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일상적인 조경이야기(8)

실무에서 마주하는 조경의 현실을 들여다보며(1)

by 초록아이

지난 회차를 거치며

조경을 이론적으로 정의해 보고,

실무 속에서 이어지는 다양한 과업들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아직은 낯설고 다가오기 어려운 분야일지라도,

조경을 조금 더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그동안 여러 이야기를 나눠 왔습니다.


하지만 지난 글들을,

혹시 조경 실무자분들이 읽으셨다면,

현실과는 다소 동떨어진 이야기라며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저 역시 조경을 더 많은 분들께

가깝고 편안하게 전하고 싶다는 마음에,

저도 모르게 약간의 미화된 표현을 쓰거나

긍정적인 면을 강조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물론,

없는 사실을 지어낸 적은 없습니다.


다만 복잡하고 힘겨운 현실보다는,

그 안에 조용히 빛나는 가능성과

숨어 있는 조경의 진짜 가치를

더 많이 전하고 싶었던 건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실무를 하며 제가 직접 마주했던

조경의 현실에 대해,


이번에도 아주 개인적인 시선으로

담백하게 전해보고자 합니다.


아주 오래전,

청소년수련원 조성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수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기본계획 총괄을 맡아

수련관 등 건축물의 입지 대안을 검토하고,

운동장과 기타 수련 시설의 공간계획을

체계적으로 수립하였습니다.


그 이후, 발주처와의 수많은 피드백을 거치고

최종적인 보고까지 마무리한 뒤

기본계획이 확정되었을 때는

하나의 큰 고비를 넘긴 듯 보였습니다.

기본계획 수립 당시 조감도(1998년)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

본격적인 실시설계 단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조경의 현실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됩니다.


본 사업 공사비의 대부분은

청소년수련관 '건축'에 배정되었고,

남은 예산 역시

도로, 운동장 등 기반시설을 담당하는

'토목' 분야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조경 공사비는

눈이 뛰지도 않을 만큼 미미했습니다.


실시설계가 본격화 되자,

조경의 존재는 점점 희미해져 갔습니다.


회의 안건에서도,

설계 조율 과정에서도

조경은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조경 업무는

과업의 중심에서 점점 밀려나며

무시되고 외면받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이 프로젝트는

조경이 기본계획을 총괄하며 과업을 함께 진행한

건축·토목 실무자들과의 신뢰 덕분에

큰 문제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경의 목소리를 끝까지 낼 수 있었다는 사실이

제게는 큰 의미로 남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과업이

이처럼 순조롭게 흘러가지는 않습니다.

수련원 겨울 전경 사진(이미지 출처 : 경상북도 청소년 수련원 홈페이지)

조경에서 대부분의 공종을

직접 설계하고 시공하는 구조라면,

일의 흐름은 비교적 원활하게 진행됩니다.


하지만, 타 분야가 사업을 주도하고,

조경이 일부를 지원하는 방식이 되면

상황은 제법 까다로워지기도 합니다.


특히, 사업을 총괄하는 기술자가

조경에 대한 인식이 부족할 경우,

사업비 비중이 크지 않은 조경 분야는

우선순위에서 배제되기 쉽습니다.


조금 심한 경우에는

메인 공정이 거의 완료되는 시점에야

조경이 뒤늦게 투입되어,

남은 빈 공간을 정리하는 데 그치고 마는

안타까운 상황도 발생하기도 합니다.


현재 국내 건설사업 등의 설계비용은

대부분 해당 공사비를 기준으로 산정됩니다.


따라서,

공사비가 상대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는

조경 분야의 현재 구조상,

충분한 설계 여건을 확보하지 못한 채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돌이켜 보면,

한창 실무에 몰두하던 시절에는

토목을 비롯한 여러 관련 분야와

치열하게 부딪히고 갈등했던 기억만 남아 있습니다.


그래도 조금은 희망적인 점은,

조경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서서히 개선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과거에는 아파트단지를 개발할 때,

건축물과 기반시설을 우선적으로 계획하고

조경은 남겨진 자리에 형식적으로만 채워 넣어

질적으로 미흡한 공간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단지 내 공원과 녹지공간의 조성 수준이

그 아파트의 품격을 좌우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물론, 이 변화가 의미 있는 시작이긴 하지만

여전히 넘어야 할 과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반포 아크로리버파크(이미지 출처 : 조경 포털 lafent)


그리고 대규모 단지계획에 있어서도,

예전에는 전체 공간계획이 끝난 뒤에야

조경이 뒤늦게 참여해, 배분된 공원과 녹지를

성격에 적합하게 정리하는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계획 수립 초기 단계부터

조경 전문가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공원 및 녹지체계를 포함한 전체 공간구조 계획에

보다 깊이 관여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조경의 역할이 단순한 '지원'에 그치지 않고,

공간을 주도적으로 형성하는 "계획적 파트너"로서의

위상을 되찾아가고 있다는 신호로 볼 수 있습니다.

화성동탄(2) 지구 택지개발사업 1단계 현상설계(이미지출처 : 조경포털 Lafent)

오늘은,

공사비 구조의 한계 속에서

다른 공종에 밀려 후순위로 남겨지고,

그 가치마저 외면당하는 조경의 현실을

조금 더 담담하게 들여다보았습니다.


이런 내용을 꺼내기까지

적지 않은 고민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일 역시

조경을 올바르게 이해해 가는

소중한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같은 날,

아이유가 이렇게 묻는다면요.


"조경의 현실은 어떠한가요?"


저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네. 실무에서 마주하는 조경의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더 힘겹습니다.

우선순위에서는 늘 뒷전으로 밀리고,
존재 자체가 가려지는 일도 많습니다.
하지만,
해당 공정의 비중이 작다고 해서
그 역할과 의미까지 가볍게 여겨져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작은 자리 하나에도

조경의 손길을 느낄 수 있도록

정성스럽게 임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변함없이요.

반포 아크로리버파크(이미지 출처 : 조경 포털 laf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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