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부터 내 손으로 앞머리를 자르던 나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쯤 앞머리를 보다 본격적으로 자르기 위해 숱가위를 샀다. 2000-3000원대의 가격으로 생각보다 저렴했던 그 가위는 희한하게도 처음 산 날부터 날이 무뎠었다. 뭉툭한 어린이 안전가위도 아닌데 말이다.
불량이었는지 원래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사용할 때마다 머리카락이 잘리기는커녕 쥐어 뜯기기기 일쑤여서 답답하고 짜증이 나곤 했다. 그렇게 그 가위는 초고속 '처박템'이 되었다.
인생을 어느 정도 살다 보니 인생에서 답답한 순간은 이렇게 잘 들지 않는 가위를 쓸 때뿐만이 아니었다. 인생에서 가장 답답했던 기억은 중학교 때부터 친했던 친구와 별 것 아닌 이유로 인연을 끊었던 때다.
대학 시절까지 친했던 우리 5총사는 서로 다른 대학에 갔지만, 종종 만나 술잔을 기울이기도 하고 이성 문제나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줄곧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A가 나와 친구 B가 약속에 늦었다는 이유로 과하게 화를 냈다. 평소 나와 친구 B는 자주 늦는 것도 아니었고, 일부러 늦장을 부리다 늦은 것도 아니었다. 미리 A에게 사정 설명을 한 뒤 양해도 구했는데, 학교에서 교수님께 꼭 받아야 할 서류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1시간가량 늦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유가 어찌 됐든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에 약속했던 식당 앞에 헐레벌떡 도착한 우리에게 A는 살벌하게 욕을 하며 화를 냈다. 평소에는 그런 모습을 전혀 보여준 적 없는 친구였기에 우리는 당황했다. 이유야 어쨌든 늦은 우리의 잘못이니 계속 사과했지만, 단단히 화난 A의 마음을 풀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함께 식사를 하는 내내 친구의 화를 풀어보려고 계속 노력했지만, A의 화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고 그날 이후 우리는 점차 A와 멀어지게 됐다. 5총사 중에서도 특히 우리 셋이 각별한 사이였기에 그 타격은 제법 오래갔다.
나이가 먹은 후 다행히 서로 화났던 감정도 사라지고, 오해도 어느 정도 풀린 듯했지만 A와 우리 사이엔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겨있었다. 알게 모르게 나도 B도 A에게 실수하면 또 전처럼 폭발할까 싶어 눈치를 보게 됐던 것이다.
사이가 점점 소원해지다가 어느 순간 A는 완전히 남이 되어버렸다. 학창 시절의 소중한 추억을 공유했던 친구였기에 A는 간혹 내 꿈에도 등장했다. 무의식 속에서도 친구를 잃은 슬픔, 다시 예전처럼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던 아쉬움이 그리도 사무쳤던 모양이다.
몇 년 전만 해도 B와 나는 가끔 A와 함께 했던 추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서로 드러내놓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쉬운 마음은 매한가지였던 모양이다. 그렇게 친구 A는 아픈 손가락처럼 내 기억의 한 켠에 오래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참 희한한 것이, 분명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날 그 일만 없었더라면...' 했던 마음이 도둑맞은 듯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더 이상 친구 A에 대한 그리움도, 그날에 대한 후회도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어떤 일말의 동요도 일어나지 않게 됐다. 어떤 가위질에도 뭉툭해져서 힘을 쓸 수 없어진 가위처럼.
이젠 지난 시절 친구와의 기억쯤은 아픈 기억이든 좋았던 기억이든 크게 상관없어진 무딘 어른이 된 것이다. 아픔에 대해 무뎌진다는 것은 좋은 점이라고 생각하지만, 얄궂게도 사람이 아픈 기억에 대해서만 무뎌질 순 없나 보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 별 것 아닌 것에도 배꼽 잡고 웃었던 반짝반짝한 기억은 아주 오래되어 빛바랜 사진처럼 이젠 더 이상 예전처럼 빛나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다른 어른들에 비해 그 끈을 오래 잡고 있었던 걸까?
내 마음이 날이 뭉툭한 가위 같아졌다는 사실은 씁쓸한 한편, 안도감도 동반되었다.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알 수 없지만 내 마음이 어린 시절보다 단단해졌다는 점 하나는 확실하다.
친구들과의 우정이나 애정 같은 것들을 중요하게 여기던 시절과 한참 멀어진 지금, 내 목표는 어떤 일에도 예민하게 날을 세우지 않는 어른이 되는 것이다. 날이 잔뜩 선 가위보다 무서운 것은 날카로운 가위처럼 서슬 퍼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타인의 아픔에 대해서는 세심하고 갈등에 있어서는 부드럽게 대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더 욕심을 내보자면, 타인의 실수는 덮어주고 내 실수에 대해서는 빠르게 인정하고 고개 숙일 줄 아는 진짜 어른이 되는 것이 내 작은 소망이다. 지난 유행가 가사처럼 '나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막대하는' 어른은 정말이지 최악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