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크라운베이커리 케이크와 아주 오래된 크리스마스

by 루시엘다

겨울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계절이다. 크리스마스나 연말의 분위기는 내 어린 시절과 많이 다르지만, 아직도 연말이 되면 괜한 설렘이 찾아온다.

소복하게 쌓인 함박눈은 너무나 쉽게 나를 어린 시절로 되돌려 놓는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산타 할아버지(사실은 엄마, 아빠)가 내 머리맡에 두고 갈 선물을 기다리던 그 설렘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설렘은 설렘을 낳는다. 내일 내 머리맡에 있을 선물을 기다리는 것은 정말이지 상상만 해도 발이 굴러지는 기쁜 일이었다.

어쩌면 겨울, 크리스마스는 나를 어린 시절로 되돌려 놓기에 설레는 게 아닐까? 어린 시절을 교회 친구들과 함께 보낸 나는 24일 밤 크리스마스이브 행사를 마친 뒤 교회에서 밤새 놀며 예수님의 탄생이 아닌 우리들의 축제를 기뻐했다.

생뚱맞지만 동물 옷을 입고 와서 야밤에 친구들과 동네 한 바퀴를 산책하기도 하고, 재미있는 영화를 함께 보며 명절에 시골집에서 특선영화를 보는 듯한 바이브를 즐기기도 했다.

추억 속 인물들은 누구나 그렇듯 아름답게 남아있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은 경조사가 있을 때만 뜨문뜨문 연락하거나 연락마저 끊긴 친구들이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아주 고맙게도 연도 끊기지 않고, 1년에 두세 번쯤은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있으니 바로 내 사촌언니다.

초등학생 시절 딱 한번, 겨울방학을 맞아 사촌언니의 집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하얀 눈이 오던 그날 밤, 우리는 크라운 베이커리에 들러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샀고 사은품으로 함께 준 CD를 받아왔다. 아주 허접한 케이크 관련 게임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게임을 하며 언니와 시간을 보냈던 일은 아직도 생생하다. 별 것도 아니고, 심히 허접했던 그 게임 CD는 왜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선명할까?

크리스마스에는 기독교인이든 비기독교인이든 누구나 케이크를 찾는다. 지금 시대 같으면 시대착오적이라고 욕먹을 일이지만 예전에 오죽하면 여자의 나이를 크리스마스 케이크에 비유했을까?

비록 크라운베이커리는 사라졌지만, 나는 아직도 크리스마스가 되면 으레 케이크를 구매한다. 내 아이들에게도 아름다운 크리스마스의 추억을 남겨주고 싶은 마음과 나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벌써 코앞으로 다가온 크리스마스에도 나는 적당한 케이크를 하나 사서 캐럴을 들으며 가족들과 추억 하나를 만들 것이다. 무탈했던 올해를 감사하고, 잘 자라준 아이들을 마음껏 사랑하며.

또한 다가올 새해에도 큰일이 없기를 바라며, 내년의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먹을 때에도 올해와 같은 감사의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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