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도저히 사랑하기 힘든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노력해 본 적은 있는가? 나는 전자와 후자에 모두 해당된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쉽지만, 아무리 털어봐도 사랑할만한 구석이 없는 이를 사랑하는 것은 난제 중 난제다.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 것이다. 사랑할 수 없는 이는 사랑하지 않은 채로 두면 되지 왜 굳이 사랑하고자 애쓰느냐고. 이유는 간단하다. 하나님께서 내게 자꾸 그것을 하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는 심플한 정답에 비해 정답을 이뤄가는 과정은 전혀 심플하지 않다는 거다. 이를 위해 나는 유튜브에서 이웃 사랑에 대한 설교를 찾아 듣기도 하고, 성경 속에서 타인을 사랑하는 방법을 찾아보기도 했다.
아무리 좋다는 의사를 찾아다녀도 고질병을 고칠 수 없는 불치병 환자처럼 살던 어느 날, 한 설교를 통해 누군가를 사랑하려면 나를 먼저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듣게 됐다. 어찌 보면 뻔한 말일 수도 있고, 분명 내게도 금시초문은 아니었을 거다. 그런데 그날만은 내게 이 말이 특별하게 내 마음을 울렸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의 나는 자존감이 참 낮았다. 그래서 남과 끊임없이 비교했고, 내가 조금이라도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을 참지 못했다. 자존감은 낮은데, 욕심도 많았던 거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뒤, 하나님은 내 낮은 자존감을 회복시켜 주셨고, 세상의 어떤 가치 있는 것들보다 '하나님의 사랑' 딱 하나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는 자족함을 주셨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첫사랑의 효력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점차 감사와 열정을 잃어버리고 적당히 종교적으로 열심을 내며,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영의 양식으로 근근이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런 시간을 보내다 보면 자연스레 옛사람의 자아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자꾸 옛사람의 관습대로, 옛사람이 생각하던 통로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와 하나님의 첫사랑의 그 마음, 자기 아들을 잠시 버리시기까지 나를 아끼신 그 사랑의 회복일 것이다. 지금껏 인생을 살며 어떤 실수를 하고, 잘못된 선택을 했을지라도 나는 하나님께 용납받았다. 하나님께 용납받았다는 사실을 분명 알고 있음에도 그림의 떡처럼 남의 일인 양 쳐다만 보게 되는 것이 참 부끄럽다.
소설 '운수 좋은 날'의 유명한 대사가 떠오른다.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언제까지 눈앞에 둔 뜨끈뜨끈한 설렁탕을 입맛 다시며 쳐다만 볼 것인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용납과 사랑은 운수 좋은 날의 설렁탕 한 그릇도, 자린고비 설화 속 굴비도 아니다. 자이언티의 노래 '꺼내먹어요' 속 아침 사과처럼 매일 아침 내가 직접 취해야 할 나의 것이다.
거짓 영들이 매일 내게 뿌려놓는 거짓말과 가라지에 속지 말자. 나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하나님이 것이고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자녀이며, 이 사실은 변할 수 없다. 가치 없는 것에 가치를 두며 남과 비교하지 말고, 하늘의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며 오늘도 주님의 사랑 안에 흠뻑 젖어 살 수 있기를 기도로써 간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