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록 세 번째 이야기

오만촉광의 다이아몬드

by 행복한일상사령관

유격훈련을 다녀온 이후 우리의 남은 과제는

종합평가와 견학과 같은 체험 위주의

교육이었다.

입소 후에 서서히 감량한 몸무게가

2주의 유격훈련 기간에만 3Kg 정도 빠지면서

최종 8kg 정도는 감량했다.


보기에도 딱 좋았다.

딱 맞았던 전투복 바지가 느슨해지는

그 감격의 순간과 기쁨..


하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매일 나눠주던 초코바와 증식이었던 빵과 우유!!

(군에서는 간식대신 증식이라는 표현을 썼다)


빵과 우유는 그때그때 먹었지만,

유통기한이 길었던 초코바는 하루가 무섭게 쌓여갔다


종합평가를 앞두고 체험위주의 견학수업과

이론 학과 수업, 자율학습이 주였던

임관 한 달 전..


남은 초코바를 하루에 2개씩 먹으면 무섭게 해치웠다.

굳이 그렇게 먹을 의무가 없었는데..

나의 몸무게도 증식으로 인하여

하루가 다르게 증식되어 갔다.ㅎㅎ



몸무게와 함께 문제가 생긴 곳.. 바로 치아였다.

임관을 며칠 앞두고부터 이가 욱신욱신 아프기 시작했다.

거울을 보면 육안으로 보기에도 까만 점이 어금니에 생겨있었다.


다름 아닌 "충치였다"

충치치료로 임관 후 받은 7일의 휴가기간 내내

치과치료를 다녀야만 했고, 그때 훈장처럼.

내 위아래 오른쪽어금니 두쪽은 금이 박혀있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아이들에게

초콜릿 먹고 난 후에는 반드시 양치를 시킨다.


초콜릿은 그 어느 간식보다

강력한 충치로 가는 지름길임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이에 충치가 생기는 줄도 모르게

꿀 같던 한 달의 시간이 흘러 우리는 임관 전 종합평가를 치르게 되었다.


그 시간이 학과 공부에 매진한

다른 동기들에게는 고통의 시간이었겠으나,

나처럼 군번줄 무겁게

뒤에 20명 남짓의 동기만 있게 설렁설렁

공부한 경우에는 꿀 같은 휴식시간이었다.


나중에 현역중령이신 아빠께서

나의 임관성적을 보시고는..

어떻게 공부하면 "중"이라는 성적이 나올 수

있는 거냐며 핀잔 아닌 핀잔을 주셨다.



군대의 교육성적은 상 - 중상 - 중으로 나뉜다.

"하"라는 성적은 본 적이 없고,

아마도 "하"라는 성적을 받으면 임관이 아니 되지 싶다.



그렇게 딱 턱걸이로 임관한 나였지만,

어깨에 빛나는 오만촉광의 다이아몬드는 다 똑같이 빛난다.


전체 1등을 한 동기라고 해서 특별히 다이아몬드에 금테를 둘러주는 것은 아니니깐..^^

물론 금메달을 목에 걸어주긴 하더라.



임관 2주 전부터는 야외 연병장에서 임관 연습이 한창이었다.

입장 연습. 입장하면서 군가 연습. 대열에 정렬 연습 등..

뜨거운 2006년의 7월 여름..

뜨거운 태양 아래 임관준비하는 여군사관 51기!!

학사사관 47기!! 들의 함성과 구령.. 군가소리는

하늘을 찔렀다.



'언제 시간이 흘러

나는 노란 병아리 계급장을 떼고

소위로 임관할까?' 했는데 시간은 무섭게 흘러

임관 날 아침이 밝았다.


대전에 계신 부모님과 언니..

당시 만났던 남자친구까지 나의 임관식을 축하해 주기 왔다.


친척 중에서는 할머니와 창원에 사시는 작은아버지도 오셨다.

당시 함께 와준 전 남자친구는 사진기사 노릇을 톡톡히 해주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소위계급장과

휘장을 전투복을 입고 참석해 주신 아빠가 직접 달아주셨을 때다.


나도 아빠도

참 가슴 벅찬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빠는 군에 입대해서 소위로 임관한 딸 덕분에

예전 생도시절 머물렀던 그곳..

영천의 3 사관학교를 30년 만에

다시 찾으셨기에

더욱 감회가 새로우셨을 것이다.



나중에 아빠게 들으니,

우리가 매주 토요일 2시간씩 뽑았던

잔디의 제초작업..

아빠 기수인 3사 14 기분들이 생도시절 인근 야산에서 가지고 와 심으셨다고...ㅎㅎ

아빠와 나의 연결고리.. 대연병장 잔디.. 잡초...


뭔가 가슴이 뜨겁게 올라오면서 뭉클해졌다.



긴 훈련과 교육의 시간에 비하면

너무나도 짧은 20분가량의

임관식 행사가 끝나고 축하해 주러

온 가족과 친척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나는 당시 중령이셨던 아빠와

서로 모자를 교환하며 기념사진도 찍었다.


그때.. 반드시 나도 여군 대대장이 될 것이다.

했는데...

후에 나는 어떻게 될 것인지는

나의 수양록을 통해 확인해 보면 될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부모님께..

그 수많은 소위 동기생 중

나를 어떻게 한눈에 알아보셨는지 여쭈어보니..

다름 아닌 나의 튼실한 종아리를 보고

단번에 알아보셨다고..

웃프지만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하하 호호 즐거운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이날.. 육군 소위로 임관하면서

부모님께 둘도 없는 자랑스러운 막내딸로..

아버지께 가슴 벅찬..

아버지의 뒤를 따르는

후배장교로 새로 태어났다.


나의 임관식에 와준 우리가족과 막내작은아버지와 사촌동생



아빠와 모자를 바꿔쓰고~♡


#오만촉광 #임관식 #소위 #3 사관학교 #여군사관 #여군사관 5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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