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록 여섯 번째 이야기

필승!! 교환소대장입니다~!!

by 행복한일상사령관

11월 27일,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과 경기도 포천시 관인면 경계에 위치한 제6보병사단 정보통신 대대로 보직 및 전입신고를 하였다.

"필승!! 신고합니다. 소위 박민주는 2006년 11월 27일부로, 제6보병사단 정보통신대대 교환소대장으로 보직을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앞선 사단 참모장님께는 전입신고를 대대에서는 대대장님께 보직신고를 하였다.


그렇게 11월 말..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기 시작할 무렵, 나의 철원에서의 군생활이 시작되었다. 정보통신학교에서 수료 전 "소대장지휘실습"이라는 1주일간의 기간 동안 한번 다녀왔던 곳이었지만, 당시에는 여름의 끝자락이었는데 어느새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겨울이 시작되었다. 소대장 지휘실습 때 나를 유난히 괴롭혔던 육사 61기 1년 선배(사실상 나이는 또래?, 나는 빠른 83년생으로 82년생과 학교를 같이 다녔다.)는 내가 전입 오기 전, 정보통신학교장님의 전속부관으로 선발되어 대전 자운대로 전출 간 뒤였다. 사실 조금 아쉽기도 했다. 소대장 지휘실습 기간에 워낙에 스파르타식으로 괴롭히기도 했고, 못살게 굴길래 함께 근무하는 동안 내편.. 만들기 한다고 주변 친한 동기들에게 호언장담한 터였는데.. 도전도 해보기도 전에 포기해야만 했다.


당시에 이선배는 내가 당직사관 체험근무를 서는 동안 대대 당직사령근무였는데 새벽타임에 수시에 우리 중대(대대랑 1Km 이상 떨어져 있는 독립중대로 사단 사령부 영내에 위치)에 순찰을 와서 브리핑보고를 받았다.


그래서 이 선배 때문에 날을 꼬박 새우며, 다음 날 대대장님께 하는 아침 상황보고는 대대 당직사령들이 하는데 중대 당직사관이 대대의 당직사령들 수준으로 멋들어지게 아침 브리핑 임무는 마칠 수 있었다. 그래도 까칠한 말투와 다른 선배들과는 달리 불친절함에 오기가 생겨.. 당시 육사 61기인 나의 오래된 친구(초, 중, 고등학교 동창이자 나의 첫사랑^^/ 이 친구로 여군의 길을 선택했을 수도 있다. 이 친구와의 이야기는 고군반 교육기간에 다시 하겠다.)에게 S.O.S를 청하기도 했다. 지휘실습 마지막날까지도 까칠 기조를 유지하길래, 나중에 가서 '두고 보자'했는다. 아쉬웠다. 후에 나머지 05 군번 선배(학군, 학사)들과 친구처럼 너무 잘 지내니 한번 넷이 모여 본 적이 있었는데 혼자만 어색해했던 기억이..ㅎㅎㅎ 결국 내가 이긴 걸로~^^


전입과 동시에 철원의 매서운 칼바람과 함께 한 나.. 사실 여군 선발에 최종합격하고 육군 3 사관학교 입교 전 가장 먼저 한 일은 만성비염으로 고생했던 터라 비염수술부터 했다. 수술 후 계속 코피가 나서 콧구멍을 솜으로 틀어막고 갈아주고를 5일이나 했는데... 나의 수술효과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임관 전 학교에서 5사단 열쇠부대로 병체험을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침구류를 터는 순간... 비염이 다시 도져서 재채기가 쉼 없이 나왔다. 다시 도진 비염증상은 전입 후 첫 당직 근무일 때 다시 한번 나를 괴롭혔다.


내가 보직받은 정보통신대대 운용중대는 제6보병사단 사령부 영내에 위치하고 있는 독립중대로, 순찰코스가 사령부 한 바퀴였다. 당연히 들려야 하는 순찰코스가 5개소 이상이었고, 시간은 내 걸음으로 40분 정도 걸렸다. 당시 당직병인 중대 행정병 친구와 함께 순찰을 도는데.. 순찰을 도는 내내 재채기가 끊이지 않았다. 얼마나 심하게 재채기를 했는지.. 당직병이 수시로 '소대장님~! 괜찮으십니까?' 하며 연신 나의 상태를 확인했다. 순찰을 돌고 오니 당시 전투모와 속눈썹에 나의 침방울들이 고드름으로 변해있었다. 흔히들 영하 20도 날씨라 하면 믿지를 않는데.. 실제로 영하 15도 이상에 바람 부니 체감온도는 그 이상이었다. 병사들 말로는 밖에서 오줌 누면 바로 언다는데.. 실제로 보지는 못했고.. 보여달라고 할 수는 없으니 무용담처럼 전해 듣기만 했다. ㅎ


극한의 순찰을 돌고 오면 기다리던 시간이 있었다. 바로 라면 취식 타임이다. 일명 뽀글이 타임.. 중대에 남아있던 당직부사관(병-선임)이 당직사관(나)과 당직병(병-후임)이 순찰을 다녀올 시간에 딱 맞춰서 미리 준비를 해두었다. 자기들은 라면봉지에 뜨거운 물을 바로 부어 먹었지만.. 나는 어디서 구했는지 예쁜 사기그릇에다가 정성스레 담아줬던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 후에 친해진 대대에 1년 남군선배들에게 물어보니, '우리는 그런 것 없다! 너한테만 특별히 애들이 해준 것 같다!' 하면서 부러워했다.

당직 근무 전 '오늘도 무사히'


내가 속한 운용중대에는 여군이 한 번도 근무한 적이 없어서 여자 화장실조차 없었다. 내가 지휘실습을 다녀간 이후에 행정보급관님이 특별히 아이들 사용하는 화장실 맨 끝 칸에 시건장치와 칸막이 높이를 올려줘서 나름의 화장실을 마련해 주셨다. 하지만 공대에 초, 중, 고 남녀공학만 나온 나였지만, 나의 불편함 보다 중대원들의 불편함을 먼저 생각해서 늘 화장실은 아이들이 작업과 출동으로 중대에 없는 시간이나 대대에 있는 여군 전용 화장실을 이용했다.


사실 내가 받아야 하는 보직은 가설소대장이었는데, 늘 선로 복구작업으로 외부 출동을 해야 함을 대대장님이 고려해서 보직을 교환소대장으로 변경해 주셨다. 처음에는 교환쉘터에서만 있는 정적인 근무하는 환경보다는 외부로 4/5t 박스카를 타고 늘 병력들과 출동하는 동적인 가설소대장이 하고 싶었으나, 철원 첫 신고날.. 매서운 칼바람을 직접 경험하고는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아마 출동 내내 재채기를 하느라..'작업도 안되고.. 전쟁 시에도 재채기로 적군에게 바로 발각되지 않았을까?' 하는 현실적인 생각을 해본다.


그리하여 나는 컨테이너 교환쉘터 한편에 나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고, 주로 머무는 곳이 교환대였다. 하지만 중대장님 외 장교는 나 혼자였기에 중대에서 부중대장 역할도 해야 했기에 교환대-행정반등을 수시로 오가며 근무했다. 집에서 가져온 자전거로 언덕길을 오르내리며 오후에는 대대에서 있는 일일결산회의에 참석하는 것도 주요 일과 중 하나였다. 매주 금요일에는 대대에 전 간부들이 모여 주간결산회의를 진행하고, 주간결산회의 전에는 간부별 연구강의 과제도 주어져서 함께 토론하는 시간도 갖았다. 나는 홀로 외로이 지내다 대대에 회의 시간에는 그래도 장교 선배들도 있고(동기는 없었다. 05 군번 선배들이 3명 있었다), 여군 부사관들도 2명이 있어서 늘 대대회의시간을 기다렸다. 한 명은 전산실에서 근무하는 중사였고, 또 다른 한 명은 나보다 한 달 정도 늦게 전입 온 06 군번의 하사였다. 후에 이 하사와는 1년 뒤 대대 인사과장-인사담당관으로 다시 만나 동거동락하며 잘 지냈다.


전입 간 지 한 달 즈음 지났을 때부터 전산실에서 근무하는 여군 중사로 부터 자꾸 인근 부대에 장교들이 전산실로 나에 대한 문의를 한다고 장난반 진담반처럼 얘기를 해주었다. 교환대 근무자인 우리 소대원들도 가끔 교환대로 전화해서 '너희 소대장 어떠냐?' 하면서 물어보는 정신 빠진 남군들 이야기를 가끔 듣기는 했다. 하기야 강원도 철원에 동송베가스(당시 철원의 시내 / 동송읍)를 나가면 죄다 남자 군인들인데 가뭄에 콩 나듯.. 잔뜩 운동복으로 멋 낸 새내기 여군 소대장들에게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을 거다. 당시 6사단으로는 다른 병과 여군동기들 포함 5명이 전입을 왔다. 사단 사령부에 부관병과, 경리병과 와 신교대 소대장(정보병과), 정비대 소대장(병기병과) 그리고 정보통신대대 교환소대장인 나다. 나의 포지션은 사령부 영내에 있기도 하고 사실 대대의 정보통신대대장은 사단장님의 통신참모이기도 하기에.. 나는 직할대 소속이긴 하였지만 사령부에 동기들과 선배들 모임에도 껴주었던 것 같다.


당시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잘 어울려 다녀서였을까? 나를 동송시내에서 본 예하 연대의 1년 선임들이 자꾸 전산실 근무하는 여군 중사에게 나를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여러 번 했었다고 한다. 그중에서 나는 딱 2명의 선배들하고 사적으로 만남을 가졌다. 한 명은 같은 통신병과로 7 연대에서 근무하는 통신소대장(학군 44기) 임관은 06년으로 같았으나, 고군반(대위) 교육 전까지는 한해 임관이어도 월로 선/후임을 나눴던지라 선배님이라고 불렀다. 83년생인 친구였으니 좀 따져보자면 나보다 연하 같은 느낌이었다. 이 친구는 귀여운 외모에 호감형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따로 동송시내에서 저녁 먹고 그 이후에 지속적인 만남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바로 이어서 전산부사관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당시 2 연대 정보장교 (05 군번, 육사 61기)를 소개받게 됐다. 저번과는 달리 이번에는 동송을 벗어나 의정부에 위치한 영화관 태흥시네마에서 영화를 보기로 했다. 당시 함께 본 영화는 너무나도 유명한 "미녀는 괴로워"였다. 만나기 며칠 전 전화통화만 몇 번 해보고, 당시 나는 그 선배의 얼굴을 한 번도 보지는 못했었다. 내가 살고 있던 군인아파트 앞으로 나를 데리러 왔다. 당시 개인차가 있었고, 신형 아반떼였다. 아반떼 차 문이 열리자마자, '아.. 뒤뚱 거리면서 나오는 오리 같은 모습'에 첫인상에서 너무 별로였다. 전화통화만 할 때는 목소리도 낮은 중저음에 종교도 같은 천주교여서 호감이 많이 갔는데 실제로 만나니 내가 상상한 모습과는 너무 달라서 실망이 많이 됐다. 영화관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도 묻는 말에 대답만 간신히 하고 영화관 이동 간이나.. 영화를 보는 내내 이 시간이 얼른 지나가기만을 바랐던 것 같다. 그날이 12월의 마지막 날이었는데도 차 마시며 좀 더 시간을 함께하자는 선배의 말이 무색하게 급히 영화만 보고 숙소로 돌아왔다. 후에 이 선배는 프랑스로 국외연수를 갔고, 자연스럽게 그에 대한 기억이 없어질 무렵.. 사단에 교훈참모님이 대대로 교육훈련분야 점검을 오셨는데.. 네가 박민주 중위냐고 하면서, 본인이 2 연대에서 있었을 때 우리 교육장교가 자네 얘기 많이 했다고.. 그 녀석 괜찮은데 왜 안 만나봤냐고 하셨다. 집도 잠실에 유복하고, 성격도 좋고 하다면서.. 그때 당시 어린 마음에는 유난히 뚱뚱해 보여서 만나기 싫었는데 후에 어찌 알게 된 그분의 모습은 살도 쏙 빠지고 멋진 모습이었다. 그리고 현재 내 옆에 있는 남편의 모습이 당시의 그 선배보다 더 뒤뚱거리는 오리 같은데 말이다.ㅎㅎㅎ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다음 편에는 초임소대장의 혹한기훈련과 각종 훈련이야기를 다뤄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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