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데리버거와 대~한민국!

by 루시엘다

오늘은 2025년의 마지막 날이다. 올 한 해를 반추하는 글을 써보려고 앉았다가 (사실은 뭔가 찌끄려보려고 자리에 앉아 글 쓸 거리를 찾다가) 유튜브에서 2000년대 초반의 음악을 듣게 됐다.

너 참 잘 만났다. 오늘은 이천 년대 초반의 기억들을 더듬어보자. 바야흐로 2002년은 내가 중학생이던 시절이다. 더불어 한국인에게는 잊을 수 없는 때이다. 2002년은 한국을 온통 'Be the reds'로 물들였던 월드컵의 해였기 때문이다.

당시 내가 살던 지역의 월드컵 경기장에서 경기를 보다가 햇볕이 너무 따가워 앉아 있을 수 없던 우리는 무작정 경기장 밖으로 나왔다. 지금이야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트럭 위에서 웃통을 벗고 응원전을 벌이는 (아마도 대학생이었을) 아저씨들의 모습과 '대~한민국'을 외치며 길거리 응원을 하는 대중들의 모습은 낯선 모습이 아니었다.

낯설진 않았지만 당시에도 진풍경이다 싶었던 모습들을 뒤로하고, 우리는 롯데리아로 향했다. 롯데리아에 가면 경기도 볼 수 있었고, 맛있는 데리버거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소화기관의 기능이 노화되어 밀가루 음식을 자제하려 하지만, 당시 나에게 데리버거는 소울푸드였다.

롯데리아에 달려 있던 조그마한 텔레비전에서는 어떤 나라와의 경기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승부차기로 결국 우리가 우승했던 경기가 생중계되고 있었다. 입으로는 햄버거를 씹으랴, 눈으로는 경기를 한 장면이라도 놓치랴 우리는 멀티 플레이를 펼쳤다.

승부차기에서 상대방의 골을 멋지게 막아낸 뒤, 대한민국이 승리를 거머쥐게 되자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은 그야말로 롯데리아가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고, 발을 구르며 옆 사람과 껴안고 난리도 아니었던 기억이 난다.

중학생 시절에 2002년을 맞을 수 있었다는 건 지금 생각해도 행운이었지 싶다. 세대차이, 지역감정, 좌우파 가릴 것 없이 온 나라가 한마음 한뜻으로 매일을 축제 분위기에서 보냈던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그 지역, 그 장소를 지나가면 그때의 기억이 자동재생 되는 걸 보면 내 인생에서 정말 강력했던 기억이었던 게 확실하다. 그래서인지 꼭 그 지역 롯데리아가 아니더라도 롯데리아에 가면 고향에 온 것만 같은 편안함이 느껴진다.

내 어린 시절의 소중한 추억이 담겨 있기 때문일까? 때론 햄버거 맛이 조금 실망스럽더라도, 마치 귀소본능과 같이 다시 찾게 되는 매력이 있다. 아직도 연이 닿고 있는 그 시절 친구와 함께 조만간 롯데리아를 찾아야겠다.

입맛이 많이 변한 나는 데리버거보다도 클래식 치즈버거나 신메뉴 근처를 얼쩡거리지만, 조만간 친구를 만나면 기념비적 의미를 담아 그때의 우리를 추억하는 세리머니를 해봐야겠다.

우리의 드레스코드는 반드시 'Be the reds'를 떠올리게 하는 쨍한 빨간색일 것이고, 롯데리아에 가서 수다를 떨며 데리버거 세트를 야무지게 먹은 뒤 스티커 사진은 사라졌으니 아쉬운 대로 인생네컷이라도 찍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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