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시간 낭비의 미학

by 루시엘다

내 mbti는 estj다. 엠비티아이가 나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생산성과 효율을 중시하는 성격이다. 그리고 시간이 낭비되는 것을 싫어한다. 쓸데없는 것에 시간을 소비하거나 의미 없이 보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러한 성격적 특징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요즘 MZ들도 시간낭비나 쓸데없는 형식을 싫어하기에 회식이나 눈치 보기식 야근, 인사치레 등등에 응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어른이 되고 점차 기성세대 쪽이 되어가는 나는 어린 시절보다 더 쓸데없는 데 돈과 시간을 쓰는 것을 싫어하게 됐다. 그것이 어른의 의무이자 당연한 덕목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하지만 얼마 전, 집을 떠나 친정으로 친캉스를 며칠간 오게 되어 할 일이 없는 환경에 던져지게 됐다. 그런데 이게 웬일? 평소 집에서 루틴처럼 하던 일들이 사라지니 자연스레 평소 쓸데없다고 생각되었던 일들에 관심이 갔다.

나에게 있는 건 핸드폰 하나뿐이고,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유머글이나 인터넷 기사를 읽는 것에도 신물이 나자 예전에 심심풀이로 하던 폰 게임이 떠올랐다. 가끔 손맛(?)이 그리워 생각나던 게임인데 바로 캔디크러시다. Zoo keeper나 테트리스, 헥사게임처럼 나는 짝 맞추기 게임을 유독 좋아했다.

너무 할 게 없어서 시작한 폰 게임에 나는 짧은 시간이지만 아주 단기간에 중독됐다. 그간 멀리하던 도파민이 채워지는 느낌이었고, 시간 가는 걸 모를 정도로 재미가 있었다.

아, 맞다. 시간 낭비의 즐거움이 이렇게 즐거운 거였지? 하는 생각과 함께 이건 시간 낭비가 아니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손과 뇌와 시각의 콜라보를 통한 치매 예방 운동이었으며, 국가가 유일하게 허락한 마약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가끔은 이런 낭비적인 시간을 즐겨야겠다. 물론 일상생활에 방해가 되지 않는 정도로. 어쩌면 나는 곧 게임 중독에 대항하지 못하는 내 모습에 신물을 느껴 게임을 삭제할지도 모른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으니까.

그전까지는 단 걸 좋아하지 않는 나도 가끔 초콜릿을 하나씩 집어먹는 것처럼 낭비에서 오는 활력을 즐겨야겠다. 가끔 먹는 정크푸드에서 느껴지는 혀끝의 도파민과 같은 정크타임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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