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대위진급 후 받게 되는 OAC(고등군사반) 교육 전 마지막으로 동기들과 나누는 단체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OAC교육은 선후배 장교들과 함께 교육받게 되니 그야말로 임관동기들과의 마지막 추억을 나눌 수 있는 곳이다. 지금까지도 OBC교육을 함께 받은 통신/전산 동기들과는 단톡방을 유지하며 전우애로 똘똘 뭉쳐 끈끈하게 지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에 정보통신학교에 우리 기수에는 여훈육장교(통상 2~3 기수 차이의 여군선배)가 공석으로 부재였다. ㅎㅎㅎㅎ
굳이 말하지 않아도 얼마나 일과시간 이후에 멍멍판일지는.. 각자의 상상에 맡긴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늦은 저녁 치킨 배달시켜서 개구멍으로 받다가 학교 당직사령에게 발각..
벌점 3점씩 받았던 사건.
각 생활관에 있는 텔레비전은 정해진 개인정비 시간 외에 항상 꺼두어야 하는데, 당시 유행했던 웃찾사의 미친소를 보겠노라고 우리 방이 아닌 옆방에 모여 몰래 도둑텔레비전 시청한 일.(이러한 일을 함에 있어 전 생활관 동기 4명의 합심이 필요한 지라 옆방에서 작당 모의가 이루어졌다.) 우 씨 성에 가운데 자가 "차"자인 전산동기는 나와 늘 함께 웃찾사를 본 멤버로서 현재까지도 "우차사"라 불린다.ㅎ
사실상 나는 이름순으로 2 생활관에 배정받았지만, 3 생활관에서 잠까지 한동기와 함께 자며 3 생활관에서 주로 생활했다. 나는 집에 있던 캠핑용 침낭을 이불대신 가지고 가서 동기들 침대에 수시로 다니면서 메뚜기처럼 생활했다. 상상해 보라. 자기 침대를 버젓이 두고 좁디좁은 1인용 침상에 60KG 이상 나가는 과한 체중의 소녀(?)가 늘 비집고 들어와 끼여 잤다. 가히 망나니 같은 모습..ㅎㅎㅎ
입교 첫 주에 모든 것이 설레기만 한 소녀 감성 충만할 때, 교육대 대대장님(중령) 호출이 있었다.
"똑똑"들어가도 좋습니까?라는 입에 착 붙은 군대식 용어를 발산하고 "들어와라"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안으로 들어갔다. 반갑게 맞아주시는 교육대대장님~!!
"민주니? 예전 119동 살 때 앞집 아저씨인데 생각 안 나니? 너 5학년때인가.. 지구병원에 종기수술도 아줌마가 데리고 가서 시켜줬잖니? "
그제야 예전에 엄청나게 아팠던 군 병원에서 마취도 없이 생살을 찢어서 고름을 빼고 흉터가 커다랗게 생긴 나의 상처가 떠오른다. 당시에 부모님이 안 계셔서 앞집으로 쫓아가니 나를 군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응급 수술을 시켜준 고마우신(?) 앞집 아주머니도 생각이 났다.
"왜 군인 가족 조사할 때 손을 안 들었니?" 하셨다. 당시만 해도 아버지가 군인이신 분에 대한 호구조사가 늘 따라다녔다. 바짝 얼어서 "굳이 말 안 해도 될 것 같아서 안 했습니다!" 군인처럼 대답했다. 허기야 난 군인이다. ㅎ
"안 그래도 아저씨가 민주가 맞는데.. 맞는데 하다가 너 기록카드를 보니 아버님 성함이 맞더라. 선배님 잘 계시지?" 하며 그제야 아버지에 대한 안부도 물으셨다. 그리고는 "여군이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초등학교 그 꼬마가 이제 이렇게 장성해서 여군으로 만날 줄은 몰랐네.. 근데.. 가만 보자.. 어렵게 들어와서 임관성적이 이게.. 뭐니? 앞으로는 외출외박 하지 말고 시험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으로 나갈 수 있도록 아저씨가 특별 관리 해줘야겠다. 그래야 선배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지.." 하셨다.
'아, 내 군생활 꼬였나?' 그때 내가 처음 든 생각이었다. 예전 앞집의 아저씨를 이곳에서 본 것은 가히 신기하고 즐거운 일이지만, 동기들과의 생활이 즐겁기만 한 나에게는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반가우면서도 걱정 한가득 이었던 교육대대장님과의 면담을 마치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나의 생활관으로 돌아왔다.
여기서 잠깐~!! 어떻게 초등학교 5학년때 앞집 아저씨를 12년 만에 다시 만날 수 있었을까? 그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한다. 나는 군인이기도 하지만, 군인의 딸로 학창 시절을 보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전학 가서 정착 생활을 시작한 곳은 육군, 해군(해병대), 공군 삼군 본부가 위치하고 있는 충남 계룡시의 "신도안"이라는 동네이다. 충남 계룡시라 함은 최정예 국방도시로, 현재도 현역뿐만 아니라 예비역들도 인근에 많이 거주하고 있어 우리나라 10대 세금 많이 내는 지역에 늘 이름을 올리는 지역이다.
나는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전학과 이사가 잦았는데 초3 신도안으로 이사 후에는 고등학교 3년까지 모두 그곳에서 학교를 마쳤다. 일명 삼룡이라 불린다. (용남초-용남중-용남고)
나는 아직도 전학 간 첫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초등 저학년 시절 잦은 전학으로 친구 사귀기에 적극적이었던 나는 그날도 당시 유행했던 스누피 캐릭터 연필꽂이를 새로 생긴 친구들에게 선물로 나누어 줄 생각으로 잔뜩 챙겨서 긴장되면서도 설렘 가득히 교실로 입장했다.
'나는 경기도 화성시 매송면에서 전학 온 박민주라 고해. 만나서 반가워.'라고 짧은 인사 후 자리에 앉았는데 내 앞에 한 친구가 "너는 몇 동 살아?"라고 묻는다. "응? 우리 집.. 음.. 119동 사는데.. 왜?".. 그랬더니"응.. 너희 아빠는 소령이시구나? 난 105동 살고 우리 아빠는 중령이야" 하면서 자기소개가 아닌 아빠소개를 해주는 이상한 도시.. 이상한 동네.. 이상한 교실이었다.
나는 시골학교에서 전학 온지라.. 그런 것에 빠르지 않았다. 정확히 아빠 계급이 먼지도 모르고 그냥. 무궁화 하나 라는 거.. 맞다. 사실 이 꽃은 무궁화가 아닌 배꽃이다.ㅎ
중학교 때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각 계급 진급 발표일이 되면 학교 선생님들도 모두 알고 계시고, 그날은 이상한 기운마저 감돌았다.
통상 점심시간 이후에 발표가 나는데, 형제자매들이 어찌 결과를 알았는지 중3 당시 내 친구가 중1 자기 남동생 교실로 달려가 아버지의 대령진급 소식에 얼싸안고 좋아라 했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 때는 야자가 끝나면 학교 앞 도로에 검정 관용승용차와 운전병 아저씨가 데리러 오는 친구들이 몇 명 있었다. 이 친구는 부대안 공관에 사는 일명 "장군의 딸" "장군의 아들"들이었다. 난 당시에 그런 풍경이 너무 당연하고 어색하지는 않았다. 고등학교, 대학교 즈음에는 친한 친구들 아버지들도 육군사관학교 출신들은 장군이신 분들이 몇 분 계셨어서 대학 때는 정보통신학교장을 하셨던 친구네 집 공관에 자주 놀러 왔었다. 자운대에 정보통신학교가 있으니 학교장님 공관도 자운대에 있고, 자운대 수영장도 대학 때 친구들하고 자주 놀러 다녔던 나의 고향 같은 곳이다.
그런 곳에서 초, 중, 고를 다 나와서 인지 나는 군인이라는 직업에 매력을 느꼈고, 대학 때 나의 미래에 대한 짧은 고민의 시기를 거친 뒤 나의 진로를 여군장교로 확고히 했다.
정보통신학교에서의 교육대대장이신 앞집 아저씨와의 만남과 예전 학창 시절 신도안에서의 추억을 되짚어 보았다. 앞으로 병과학교에서의 나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려줄 생각이다.
병과학교 수료 전.. 성적과의 사투.. 교육대대장님(중령)의 신임을 얻은 대신 교육대장(소령)에게 미운털이 박힌 일화 등.. 글을 쓰는 이 순간 17년 전 병과학교에서의 추억이 생생하게 필름처럼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