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달한 음식이나 간식을 좋아하지 않지만, 이따금씩 도넛이 먹고 싶을 때가 있다. 그렇다고 자주 사 먹는 건 아니고 길을 가다가 도넛을 만나면 그 앞에서 도넛들의 자태를 찬찬히 살펴보게 된다.
도넛을 좋아하진 않지만 사실 좋아한다고 해야 하나? 내게 도넛은 엄마를 떠올리게 하는 간식이다. 보통의 한국인이라면 엄마가 해준 김치찌개나 불고기 등을 떠올리겠지만, 내 소울푸드는 엄마표 도넛과 믹서기로 만든 생크림이었다.
다른 집 엄마들은 잘 만들어주지 않던 세련된 간식을 우리 엄마는 할 줄 알았다는데서 오는 우월감이 있는 걸까? 가끔 남편에게 어린 시절 엄마가 만든 도넛이나 생크림에 대해 자랑하곤 한다.
도넛뿐만 아니라 뚝딱뚝딱 만들어 내던 엄마의 요리들은 아직도 내 기억과 혀끝에 깊이 남아있다. 엄마의 손맛은 마법 같다. 고작 밥과 간장 살짝 찍어 싸준 김밥도 산해진미 부럽지 않은 요리가 된다. 그때그때 싸서 내 입에 쏙쏙 넣어주는 그 김밥에는 야무진 엄마 손의 온기가 남아있었다.
어쩌면 내 아이들도 내 손맛을 그렇게 느끼고 있을까? 내가 엄마에게 느끼는 애틋함을 이 아이들도 느끼게 될까? 내 아이가 나에게 엄마 냄새가 좋다며 품 안에 파고들 때면 나도 이제 진짜 엄마가 됐나 보다 싶다. 무슨 냄새인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히 엄마 냄새는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이젠 내게도 엄마의 향기가 난다니 뿌듯하다. 그 냄새가 역하지 않게 느껴진다는 건 왠지 엄마의 역할을 잘하고 있다는 방증처럼 느껴진다고나 할까?
집안의 막내인 나는 성인의 나이가 훌쩍 지나서도 엄마를 끌어안고 스킨십하는 것을 좋아했다.
어느새부턴가 엄마를 폭 끌어안기는 멋쩍어졌지만, 가끔은 엄마와 팔짱을 낀다.
예전엔 내가 먼저 스킨십을 했는데 이제는 엄마가 먼저 다가와 팔짱을 끼는 걸 보면 우리 엄마도 이젠 내게 기대고 싶은 나이가 됐나 보다. 아마 오래전부터 엄마는 내게 기대고 싶었을 거다.
노인과 아이는 한 끗 차이다. 둘 다 보호자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 다만 아이는 성장하고 노인은 나이 들어간다.
이젠 더 이상 엄마가 만든 도넛과 생크림을 먹을 수 없지만, 대신 엄마가 뚝배기에 만든 계란찜과 깊은 내공이 담긴 밑반찬에서 여전한 엄마의 손맛을 느낀다. 아마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면 다시 맛볼 수 없는 이 맛들이 제법 그리울 것 같다.
다행히 연세에 비해 건강하시고 큰 병이고 작은 병이고 병치레가 없으신 분이라 감사하지만, 나는 벌써부터 엄마와의 헤어짐을 조금씩 준비하고 있다. 아마 엄마도 마찬가지겠지.
엄마가 지금처럼 원하는 곳에 어디든 가실 수 있고, 드시고 싶은 것 다 드실 수 있는 지금 엄마와 즐거운 시간을 더 많이 보내고 싶다. 천국 소망을 품고 사는 우리지만, 그곳에서 누리는 기쁨과 이곳에서 누릴 수 있는 기쁨은 다를 것이다.
이제 엄마와 나는 도넛을 먹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나이가 되었지만 다음번에 엄마를 만나면 도넛집에서 가장 덜 단 도넛을 하나씩 골라서 따뜻하게 데운 우유랑 함께 먹으면서 도넛 만들던 시절 얘기를 나눠봐야겠다.
엄마가 이 땅에 살아계신 동안 엄마를 최대한 많이 즐기고, 엄마 있는 자의 여유와 기쁨을 흠뻑 누리며 살고 싶다. 어쩌면 그게 엄마를 위한 최고의 효도가 아니려나?(는 불효녀의 합리화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