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1
몇 해전 겨울 대학생이던 나는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첫 자취를 시작했다. 그런데 나의 두근두근 자취라이프는 도무지 저절로 굴러가지 않는 것이었다. 그 작은 방의 세대주가 된 순간부터 집 안 모든 곳에 나의 손길이 필요했다. 유심히 들여다본 전기세 고지서에 TV 수신료가 청구되어 있었고 우리 집에는 TV가 없음을 소명해야 했다. 생필품이 성실히 고갈되는 동안 재활용품은 차곡차곡 쌓여갔다. 집안일은 채우는 동시에 비워야 하는 창과 방패의 싸움이었다.
1년쯤 지나고 나의 자취생활은 어느 정도 정상궤도를 찾았다. 그즈음 우리 집 세탁기가 작동 중 돌연 멈췄다. 이사 올 때부터 소리가 요란하던 세탁기는 끝내 회생불가 판정을 받았다. 다행히 집주인이 새것을 구입해 주기로 했지만 기다리는 동안이 문제였다. 세탁기에서 쫓겨난 빨래들이 집안 곳곳을 점령했고 남아있는 수건은 점점 줄어갔다. 하필 우리 동네에는 코인세탁방이 없었다. 마음씨 착한 동기가 흔쾌히 수건을 빌려주겠다고 했으나 결국 나는 버스를 타고 옆 동네까지 빨래 원정을 가게 되었다. 건조기 돌아가는 시간이 자꾸 늘어나는 바람에 수업에도 늦었다.
그 서러움의 시간을 겪고 나는 조금은 단단해진 자취생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단단해진 자취생은 또 다른 위기를 맞는데..
내가 사는 곳에 단전 예고장이 붙었다. 매달 꼬박꼬박 냈던 전기세는 어디로 갔을까. 정말 전기가 끊긴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21세기에 전기 없는 삶을 걱정할 날이 올 줄이야. 이런저런 생각에 나는 견딜 수 없이 서러워졌다. 별 탈 없이 굴러가던 인생이 또다시 돌부리에 걸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