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으려고 꼭꼭 숨겨둔 깊은 내면 속 미움이 사라지지 않는 건 내 고질병이다. 특히 말씀 앞에서 떠나고, 기도의 자리를 잃을 때 더 병환은 더 깊어진다. 치아 교정을 해 본 사람은 안다. 유지 교정 장치를 단 하루만 떼더라도 어느새 이가 원래의 자리로 틀어진다는 것을 말이다.
있어야 할 자리로 돌려놓으면 옳고 그름에 상관없이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다. 이 정도쯤이야 하는 생각은 통하지 않는다 '겨우 이 정도'라고 생각했던 정도는 사실은 나비효과처럼 큰 차이를 만들어 결국 정도에서 벗어나게 한다.
초등학생 때 책상에 선을 그어놓고 짝꿍의 팔이나 학용품이 조금만 넘어와도 '안 돼 선 넘지 마!' 했던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세상것들에 그만큼의 자리도 내어주어서는 안 된다.
물론 육신은 아직 세상에 속해 살고 있기 때문에 육신적인 것들은 모두 모르쇠 하고 살 수는 없지만, 최소한 선을 넘었을 때는 선 넘은 줄은 알아야 한다. 그것을 알아차리는 방법은 늘 한결같다. 하나님 앞에 서고, 말씀을 거울삼아 나를 비춰보는 것이다.
하나님 제가 오늘도 이렇게 넘어졌구요, 그래서 여기 이렇게 상처가 났어요. 면목없지만 이번에도 또 고쳐주세요.
캔디와 같은 주인공을 본 적 있는가?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캐릭터지만, 예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 나도 그가 될 수 있다. 외롭고 슬플 때 울지 않는 캔디와는 다르게 울 수는 있지만, 신기하게도 위로부터 내려오는 힘이 있다. 더러운 먼지를 털어 일으켜 주시고,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무릎에 힘을 불어넣어 주시는 그 힘 말이다.
나는 그간 너무 쉽게 피해의식에 빠져 나는 피해자이고 타인은 가해자라고 단정 짓곤 했다. 늘 그렇게 사단에게 틈을 내어준다. 나야말로 회개해야 하고 용서받아야 할 사람이다.
몇 년 전 유행했던 프로듀스 101처럼 회개듀스 101이 있다면 단연코 내가 1등이었을 것이다. 나도 용납받은 자임을 기억하고 연약한 자를 내 모습처럼 긍휼히 여기자.
어제 삼시 세끼를 든든히 챙겨 먹었다고 해서 오늘 먹어야 할 끼니를 거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제의 허기는 어제의 음식들이 채워주었고, 오늘의 허기는 오늘의 음식들이 채워주어야 한다. 허기는 적립식으로 저장할 수 없듯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자 하는 노력도 그렇다. 지나간 어제는 그야말로 과거일 뿐 오늘은 오늘의 새로운 은혜가 필요하다. 그것에 매일 목말라야 하고, 허기져야 한다.
먹어봐야 목마르고 허기지는 세상 것들을 동경하는 고질적인 본성은 옛사람의 것이다. 오늘도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며 진짜 가치 있는 것들을 바라보며 승리하기 원한다.
정답을 찾는 것은 쉽다. 이론은 늘 100점이다. 하지만 정답대로 사는 것은 어렵다. 당연하다. 인간의 의지가 아무리 굳세다한들 스스로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오는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고, 생활신앙을 이어갈 때에야만 작은 발걸음을 조금씩 뗄 수 있다. 마음으로만 원하지 말고 믿음과 순종의 발걸음을 떼어 먼 훗날 주님 앞에 나아갈 때, 충성된 종, 넘어져도 다시 십자가 붙들고 일어났던 기특한 딸로 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