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일상적인 조경 이야기(9)

실무에서 마주하는 조경의 현실을 들여다보며(2)

by 초록아이

지난 글에서는

공사비 구조의 한계 속에서

타 분야로부터 외면받고 있는

조경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 글을 쓰는 동안,

제 마음은 한없이 무겁게 내려앉았고

작은 문장을 이어가는 일조차

금세 지쳐 버릴 만큼 힘겨웠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이야기는

조경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위해

반드시 담아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 두 번째 이야기를

더 조심스럽게 이어가 보려 합니다.


조경의 현실은 단지 예산의 문제를 넘어,

그 안에 담긴 인식과 구조의 장벽이기도 합니다.


이번에는 그 벽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우리의 일상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는지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곳은,

수자원, 도로, 도시계획, 조경, 상하수도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하는

종합 엔지니어링 회사입니다.

그 안에서 저는

국토개발본부 내 '조경부'에 소속되어

관련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회사 전체로 보면,

수주 금액이나 인원 구성 면에서

조경부는 두드러지는 조직은 아닙니다.


부서 자체적으로 수주한 과업은

비교적 무리 없이 수행할 수 있지만,

엔지니어링 회사의 특성상

다른 부서와의 협업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며

그 과정에서 조경은 여러 현실적인 벽에 부딪히곤 합니다.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타 분야에서 보는 조경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열악한 수준입니다.


과업의 내용과 업무량에 비해

배분되는 비용은 터무니없이 적고,

심지어 조경 용역비가 별도로 책정되지 않아

그냥 '서비스'로 해달라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조경이라는 분야가 마주한 현실은

단순한 업무 여건을 넘어

구조적인 한계와 인식의 문제로 이어집니다.


예전에 한 번은

상하수도부에서 진행하는 하수처리장 사업의

전체 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감독관은

"하수처리장 시설은 모두 지하에 배치되고

지상은 공원화가 되니 조경이 정말 중요하다"라며

저를 쳐다보며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저희에게 배정된 예산은

조감도 외주 제작비를 제하고 나면

거의 남는 것도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중요하다는 외침은 있었지만,

그 중요성을 뒷받침해 줄 예산과 구조는

여전히 조경에게 인색했습니다.


그리고 내부적으로는

같은 회사 일이니 너무 이해타산 따지지 말고

다음에 다른 일로 보상할 테니

이번만 도와달라는 말이 반복됩니다.


그렇게 조경은 또 한 번,

당장의 이해관계에서 뒤로 조용히 밀려났습니다.

하수처리장 상부, '공원화'를 넘어 실제 공원으로 조성된 안양새물공원(이미지출처 : 안양시청)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지만,

모든 엔지니어링 회사의 조경부가

이런 현실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닙니다.


조경 분야에서 선도적으로 사업을 개척하고,

타 부서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며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회사들도

제법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돌아보면, 저희 회사 조경부가

지금과 같은 상황에 이르게 된 데에는

현재 임원인 제 책임도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실무 과정에서 나름 치열하게 부딪히고,

수없이 회의실에서 설전을 이어갔으며,

때로는 목소리가 커질 만큼 다투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제 역량만으로는 그 벽을 허물기엔

부족했음을 겸허히 인정하게 됩니다.


조경부에서 근무하다 보면

가끔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과업이 들어오곤 합니다.


특히, 서로 다른 분야가 융·복합되어

새로운 형태로 나타나는 과업의 경우,

대부분 부서들이 '우리 일이 아니다'라며 미루다 보니

결국 우리 부서로 넘어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솔직히 살짝 기분이 상할 때도 있지만,

이런 과업을 깔끔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부서는

회사 전체를 통틀어 조경부밖에 없다고 자부합니다.


조경 분야만이 가진 유연한 사고와,

협업을 통해 쌓아 온 다양한 분야와의 경험들은

새로운 유형의 과업을 마주할 때

그 진입 장벽을 낮추는 강력한 힘이 됩니다.


앞으로 이런 하이브리드형 과업은

피할 수 없는 흐름처럼

더 자주, 더 복잡하게 등장할 것입니다.


그 안에서 조경부는

한층 더 단단히 성장하며

분명한 존재감을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결국,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부서가

미래를 선도하는 조직이 될 것입니다.


가끔 혼자서 이런 상상을 해봅니다.

우리 회사 안에서의 조경부는,

전 세계 속 '대한민국'과 닮아 있다는 생각 말입니다.


국토 면적은 작고 인구도 많지 않았으며,

보유한 자원도 넉넉하지 않았던 나라.

그럼에도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를 이루었고,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문화적 저력과

첨단 산업을 선도하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가 주목하는 역동적인 국가로 성장했습니다.

달빛과 조명을 받아 더욱 화려해진 창덕궁 야경 (이미지출처 : 한국문화원)


저는 우리 조경부가

바로 그 가능성을 품고 있다고 믿습니다.

사업 규모도, 예산도, 인원도 크지 않지만,


조경 분야만이 지닌 깊이 있는 통찰력과,

새로운 분야를 두려움 없이 열어가는

유연하면서도 견고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어떤 프로젝트에서도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작지만 강한 '강소 부서'로 성장할

충분한 잠재력을 지닌 팀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같은 날,

아이유가 이렇게 묻는다면요.


"회사에서 조경부의 현실은 어떤가요?"


저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네, 지금 회사에서의 조경부 현실은
여러 여건상 솔직히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겉으로는 작아 보여도
그 안에 단단한 저력을 품은 부서,
그게 지금의 조경부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가능성을 믿습니다.
마치 오늘의 대한민국처럼요."


정치적인 이야기는 아니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은

밖으로는 주변 국가들과의 긴장,

안으로는 불안정한 사회적 상황 속에서

늘 쉽지 않은 현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국민 모두는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힘을 모아

이 상황을 하나씩 헤쳐 나가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지금의 시련이,

더 단단한 미래를 만드는 밑거름이 되리라

서로를 굳게 믿고 있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저는 조경부에도 비추어 봅니다.

비록 지금은 힘든 여건 속에 있지만,

저력과 내공을 차곡차곡 쌓아 간다면,


언젠가 모든 이의 따뜻한 시선 속에서

당당히, 그리고 찬란하게 빛날 그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 믿습니다.


대한민국이 그 길을 걸어왔듯이 말입니다.

대한민국 서울 야경 (이미지 출처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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