전하다거나 불편하다거나 그런 느낌도 아니고.... 좋으면서도 약간 긴장되는 건데.... 여하튼 제 짧은 문장력으로는 표현이 어려운 감정이었습니다.
마을축제와 함께 동네에 이런저런 모임들이 생겨났어요. 위원회 사무국은 소모임을 적극권장하고, 동아리 형태로 운영하라고 권했어요. 동아리 만들면 지원금도 주겠다면서요. 커피값 정도 되는 지원금 땜에 동아리를 만들진 않지만, 다들 ‘이번 기회에 뭐라도 해볼까?’하는 분위기였어요. 예전에 창업캠프 진행 알바 할 때 본 거 같아요. 거기 새내기 대표님들이 ‘뭣이든 다 해낼 테다. 나는 모든 것에 열려있다!’ 이런 느낌이셨거든요. 제가 이런 얘길 했더니 똑순이 소라는 자기가 보기엔 ‘애정촌’같다고 하더라고요. (아주) 예전에 장안의 화제였던 ‘짝’이라는 연애예능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거기 출연자들이 지내는 곳을 ‘애정촌’이라고 했어요. 아마 Q선생님도 보셨을 거예요.
소라는 ‘짝’의 그 달뜬 분위기도 별로고, 그 와중에 자기를 과장하는 출연자가 보기 싫었는데 지금 그린아크초원 아파트도 비슷하대요. 온라인 카페에 올라온 일부 사람의 글을 보고 그런 느낌을 받은 거 같아요. 저는 속으로 ‘나 포함해서 다 자기를 실제보다 올려치기하면서 살지 않나?’라고 생각했지만 말하진 않았어요. 이런 걸로 다툴 필요 없잖아요. 소라처럼 볼 여지도 있었고요.
냉담한 소라와 달리 저는 이런 마을 분위기를 즐기는 동시에 초조함을 느꼈어요. 목공동아리 회원이 오십명이라더라, ‘살림힌트’ 단톡방에 백 명 가까이 모여 있다더라, 같은 얘기가 들리는데 제가 오매불망 기다리는 반려견 동아리는 감감무소식인거예요. 아니, 대한민국 애견 인구가 얼마고, 내가 이 동네서 산책하며 본 개들이 몇 마린데 왜 아무도 안 만들까? 이러다 동아리가 안생기면 어떡하지? 라며 발을 굴렀죠.
물론 저의 이런 반응에 소라는 눈썹을 모으며 ‘강아지동호회가 없으면 안 되는 거야?’라고 되물었어요. ‘나쁜 기집애!’ 라고 속으로 욕했지만, 나중에는 그 말을 곱씹게 되었어요. 나는 왜 반려견 동아리를 기다리고 있지? 무얼 바라는 거지?
왜 그런 건지 잘 모르겠지만, 아니 제가 그냥 그렇게 생겨먹어서 그런 거 같은데 소라의 시큰둥한 반응 이후에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됐어요. 제가 왜 반려견 동아리를 기다리는지, 그것에 무엇을 기대하는지, 거기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또 인생을 한번 쫘악~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호호호.
오늘 편지는 지난날을 돌아보는 걸로 채워졌네요. 후회 가득하지만 군데군데 즐거운 순간, 빛나는 찰라가 있었어요. 앞으로도 그렇겠죠? 대체로 힘들고 괴롭고 답답하지만 누군가의 미소로 견뎌내고 버티는 삶.... 저는 괜찮다고 생각해요. 꽃이 화려하게 도드라지는 건 무덤덤한 녹색 이파리가 가득해서잖아요. 행복한 추억은 평범하고 후회스런 날들 없이 만들어지진 않을 거예요. 그러니까 선생님도 저도 잘 견디고 잘 버티면서 다시 만나요.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2025년 9월
늘 후회하지만 금방 멀쩡해지는 경숙이 Q선생님께 애정을 담아 씀
1) 다수가 실제로 모여서 즐기는 테마성 강한 실시간 게임으로 장소를 대관해 진행하기도 한다. ‘더 지니어스’등의 방송 예능프로그램에 나온 게임이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2) 1990년대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생겨난 용어. 당시 영국 도심 및 교외 지역에 있던 식료품점들이 도산하자 교통 환경이 열악한 빈민층들이 어쩔 수 없이 식료품을 비싼 값으로 판매하는 잡화점 등을 찾아가 사먹는 현상이 발생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현재는 식자재와 가공식품, 일용품 등을 구하기 어려운 지역을 일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