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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만 Mar 07. 2023

노래가 시가 되고

prolog

내 이름 뒤에 붙는 몇 가지 호칭에 의해 나는 때때로  전혀 다른 기능과 정체성을 가지는 사람으로 이미지화된다. 어떤 호칭은 제도와 관습에 의해 저절로 부여된 것이라 낯설 이유가 없지만 살아가면서 어찌어찌 얻게 된 호칭들은 타인의 입을 통해 내 뇌리에 학습이 되고 나 자신이 객관적으로 받아들여 그 옷이 자연스럽게 되기까지는 생경하거나 더러는 듣기에 간지러운 시간들을 견뎌야 한다.

그중에 가수라는 호칭과 작가라는 호칭이 후자의 경우에 속한다.  


대학시절에 멋모르고 글을 쓰는 글쟁이로 살아야겠다는 치기 어린 다짐을 하곤 했었다. 대학 문학상을 두 번 수상하고 난 이후였다. 치열한 글 쓰기도 잠시, 그 길이 얼마나 험난하고 암흑 같은 시간을 더듬어 당도해야 할 길인지를 알게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하여 작가의 꿈은 첫사랑에게 따 주고 싶었던 하늘의 별만큼이나 아득한 곳에서 반짝이는 전설 같은 것이 되었다. 그 꿈을 잊은 채 20여 년의 시간을 허둥지둥 살아가던 중, 어느 날 회사 여직원이 생일 선물로 내게 건네준 한 권의 책이 무덤덤하게 멈춰져 있던 문학적 열정의 심장을 다시 쿵쿵 뛰게 했다. 바로 김훈선생의 '라면을 끓이며'라는 책이었다.


경쟁 세상에 살아남으려 문학서보다는 자기 개발서를 탐독하고 있었던 내겐 마치 심폐소생술과도 같은 회생의 동기가 부여된 셈이었다. 질박한 부대자루 같은 표지 속에는 오랜 내 문학적 그리움을 시원하게 적셔줄 만한 탄탄하고도 걸쭉한 문장들이 득실거리며 내 심장을 쿡쿡 찔렸다. 마치 허기진 사람처럼 정신없이 이틀 만에 책을 읽고 솟구치는 열정을 다스려 이번엔 소설 대신에 수필을 쓰기 시작했다. 두어 달이 지나고 신춘문예만을 고집했던 때와는 달리 문학지에 글을 투고하여 비로소 작가라는 호칭을 얻었다. 브런치에  이미 발행한 글들은 모두 등단 이후 쓴 수필들이다.

또 하나의 생경한 호칭은 가수이다.

웬 가수?..... 사실 이 뜬금없는 호칭을 남들이 알까 두려운 것은 , 작가 이상으로 내겐  썩 자신이 없는 분야에서 얻은 호칭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오래전에 음악활동을 접은 터라 지금은 아는 이가 거의 없지만 아직도 지인들에겐 가끔씩 회자되는 호칭이다. 그래도 여전히 음악은 늘  일정한 분량으로 내 삶에 녹아있다. 매일 조금씩은 연주를 하고 가끔은 노래를 부르기도 하지만 지금은 대중음악이 아니라 찬송가나 CCM을 늘 부르기 때문에 공연 같은 음악활동을 하지 않으니  가수라는 호칭은 이젠 무의미하다.


대학 때부터 음악동호회 활동과 공연 활동을 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지방 가요제에 떠밀려 참여하게 되었다.  예심을 거쳐 TV로 녹화 중계되었던 결선까지 올라갔고 운 좋게도 대상과 우수상 2명에게 주어지는 연예인협회 회원 자격을 받아 일명 가수가 된 것이다. 그 이후로 공연에 참여하기도 하였고 기타 치며 노래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으나  음반 발매도 하지 않았고 가수로서의 활동은 딱 그 정도뿐이었다.

요즘 오디션 프로그램에 도전하는 예비 가수들의 기량을 보면 나는 그저 음악 좋아하는 동네아저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님을 절감한다. 그러니 가수라는 내 호칭을 브런치에 공개하기는 하였으나 얼른 잊힐 호칭이기를 바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연들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은 이유는 앞으로 내가 쓸 글들에 대한 배경 설명쯤으로 생각해 두는 게 좋겠다. 이미 발행한 글에도 몇 편 음악에 관한 글이 있지만 내 삶에 깃들어 있던 노래나 음악에 투영된 삶의 냄새와 기억에 관하여 언젠가 글을 써 보리라 맘먹고 있었던 까닭이다.

노래가 시가 되고 시가 노래가 되는 아름다운 정서와 추억을 담아 하나의 브런치북을 엮어 보고자 한다.


상단이미지 출처-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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