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록 다섯 번째 이야기

육군정보통신학교 '통하라'

by 행복한일상사령관

통신학교에서의 꿀 같은 시간들.. 그렇게 하루하루 가는 시간들을 붙잡고만 싶었다.

당시 각 병과학교에서는 통제된 생활 속에 자유로움이 있었다. 매과목별 첫 시간.. 선요약이라고 컴퓨터로 OX 진위형 테스트가 늘 있었다. 극우등생 모범생은 아니었지만 한 번도 과락이 나와 외출. 외박 통제를 받은 적은 없었다.


당시 부모님은 대전 둔산동에 거주했던 터라 주말 외박 시에 집이 가까워서 좋았다. 그것도 당시 만나던 대학선배 오빠가 늘 데리러 오고 데려다주고 했다. 투스카니 스포츠카를 가지고 다녔던 2년 선배 오빠는 나를 여군으로 만들어 준 일등 공신이기도 하다. 대학에서 멀티미디어학을 전공했는데 그림과 웹디자인인 쪽에 재능과 소질이 있던 오빠가 실습을 늘 함께하며.. 나의 A+성적에 관여한 공이 매우 컸다.

당시 싸이월드에 남아있는 오빠 작품들..

철원으로 보직받으면서 이별을 고하고.. 헤어지게 되었는데 선물로 받은 그림들은 지워버리기 아까워 고이고이 간직하고 있네요. 제법 말 통하는 1호 딸에게 가끔 자랑도 해봅니다.


79년생~83년생으로 구성된 나의 여군동기들은 당시 나이 24세부터 28 세까지의 꽃다운 청춘으로 늘 남자들 얘기에 밤마다 이야기 꽃을 피웠다. 함께 교육받는 학사 47기 동기나 해병대**기수 동기들도 포함이다(병과학교에서는 해병대와 함께 초군, 고군 교육을 함께 받는다)


나는 군인의 딸답게.. 군인가족으로서의 경험과 섭리들을 늘 강연하며.. 조언 아닌 조언을 한다. "군인을 만나려면 이왕이면 육군사관학교 출신을 만나야.. 고생을 안 한다!"와 같은 현실조언.. 많이 해서인지.. 내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 다들 나의 남편은 당연히 육군사관학교 출신인 줄 알았다가.. 일반출신 동기라 해서 놀란 동기들이 많았다. 하지만.. 나의 남편 스펙을 안 동기들은 '역시..' 했을 터.. 남편에 대한 얘기는 남편을 만난 1차 중대장 이야기에서 다시 낱낱이 파헤쳐 보겠다.


통신학교에서는 군인이라 하기에는 아직 여대생에 가까운 모습으로 늘 꺄르르르르~즐겁기만 했지만, 뜻하지 않게 앞집 살던 교육대대장님을 만나면서 성적에도 신경을 아니 쓸수 없었다. 기본만 해서는 영락없이 호출하셔서.. 외출. 외박 불사하고 공부하라고 다그치셨다. 하지만 뒤로 문제를 알려주신다거나 하는 그런 상도에 어긋나는 비위사실은 있을 수 없었다. 다만, 아래 부하직원에게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는지.. 특별 지도를 부탁하셨는지.. 어느 순간 소령 교육대장의 사사건건 트집이 시작되었다~;;


'아.. 이웃집 아저씨.. 긁어 부스럼 만드셨네요.' 당시 교육대장이 대대장님과 업무스타일이 안 맞았는지.. 그런 부탁을 들어서인지.. 사람심리가 누가 하라고 해서 하면 더욱 하기 싫듯이.. 나에게 적대적으로 못되게 굴었다.


당시 모태신앙인 나는 자운대성당을 다니면서 엄마께 받은 예쁜 성물인 묵주반지와 묵주팔찌를 차고 다녔는데.. 패션 아이템으로 치부하고 벌점부여하고 사사건건 지적하며.. 눈 시뻘겋게 뜨고 트집잡기에 바쁘셨다..


모든 역경과 어려움 속에서 병과학교 수료가 코앞인 마지막 주말 외박.. 우리는 같은 6 훈육대 출신 동기와 5중대 동기 2명과 함께 마지막 외박은 대전 시내에서 보내기로 했다.


우리는 나의 진두지휘아래(대전은 내 바운더리이니깐~^^)

대전 은행동에서 사주카페 방문

당시 나를 보시곤 대령까지 문제없다 하시던.. 그 엉터리방터리 아주머니.. 찾고 싶습니다~!!ㅋ 그래도 당시에 기분이가 좋았으므로 쿨하게 봐드립니다~^^

대령이 아닌 대위였나 보다..ㅎ

상큼 발랄 귀염 뽀짝 여군 51기 정보통신.전산 예쁜이들

이 날 은행동 한복판에 정복을 입고 거리를 누리던 우리들은 가히 그 당당한 발걸음과 어깨 뽕솟음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각 자대배정을 임관 전 받은 터라.. 3군단 현리(우리 모임 중 막내)와 6사단 철원(나)으로 배정받은 두 명에게 쿨하게 전투화 한족씩을 선물로 준 고마운 동기들~♡싸랑한다.

바꿀까? 에 모두 묵묵부답이었지만..ㅎㅎㅎㅎㅎ


우리 각자의 부대에서 모두 잘~"통하라"하자~!!

파이팅~♡

수업중..이러고 놀았다. ㅋ 사진상 왼쪽은 나, 가운데 동기는 현역복무(소령), 오른쪽은 여군무원으로 근무중이다.

함께 여서 행복했던 추억은 뒤로하고.. 이제 홀로 소대장으로서의 그 무게감을 견뎌내야 했던 우리들.. 그때의 열정 가득했던 내가 그립다.


병과학교에서는 성적은 "상"을 받고.. 상장이 아니라 교육성적 "상"이다. 준수하게 시작했다. 총 77명의 동기 중에서 20등으로 수료를 했다. 이 영광은 당시 교육대대장님과 함께..ㅋ

원래 10등도 할 수 있는 것을.. 교육대장님의 방해공작으로 무산된 것은 아닌지 합리적 의심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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