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어떨 땐 할매랑 똑같다. 아들이 내게 말했다.
어젯밤 엄마꿈을 꾸었다.
돌아가시고, 1년 반 만에 처음이었다.
난 꿈을 잘 꾼다.
스펙타클하다.
호러꿈, 로맨스꿈, 판타지꿈
다채롭다. 어느 해엔 꾸었던 꿈을
노트에 적어보기도 했지만
뒷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는
꿈들이 대부분이어서
적는걸 포기한 적이 있다.
엄마가 너무 반가워 내쪽으로
오라 하였지만 다른 곳에 물건을
찾으러 갔고, 나를 보면서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꿈에서도 섭섭해하지 않았다.
엄마의 그런 표정을 자주 접하였기에.
오빠가 돌아가시고 난 후
엄마의 관심은 나의 아들이었다.
아들도 오빠 못지않게 잘 하였기에
엄마는 흡족해 했다.
'니가 삼촌 닮아서 뭐든 잘한다.'
엄만 입버릇처럼 이야기하였다.
조.부모님들은 내리사랑 이라지만
엄마는 심할정도로 집착했다.
나에게 하였던 것 처럼.
엄마가 짜놓은 프레임에
아들이 움직이도록 강요했고,
조금만 벗어나면 다그치기도 했다
가수가 꿈이었던 오빠였지만,
너무 착했던 나의오빠는 부모님의
자랑이고 기둥이란걸 알고 있었다.
공무원도 강요해서 준비를했고,
시험도 한번에 붙어서 엄만
오빠를 더 자랑스러워했다.
나의 아들은 오빠처럼
착하지 않았다.
공황장애와 그에 동반된 우울증을
앓고 있던 아들은 할머니의 집착이
힘들어 가슴이 조인다는 의사에게
이야기를 할 정도로 아들은 아팠다.
아들은 대학교를 경기도로
가게되자, 엄만 본인 아들죽음보다
더 슬프게 울었다.
엄마를 며칠동안 달래었다.
"엄마 아직젊은 나이인데,
자기인생살아야지.
언제까지 옆구리끼고 살꺼꼬?
지 인생 살아야지.내가 엄마옆에 있쟎아
그만하셔요.누가 보면 엄마아들이
멀리가는줄 알겠수!"
그런 아들이 1년후 더 멀리
일본에 있는 대학교로
간다고 했을땐 엄만 더 우셨다.
이젠 몇 년 못 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저린다고 했다.
할매는 이제 살날도 얼마없는데
꼭 가야되나?
눈물로 호소했지만,아들은
할매 오래산다.걱정마라
달래어야 했다.
엄마의 넘치는 사랑에
정작 엄마인 난 내 아들에게
사랑을 듬뿍 주지못했다.
할머니의 과한사랑을
부담스러워 하는 아들이기에
마음껏 표현을 하지못한 나였다.
난 엄마의 사랑을
오빠에게, 그리고 나의 아들에게
빼앗겼던 못난 막내딸이었다.
나에게 엄만 애증의 대상이었다.
엄마 돌아가시고 난 뒤
몇 달전에 아들에게 들은
이야기에 무척 놀랐다.
"엄마!어떨땐 엄마보면 할매랑
똑같아서 놀란다"
어떤점이? 물으니
"엄만 은근히 고집세고, 말투가
이렇게해라,저렇게해라 명령조로
이야기한다"
어?그래! 미안해.고칠께!
아들에게 사과했다.
엄마를 닮기 싫어했지만,
나도 모르게 엄마말투로
이야기 할때가 있다.
남편에게나 가까운 사람에게.
스스로 깨달으면 놀라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아~내가 엄마를 많이 닮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