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스포츠몬스터 한 번 꼭 가보고 싶은데 말이죠
아 저 그때 상하이 가는데...
요가 원데이클래스가 끝나고, 다음 모임으로 스포츠 몬스터를 가자는 얘기가 나왔다. 안 그래도 요즘 핫해 보여서 한 번 가보고 싶었는데. 일정을 맞추고 보니 새해맞이 상하이 여행을 가는 날 간다고 했다. 이미 비행기표를 끊어둔 터라 "시차도 거의 없으니 영상통화라도 해줘요"라는 말로 아쉬움을 달랬다.
팬데믹이 끝나가던 2022년 말, 친구의 갑작스러운 제안으로 오사카에서 새해를 맞이했다. 도톤보리에서 카운트다운을 하고 강에 뛰어드는 일종의 새해 행사를 보려고 했는데, 팬데믹 이후 첫 새해 행사라 경찰의 삼엄한 통제 때문에 도톤보리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의 허무함이란. 그래도 외국에서 새해를 보내는 경험이 꽤 좋았던지라, 가능하다면 매년 새해를 해외에서 보내보자고 마음먹었다.
미리 계획을 거의 안 하는 P이다 보니, 새해 성수기의 비행기표는 평소보다 2,3배 올라있었고, 방콕과 홍콩, 하노이 등 그나마 50만 원 이하로 갈 수 있는 곳을 후보에 두고 고민하고 있었다. 사실 중국이 가장 저렴해서 후보군에 있었는데, 비자를 따로 받아야 해 조금 주저하고 있던 중이었다. 중국은 차라리 경유를 해서 가보자.
점심시간이나 라운지에 모일 때면 매번 새해 여행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 상하이를 다녀온 디자인팀의 주디가 비자 저렴하게 받는 방법과 가볼 만한 곳, 좋았던 곳 등 상하이 여행 정보를 들려주며 추천의 말을 전했다. 중국은 여행 정보가 많이 없고 부정적인 선입견이 강한 곳이긴 했지만, 안 그래도 여름에 대만을 가며 경유 여행을 한터라 오히려 생각보다 좋았던 기억을 갖고 있던 중이었다.
아시아나항공 비행기에 비자가격까지 해도 40만 원이 안 되는 가격. 게다가 함께 가는 테마파크 매니아인 친구가 은근히 상하이 디즈니랜드를 가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렇게 새해가 한 달 남은 12월 초. 2023년의 새해 여행지로 상하이를 선택하게 됐다.
12월 29일 아침. 생애 처음 받은 비자를 들고 새벽 버스를 타고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다들 연말맞이 여행을 가는지 공항은 수많은 사람들로 번잡했다. 그렇게 2시간 정도의 짧은 비행을 마치고 도착한 상하이 푸동 공항. 몇 안 되는 유튜브에서 봤듯이 상하이의 하늘은 잿빛으로 뿌옇기만 했다.
첫날의 일정은 시내 여행.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저렴한 숙소를 예약한 터라 숙소 체크인을 마치고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 향했다. 점심으로 유튜브에서 알게 된 파기름국수를 먹고 무시무시한 이름인 신천지를 구경했다. 저녁은 미슐랭 식당에서 베이징 덕을 먹고 마시청 서커스를 관람했다. 서커스는 TV에서만 봤는데, 저렴한 가격에 커다란 공연장에서 볼 수 있는, 중국이기에 가능한 코스였다.
중국은 보통 여행 가면 쓰는 구글지도가 먹통이라 길 찾기도 어렵고, 구글리뷰도 볼 수 없어 어딘가 찾아가기에 어려움이 많다. 영어 안내판이나 메뉴판도 없어서 "물에 빠진 돼지", "빨간 소와 돼지" 같이 번역되는 엉터리 구글번역기에 의지해 메뉴를 시키기도 쉽지 않았다. 근데 그게 재밌었다. 마치 과거에 종이지도 들고 여행 다녔던 탐험가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둘째 날은 하루 종일 디즈니랜드에서 보내고, 셋째 날은 대망의 새해 카운트다운 날이었다. 팬데믹 이전에는 화려한 야경에 폭죽이 터졌다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호텔 리셉션에 물어보니, 중국 SNS 웨이보를 보여주며 새해 행사가 없다고 안내해 주었다. 새해 행사를 보려고 상하이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비싼 호텔방도 예약했는데, 허무함에 힘이 쭉 빠질 뿐이었다.
그래도 오후에 찾아간 상하이 예원이 새해를 맞아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었다. 청룡의 해라 청룡과 해저컨셉으로 꾸며두었는데 천장에 수백 마리 금붕어가 떼를 지어 이동하는 모습이 특히나 기억에 남는다. 물론 새해 전날 나들이온 상하이 시민들과 여행객들이 뒤엉켜 매우 번잡했지만.
2023년 마지막 식사로 훠궈를 골랐다. 원래도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데, 중국 현지의 훠궈는 얼마나 다를지 기대하며 중국에서는 매우 비싼 가격인 10만 원이 넘는 돈을 들였다. 생각보다 크게 다르지 않고 평범한 맛에 실망했지만, 와이탄과 푸동 야경이 아름다워 추운 날씨였음에도 긴 시간을 밖에서 보내고 숙소로 돌아왔다.
동방명주가 내려다 보이는 호텔. 혹시나 싶어 새해로 넘어가는 시간에 맞춰 밖을 내다봤지만, 이번에도 꽝. 두 번째로 보내는 해외에서의 새해인데, 오사카에 이어 상하이에서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TV에서 흘러나오는 중국 뉴스 아나운서가 외치는 카운트다운 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호텔방에서 캔맥주를 기울이며 2024년 새해를 맞이했다.
남은 이틀은 수향마을 주가각 여행과 기념품 쇼핑을 하며 시간을 보냈고, 아름다운 와이탄 야경과 너무 맛있던 중국의 양꼬치와 칭따오 생맥주, 샤오롱바오와 카오위를 뒤로 한채 김포공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영상통화도 하지 않은 스포츠 몬스터팀을 만나 상하이 선물을 전해주고 그들의 좌충우돌 수원 영통 설중 탐험기를 들었다. 상하이도, 서울도, 모두 다사다난한 연말, 새해가 아니었나.
다음에는 꼭 저 데리고 스포츠 몬스터 가요. 알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